오늘의 우표와 사건 06.10 (1) 6.10민주항쟁기념일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 2) 3)
1) 1997 - 한국 최초 프로권투 세계챔피언 김기수(金基洙) 사망
김기수 [金基洙, 1939.9.17~1997.6.10]
한국 최초의 프로권투 세계챔피언 김기수(58)씨가 1997년 6월 10일 지병인 간암으로 별세했다.
김씨는 사망 10개월 전 간암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해왔다.
김씨는 한국 프로복싱사를 일궈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였다. 그는 국내 프로복싱 사상 첫 세계챔피언이라는
명예를 얻었고 착실한 인생여정 속에 부를 쌓아 가장 성공한 체육인이라는 인상을 남긴 인물이었다.
그의 삶은 하나의 드라마였다. 태어나기 3일 전에 아버지가 사망해 유복자로 세상의 빛을 보았고 6ㆍ25때 월남, 이 사회의 밑바닥생활을 피할 수 없었다. 고교 2학년 때 동경아시안게임 웰터급서 우승하는 저력을 보인 그가 아마 때 남긴 기록은 87승 1패. 프로 데뷔 후 그는 동양챔피언을 거치며 착실히 전적을 쌓다가 1966년 6월 25일 벤베누티(이탈리아)에게 판정승을 거두며 WBA 주니어미들급 세계챔피언에 등정했다. 마징기(이탈리아)에게 챔피언자리를 내준 후 조용히 링에서 물러난 그는 링에서 얻어맞으며 번 돈을 헛되이 쓰지 않았다.1960년대 말부터 명동서 챔피언다방을 운영하며 돈을 벌어 빌딩을 소유하는 등 탄탄한 재력을 축적했다.
그는 1996년 말 간암선고를 받기까지 골프 싱글수준을 유지하며 건강한 삶을 영위해왔다.
그러나 병마와의 마지막 승부에선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2) 1974 - 강감찬 장군 유적지 낙성대 준공
낙성대(落星垈) :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장군 강감찬(姜邯贊)의 출생지.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의 명장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터이다.
강감찬 장군은 거란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 큰 공을 세우는 등 구국제민(救國濟民)을 위해 일생을 바쳐 백성들의 흠모와
존경을 받았다. 백성들은 장군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해 장군의 집터에 사리탑(舍利塔) 방식의 삼층석탑을 세웠다.
그리고 장군이 태어나던 날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졌다는 전설에 따라 '별이 떨어진 터'라는 뜻의 낙성대라 이름하였다.
화강암으로 된 삼층석탑은 13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4.48m이다.
서울특별시에서는 낙성대를 보호하기 위해 1964년 석탑이 파손된 부분을 보수하였다. 유형문화재로 지정한 뒤 1973년 11월부터 안국사라는 사당과 부속건물을 신축하고 관악구 봉천동 218번지에 있던 삼층석탑을 이전하였다.
또 녹지와 공원시설을 갖추어 1974년 6월 10일 지금의 낙성대가 조성되었다.
안국사는 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삼층석탑이 있던 옛터에 따로 유허비(遺墟碑)를 세워 사적지임을 표시하고, 1974년 8월 21일 낙성대유지(落星垈遺址)라 하여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하였다. 낙성대 안국사 경내에서는 1988년부터 강감찬 장군의 호국정신과 위업을 기리는 추모제향으로 낙성대인헌제가 매년 10월 경에 열린다.
3) 1954 - 광주학생운동 기념탑 제막식
1954년 오늘, 광주학생운동 기념탑 제막식이 광주제일고등학교에서 열렸다.
이 학교 후배들은 25년 전 선배들이 발휘한 독립정신을 기리고 순국선열의 넋을 위로하며 묵념했다.
높이 10미터의 이 기념탑에 이승만 대통령이 탑문휘호를 썼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제일고등학교의 전신인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주도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항일운동을
전개한 것이 바로 광주학생운동이다. 당초 일본 학생이 조선 여학생을 희롱한 데서 비롯된 두 나라 학생들 사이의 충돌이
일제에 항거하는 조선 학생들의 독립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광주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11월 12일 전국 194개 학교와 5만4천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항일투쟁으로 발전했다.
일제는 이에 대해 조선학생 580여 명을 퇴학조치하고 2천3백여 명에게 무기정학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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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1 - 중앙정보부 창설-제5대 대통령 취임기념 (1963.12.17)
1961년 6월 10일 중앙정보부법(법률 제619호)에 의해 국가재건최고회의 직속으로 정보·수사 기관인 중앙정보부가 발족되었다.
1961년 박정희가 주도한 5·16군사정변에 적극 가담한 김종필이 창설을 주도하고 1963년까지 초대부장으로 재임했다.
특무요원 3,000명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1963년 제3공화국 성립 이후 대통령 직속기관이 되었다. 중앙정보부는 대공업무 및
내란죄, 외환죄, 반란죄, 이적죄 등의 범죄수사·정보 업무를 담당했으며 반정부세력의 감시·통제에 이용되기도 했다.
1980년 12월 31일 제정된 국가안전기획부법에 의해 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로 확대·개편되었으며,
1999년 1월 개정된 국가정보원법에 의해 그 명칭이 국가정보원으로 개칭되었다.
2) 1987 - 6월민주화운동 전개 (6.10 민주화 항쟁)
1987년 6월 10일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범국민대회'가 개최되면서 4·13호헌조치 철폐, 민주헌법 쟁취,
독재정권 타도 등을 요구한 반독재 민주화 시위가 시작되었다. 6월민주화운동의 직접적인 계기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4·13호헌조치에서 비롯되었다.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은폐·조작되었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어 재야와 통일민주당이 연대해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면서 6월민주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전국적으로 총인원 400만~500만 명이 참여한 6월민주화운동은 대통령직선제의 수용, 대통령선거법의 개정,
김대중의 사면복권 및 극소수를 제외한 시국관련사범의 석방 등 8개항을 담은 6·29선언으로 마무리되었다.
3) 1987 - 민정당 전당대회서 노태우 대표위원을 대통령후보로 선출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군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고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
군사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노여움이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1987년 6월 10일 오전 10시. 서울 잠실 체육관에서 민정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이날 간선제 선거를 통해 5공화국 정권을
승계할 민정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 대표가 선출됐다. 같은 시각 대회장 밖. 전국 22개 도시에서 ‘박종철군 고문살인 및 호헌철폐
규탄대회’가 열렸다. 국민들은 민정당이 노태우 대표를 후보로 선출해 간접선거 방식인 이른바 체육관선거로 정권을
연장하려는 데 거세게 저항했다. 서울의 시위대들 중 일부는 최루탄에 쫓기다 명동성당에 집결, 농성에 돌입했다.
6월 10일의 국민대회는 도시 중산층과 샐러리맨들까지 가세, 한국 현대사에 하나의 분수령을 이룬 ‘6월항쟁’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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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9 - 베트콩, 월남에 임시혁명정부 수립 발표- 임시혁명정부수립 1주년기념
베트콩(Viet Cong)은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아 1960년 12월 20일 결성되어 남베트남 및 미국과 전쟁을 치른
베트남민족해방전선(Vietnamese National Liberation Front, NLF) 소속으로 정식명칭은 Viet Nam Cong San으로,
베트남공산주의자(Vietnamese Communists)라는 의미를 갖는다.
NLF는 1954년 사이공에서 좌경 지식인을 중심으로 공산주의가 아닌 민족주의를 이념으로 출발하였다.
활동방법은 평화적인 데모나 법에 대한 호소를 기본으로 하였으나, 1957년 이후 남베트남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자
폭력을 병용하게 되었으며, 공산주의자들이 동참함으로써 공산주의운동으로 변하였다.
1960년 12월 결성된 NLF의 강령은
① 고딘디엠 정권의 타도와 민족민주연합정부의 수립,
② 진보적 민주주의의 실현,
③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경제건설,
④ 소작료 경감과 점진적인 토지개혁,
⑤ 민족문화의 창달, ⑥ 인민군대의 창설,
⑦ 남녀동권, 민족평등, 재(在)베트남 외국인과 국외체류 베트남인의 권리보장,
⑧ 평화적인 외교중립정책,
⑨ 남·북 베트남의 관계정상화와 평화적 통일,
⑩ 세계평화 옹호 등으로써, 적극적인 저항운동을 중심으로 남북통일과 평화·중립·독립을 지지하였다.
NLF는 1962년 인민혁명당(PRP)을 조직하여 활동의 중심부로 삼았으며, 1969년 여러 지역의 단체와 연합하여
베트남남부공화임시혁명정부(PRG)를 수립하였다. 베트콩은 1950년대 말과
1973년 파리휴전협정의 당사자로 조인하였으며, 그후 남베트남의 구엔반티우 정권을 무너뜨리고 남베트남을 장악하였다.
2) 1957 - 캐나다 총선거, 22년 만에 정권교체
1957년 6월 10일 캐나다 총선에서 보수당 당수 존 디펜베이커(Diefenbaker, John, 1895~1979)가
캐나다 수상에 당선됨으로 22년 만에 우익정권이 탄생했다. 자유당의 지도자이며 캐나다 정치계의 거물원로인 75세의
루이 생 로랑 수상은 선거결과를 수용, 사임했다.
로랑 수상의 사임은 자유당과 보수당 모두 과반수 의석에 미달하기 때문에 법적인 사임요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각료들 가운데 다수가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9명의 각료들의 동료와 내각에 함께
머물러 있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보수당은 265석의 하원의석중 단일 세력으로는 최대인 109석을 확보했지만 어느 당도 우익인 사회신용당과 온건좌익인
연방연합당과 같은 소수당의 지원없이는 통치가 불가능했다.
3) 1952 - 거제도 포로수용소 폭동 진압
1952년 5월 거제도에 수용중인 친공포로들이 대규모 폭동을 일으키고 수용소장인 도트 준장을 72시간 납치한
`거제도 포로수용소 폭동`이 1952년 6월 10일 유엔군에 의해 진압됐다.
신임 소장 보트너 준장이 이끄는 유엔군은 거제도의 친공포로들을 무력으로 진압 공격하여 30명의 사상자와 85명의 부상자를
냈으며, 1시간 반에 걸쳐 6천여명의 미군들과 탱크는 제76포로 수용소로 돌진하여 대부분의 포로들을 생포했다.
공식 보도에 따르면 포로 지도자들은 유엔군의 명령에 따르는 자들은 죽였고, 또한 그들중 많은 수가 자살했다.
이 사건 이후 도트 준장은 종신대령으로 강등됐고, 후임 수용소장으로 보트너 준장이 임명됐다.
2003 - 미국항공우주국(NASA) 화성탐사선 ‘스피릿(Spirit)’ 발사
미국의 화성 탐사선(로봇) 스피릿(Spirit)은 1997년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호에 탑재해 착륙에 성공한 소저너(Sojourner)에 이어 2004년 1월 4일 화성 착륙에 성공한 미국의 두 번째 화성탐사선(로봇)이다.
2003년 7월 9일 발사되어 이듬해 1월 25일 화성에 착륙한 오퍼튜니티호와 쌍둥이 탐사선이다. 무게는 173㎏이며,
6개의 바퀴가 달려 있다. 또 9대의 카메라와 과학 연구에 필요한 현미경, 적외선 분석장치, 로봇팔이 장착되어 있다.
이 가운데 로봇팔은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화성의 토양을 채취하고, 팔에 부착된 카메라는 암석의 표면을 현미경 수준으로 확대해 컬러 영상으로 360˚회전 촬영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2003년 6월 10일 미국 플로리다주(州)의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된 뒤, 약 9개월 동안 4억 9100만㎞를 비행한
끝에 2004년 1월 4일 화성 15m 상공에서 낙하산을 끊고 표면에 착륙하였다. 착륙지점은 화성의 적도 남쪽에 위치한 '구세프 분화구'이다. 쌍둥이 탐사선 오퍼튜니티호가 착륙한 '메리디아니 고원(평원)'과는 반대쪽이다.
착륙 후 20분 만에 최초의 신호를 지구로 전송한 뒤, 3시간 뒤에는 처음으로 로봇 본체 일부와 화성의 지평선 등을 보여주는 선명한 흑백 영상을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전송하였다. 곧이어 60~80개의 흑백 영상을 잇달아 전송하고,
다음날부터는 컬러 영상을 전송하기 시작하였다. 14일부터는 화성 표면을 걸어다니며 본격적인 탐사활동을 시작해 화성에 다양한 암석이 존재할 뿐 아니라 토양에도 물이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증거들을 여러 차례 지구로 전송하였다.
21일부터 고장을 일으켜 사진 전송을 중단했다가 수리를 마친 뒤, 다시 탐사에 들어가 2월 8일에는 화성 표면에 있는 암석에 처음으로 작은 구멍을 뚫는 데 성공, 화성의 지질학적 과거를 규명하는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수명은 90일 정도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활동기간은 알 수 없다.
탐사의 주요 목적은 화성의 물 존재 여부와 암석·토양 등 화성에 관한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1998 - 제16회 월드컵축구대회 개막(프랑스)
20세기 마지막 월드컵경기 98프랑스월드컵 축구대회가 이날 화려한 개막식을 갖고 브라질과 스코틀랜드의 대결을
시작으로 33일간의 열전에 들어갔다. 프랑스가 이번 대회를 위해 신축한 생 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개막식은 전세계 1백60여개국 10억명 이상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거행됐으며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재프 블래터 FIFA(국제축구연맹) 회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회장 등 세계 정치-문화-스포츠계 주요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번 대회에는 94년 미국대회 우승팀인 브라질과 개최국인 프랑스, 아시아대표 한국을 비롯한 예선통과팀
30개국 등 모두 32개국이 참가했다. 이들 대표팀은 파리,리옹,마르세유 등 10개 도시 경기장에서 조별 예선(8개조)을 벌여 각조 1, 2위가 16강에 오른 뒤 토너먼트로 8강전, 4강전, 준결승전을 거쳐 7월13일 생 드니 구장에서 왕중왕을 가리는
결승전을 가졌다. 결승전에서는 프랑스가 브라질을 3대0으로 대파,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을 품에 안았다.
1996 - 'Americas TELECOM 96' Conference
ITU, Brazil, Rio de Janiero, 10-15 Jun 1996
http://www.unpi.com/projects_un_conference_stamp_listing_1999.asp
1994 - 전쟁기념관 개관
전쟁기념관(戰爭記念館, 戰爭紀念館)은 대한민국서울특별시용산구 용산동 1가 8번지(옛 육군본부 자리)에
위치한 기념관으로, 대한민국을 지켜온 항쟁과 전쟁에 대한 기록을 모으고 보존하는 곳이다.
전쟁에 대한 교훈을 통해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적 통일(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목적으로 한다.
1990년9월 28일에 기공식이 있었다. 처음 건립된 때는 1993년12월이며, 개관한 때는 1994년6월 10일이다.
1988 - 포철주, 국민주 1호로 증권거래소에 상장
포스코는 오랫동안 정부와 정부투자기관이 대부분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88년 6월10일 이른바 '국민주' 1호로 주식을 공개했다. 포스코는 국민주 공개를 통해 일반국민이 전체 주식의 절반
이상을보유한 명실공히 '국민기업'이 됐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민영화 과정은 포철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외국인투자자들에게 가능한 한 높은 가격에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이유로 지분 소유에 대한 제한을 하나둘씩 풀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반기보고서 제출 시점을 기준으로 할 때 포스코의 외국인 지분율은 60.4%에 이른다.
반면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지분은 3.45%에 불과하다. 앞선 세대들이 식민지 백성으로 겪은 고통의 대가로 받은
피 같은 돈으로 포스코가 설립됐다는 사실은 이제 잊히고 있는 것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식민지 고통의 대가 /한겨레21 [2002.08.29 제423호]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960.html
1969 - 교황 바오로6세, 5세기만에 신교 연합체인 세계교회회의에 참석
바오로 6세(Paulus VI, 1897~1978) : 로마교황(1963∼78). 이탈리아의 콘체시오 출생. 1920년 사제 서품,
1954년 밀라노 대주교, 1958년 추기경이 되었다. 1963년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며, 제2차바티칸공의회를 종결짓고
그 개혁정신을 실행, 파급시켰다. <평화의 사도> <교회일치의 주역>이라 하였던 바오로 6세는 대내적으로 교회와
성청(聖廳)의 개혁, 대외적으로 사회정의 추구와 외교활동 및 교회일치에 노력하였다.
즉 대내적으로는 인공피임을 금지한 최후의 교황교서 <인간생명(1968)>을 발표, 사제독신제 고수, 금서목록 제거,
평신도·여성의 교회내적 지위 향상 등을 꾀하였다. 대외적으로는 한국을 비롯한 40여 개 나라와 외교관계 수립,
이집트·이스라엘 외에 공산당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동방정책> 추구 등을 하였다.
1964년에는 그리스정교회의 아테나고라스 총대주교와 회담하고 1054년의 동·서방 교회분쟁에 대하여 화해하였다.
비오 12세와 요한 23세를 이은 가장 혁신적인 교황 중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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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 제2차 통화개혁, 10환을 1원으로 평가절하
1962년 6월9일 밤10시, 5ㆍ16군사정부가 중대 발표를 했다. '긴급통화조치법'에 의거, 10일0시를 기해 화폐 단위를 '환'에서 '원'으로 바꾸고 10환을 1원으로 교환한다는 내용이었다. 50환 이하의 소액 은행권과 주화를 제외한 모든 환화의 유통을 전면 금지시키되 예상되는 불편에 대비해 세대당 500원까지는 새 돈으로 바꿀 수 있게 했다.
이로써 '환'으로 바뀌었던 화폐단위가 9년 만에 다시 '원'으로 되돌아왔다. 시행 첫날인 10일은 일요일인데도 은행은 아침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장사진을 쳤고, 시장 일부에서는 생필품을 사두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영국 화폐회사에 급히 인쇄를 의뢰하는 바람에 '독립문'이 '득립문'으로, '조폐공사'가 '조페공사'로 잘못 인쇄되기도 했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재원을 마련하고 부정축재 자금을 회수하며 고리채를 일소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도였지만 부작용이 속출했다. 물가는 뛰었고 기업활동도 날로 위축돼 사회 불안까지 가중됐다. 장롱 속에 숨어있을 것이라던 검은 돈의 규모도 미미한 것으로 밝혀지자 결국 군사정부는 1개월 만에 봉쇄예금의 완전 해제로 백기를 들어야 했다.
1959 - 잡지 <야화> 7월호, `하와이근성시비` 필화로 판금
1959년 월간잡지 `야화` 7월호에 호남 사람들의 성격을 비난하는 `하와이 근성(根性) 시비(是非)`라는 기사가 실리자
전라도 사람들이 크게 반발, 잡지 발행인 최상덕과 편집책임자 이종열, 필자 조영암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문제의 기사는 찬반 두 필자가 원고를 썼는데 호남인들의 근성을 비판하는 글은 시인인 조씨가 쓰고
이를 반박하는 글은 호남출신 시인인 유엽씨가 썼다.
잡지가 발매되자 광주시민 5만여명이 규탄결의대회를 열었고 전남·북 도의회가 규탄결의안을 채택했으며 호남출신
국회의원 50여명이 공보실장을 상대로 정부책임을 추궁하는 등 사태가 매우 심각하게 전개됐다.
`야화` 7월호는 즉시 판매금지되어 회수됐으며 발행인·편집인·필자는 명예훼손혐의로 구속되어 전주지검으로 압송됐다.
1심 재판결과 편집인과 필자에게는 2년형이 언도되고 발행인은 무죄석방됐다. 편집인과 필자는 상고심에서 6월형으로 감형됐다.
1949 - 권농일 제정
우리나라의 겨울이 한달가량 줄었다고 한다. 전에는 6월 10일을 권농일(勸農日)로 정하여, 이날을 전후하여 모내기를 권장하였으나 지금은 이보다 1개월가량 빨라진 5월 10~15일 경에 모내기를 한다. 강원도 산간에서는 신갈나무, 분부나무의 잎이 전보다 빨리 피며, 연안에서는 한류성 어종인 명태의 어획량이 감소하고 난류성인 오징어, 멸치가 많이 잡히고 있다. 또 겨울철에 한반도에서 서식하다가 봄철에 시베리아로 가던 철새 알락꼬리마도요새가 8월말 강화도 남단 갯벌에서 관찰되었다. -Google
권농의 날
매년 5월 넷째 화요일. 농림부 주관으로 농어민의 노고를 위로하고, 더욱 많은 수확을 올려 소득 증대에 힘쓰게 하는
각종 행사를 한다. 1973년 3월 30일, 대통령령으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공포하여 기념일로 정하였다. - naver
1949 - 공군사관학교의 전신인 항공사관학교 개교
1949 - 노르웨이의 소설가 운세트(Undset, Sigrid) 사망
1946 - 이탈리아, 공화제 선언
1934 - 영국의 인상파 작곡가 딜리어스(Delius, Frederick) 사망
1926 - 6.10 만세운동
1926 - 에스파냐의 건축가 가우디(Gaudi y Cornet, Antonio) 사망
1923 - 프랑스의 소설가, 해군장교 로티(Loti, Pierre) 사망
1922 - 미국의 포퓰러가수, 배우 갈런드(Garland, Judy) 출생
1921 -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 필립공(Philip, Duke of Edinburgh) 출생
1910 - 미국의 블루스 가수, 작곡가 하울린 울프 (Howlin' Wolf) 출생
1907 -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 칼라사진방식을 발표
1880 - 프랑스의 야수파 화가 드랭(Derain, André) 출생
1844 - 독일의 세계적인 동물원 경영자, 조련사 하겐베크(Hagenbeck, Carl) 출생
1832 - 독일의 기계기술자 오토(Otto, Nikolaus August) 출생
1832 - 프랑스의 소설가, 저널리스트 발레스(Vallès, Jules) 출생
1819 -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Courbet, Gustave) 출생
1580 - 포르투갈의 시인 카몽(이)스(Camões, Luís de) 사망
BC 323 -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ros the Great)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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