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우표와 사건 06.09 (1)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 2) 3)
1) 2006 - 한국 해군의 최신형 잠수함 '손원일함' 진수
한국해군 1,800톤급 잠수함 시대 맞아
해군 창설의 주역 손원일 제독 뜻기려 '손원일함' 명명
대한민국 최신형 잠수함인 '손원일함'의 진수식이 6월 9일(금) 군 수뇌부 및 조선소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거행됐다.
이날 진수식은 해군의 전통 의식에 따라 개식사, 남해일 해군참모총장의 함정명 선포 등의 순서로 진행되며
'손원일함'은 진수테이프 절단과 함께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며 바다를 향한 첫 걸음을 내딛게 됐다.
최신형 잠수함인 '손원일함'은 대 수상함 및 대 잠수함 작전, 해상교통로 보호, 적의 주요항만 봉쇄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기존 장보고급 잠수함에 비해 무장을 포함한 작전수행 능력이 한 단계 향상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날 진수식을 갖는 '손원일함'은 214급 잠수함으로서 기존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209급에 비해 공기불요장치(AIP)를
탑재하여 수중작전 능력이 향상되었으며 특히, 우리 기술로 건조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 AIP : Air Independent Propulsion
'손원일함'은 1,800톤급 규모로, 길이 65.3미터, 폭 6.3미터에 수중 최대속력은 20노트(37km)이며, 탑승 인원 40명에
어뢰 및 잠대함 유도탄, 기뢰를 탑재하고 있다.
해군은 함정 유형별로 지명, 섬, 산봉우리, 역사상 추앙받는 인물 등의 이름을 함명으로 지정해 왔으며, 이날 진수된 '손원일함'은 대한민국 해군 창설의 주역이자 해군 초대참모총장 및 제5대 국방부 장관을 지낸 고(故) 손원일(孫元一) 제독의 애국애족 및 바다사랑 정신을 기려 '손원일함'으로 명명되었다.
진수식에는 손원일 제독의 미망인인 홍은혜 여사도 함께 참석하여 고인의 생전의 뜻을 기린다.
'손원일함'은 '07년 말에 해군에 인도된 후 전력화 과정을 거쳐 작전 배치될 예정이다.
제9잠수함전단 -해군본부 2006.06.09
http://www.navy.go.kr/bbs/board/board_read.jsp?szCtgrID=
22&szSeq=11&szSrchType=0&szKwd=&pg=1&pgrp=1
(손원일 제독은 '해군 창설 10주년 우표'의 발행을 위해 애쓰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
2) 1998 - 삼성전자, 세계최초로 4기가D램 개발
1998년 6월 9일 삼성전자는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반도체 학술대회 '초고속집적회로 국제학회'(VLSI심포지엄)에서
4기가 D램 개발에 요구되는 회로선폭 0.13㎛의 초미세 가공기술인 '반도체 가공 전공정에 적용한 신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0.13㎛ 공정기술을 0.25~0.3㎛급 공정기술이 쓰이는 64메가 D램이나 0.18㎛급
기술이 쓰이는 2백56메가 D램에 적용할 경우 이들 제품의 원가 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게 되었으며, 손톱만한 칩속에
신문 약 3만2천 페이지, 단행본 6백40권 분량의 데이터를 기록하고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 KBS
3) 1987 - 연세대 이한열군 최루탄 맞고 혼수상태
1987년 6월 9일 연세대 경영학과 2년 이한열군이 교문 앞에서 시위도중 전경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전두환대통령의 5공정권 마지막 해인 1987년은 연초부터 심상치 않았다. 국민들은 당시 민정당이 노태우 대표를
후보로 선출해 간접선거 방식인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정권을 연장하려는 데 거세게 저항했다.
게다가 2월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이른바 4ㆍ13호헌조치는 학생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학생시위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시민단체들은 학생들과 연합해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6월10일 전국적으로 개최하기로 했다. 당시 연세대 2학년생이던 이군은 이 대회의 일환으로 전날인 6월 9일 연세대
교문 앞에서 벌이진 시위에 참가했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이군은 27일 만인 7월 5일 새벽 2시5분 끝내 사망했다.
이한열군의 죽음은 한 대학생의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다. 한국 현대사에 하나의
분수령을 이룬 `6월 항쟁`의 처절하고 비장한 마무리였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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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98 - 이탈리아의 소설가 말라파르테(Malaparte, Curzio) 출생
말라파르테 [Malaparte, Curzio, 1898.6.9~1957.7.19]
본명은 수케르트(Kurt Erich Suckert). 토스카나주(州) 피렌체 근처에서 출생.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부상하였고,
뒤에 파시즘에서 공산주의까지 온갖 진영에 참가하였다. 처녀작으로는《저주받은 성인(聖人)의 반란》(1921)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영향을 노련한 작가의 날카로운 눈으로 관찰한 반(反)독일적 르포르타주
소설인 《파멸(破滅)》(1944)과, 영미연합군에
종군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가죽》(1949)으로 유럽과 미국의 주목을 받았다.
2) 2005 - 경상북도가 독도의 달을 제정하다
2005년 6월 9일, 경상북도 의회는 매년 10월을 독도의 달(獨島-)로 지정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원래는 시마네 현이 2005년 3월에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것에 의해서, 대한민국 정부가 다케시마의 날에 항의하면서
한일 교류 이벤트가 중지되거나 연기되었다.
경상북도는 더욱 강력하게 일본에 압력을 가하는 목적으로 독도의 달을 제정했다.
구체적인 내용
- 경상북도와 의회는 시마네 현이 다케시마의 날의 조례를 파기할 때까지, 시마네 현과의 교류를 전면적으로 정지한다.
단 상법의 적용을 받는 법인·단체와 정부수준 등의 국제 행사에서의 한일 방문은 예외가 된다.
경상북도의 공무원, 경상북도가 1/2이상 출장하는 기업·단체의 직원 등에 의한 방일 출장을 규제한다.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B%8F%85%EB%8F%84%EC%9D%98_%EB%8B%AC
3) 2007 - 설계수명 다한 고리원전 1호기 가동중단
이번 달로 설계수명이 완료돼 수명 연장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고리원전 1호기가 오는 9일에 발전이 정지됩니다.
고리원자력본부는 오는 18일 고리원전 1호기의 수명이 완료됨에 따라,
오는 9일부터 1호기의 운전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원전 측이 1호기의 수명을 10년 더 연장하기 위해 과학기술부에 안전평가서를 제출한 데 대한 오는 12월 과기부의
심사 결과에 따라 원전 1호기의 재가동 여부가 결정될 전망입니다.
한편 과학기술부는 고리원전 1호기에 대해 16개 분야, 112개 항목의 안전성을 평가하게 되며 계속운전 승인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영구폐쇄 조치가 내려집니다. [지역] 노준철 기자 2007-06-01 KBS -Google
원전본부 "안전성 평가 거쳐 10년 연장 추진"
환경단체들 `사망선고'회견 갖고 영구폐쇄 주장
1978년 국내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원전 1호기가 30년의 권장 설계수명이 만료돼 9일 가동을 중단했다.
고리원자력본부는 이날 오전 10시 52분에 고리원전 1호기의 발전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고리원전 1호기는 오는 18일로 권장 설계수명이 만료됨에 따라 발전을 중단하고 과학기술부의 계속운전 승인을 기다리며
점검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고리원자력본부는 덧붙였다.
고리원자력본부는 지난해 6월 고리 1호기의 수명을 10년 연장하기 위한 안전평가서를 과기부에 제출한 상태인데
과기부는 오는 12월 15일까지 계속운전 승인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과기부는 다음달 국제원자력기구(IAEA) 관계자를 초청, 고리원전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벌여 계속가동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자료로 활용할 방침이다.
2005년 개정된 원자력법 시행령은 권장수명이 다한 원전은 계속운전 승인 심사에서 16개 분야 112개 항목의
안전성 평가기준을 통과할 경우 10년간 운전을 연장하고, 기준에 미달하면 영구 폐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발전용량 58만7천㎾인 고리 1호기는 지난 30년동안 부산시민이 7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인 총 1천147억kWh를 생산했다.
한편 부산지역 환경단체들은 이날 오전 부산역광장에서 권장 설계수명이 만료된 고리원전 1호기의 `사망선고'
기자회견을 열고 "수명이 다한 발전소를 폐기해 시민 안전을 지키고 나아가 핵 없는 세상의 초석을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정호 기자 (부산=연합뉴스) 한겨레 2007-06-09 /Google
고리 1호기 연혁
1971.03.19 한국전력-웨스팅하우스(WH) 고리 1호기 건설계약 체결
1971.11.00 착공
1977.06.19 초임계(원자로 점화, 핵분열 시작)
1978.04.29 상업가동 시작
1) 2) 3)
1) 1996 - 제35차 세계광고대회 서울서 개막(9~14일)
전세계의 광고 및 미디어업계 인사들이 모여 21세기 광고 및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미래를 전망해보는 제35차 국제광고협회(IAA) 세계광고대회가 1996년 6월 9일 한국종합전시장에서 개막했다. 12일까지 계속된 이 광고대회에는 일본 아사히신문 나카에 도시타다 회장과 홍콩 스타TV 라클란 머독 부회장,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 어번 러너 편집국장 등 세계 미디어업계 및 광고계의 거물들이 연사 및 패널로 참가해 21세기 뉴미디어 기술과 그에 따른 광고방향 등을 논의했다.
세계광고대회는 IAA(국제광고협회)가 주최하는 세계적 규모의 광고대회로 `광고산업의 올림픽`으로 불리운다. 2년마다 세계각국으로 옮겨 개최되며 전세계 우수 언론사, 광고주, 광고회사 간부 등 약 2천-2천5백여명이 참여한다. 아시아에선 1984년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서울에서 열렸다. IAA는 1938년 세계각국 광고주, 광고대행사, 언론매체 및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업체 간부들이 구성한 세계유일의 광고단체로 본부는 뉴욕에 있고 세계 65개 도시에 지부가 설치되어 있다. 1996년 현재 87개국 3천5백여명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1968년 지부가 설치됐다.
2) 1895 - 중국의 문학자, 역사학자 첸무[錢穆] 출생
첸무 [錢穆, 1895.6.9~1990.8.30]
자 빈지(賓之)·빈사(賓四). 필명 미학재주(未學齋主). 장쑤성[江蘇省] 우시[無錫] 출생. 우시중학을 졸업한 후
초등학교·중학교 교원을 하면서 고학으로 제자(諸子) 연구 등 학문에 힘썼다.
1930년에 발표한 《유향·유흠부자연표(劉向劉歆父子年表)》가 학계의 인정을 받아, 옌징대학교 강사로 초빙되었다.
그 뒤 베이징대학교 등의 교수를 거쳐, 장난대학교 문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공산정권 수립 후에 후스[胡適]의 학풍을 계승하는 자유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고, 홍콩으로 망명, 홍콩 신야서원[新亞書院:후의 中文大學]을 설립, 원장이 되었다. 1967년 타이완[臺灣]에 정착, 중국문화대학 교수를 역임하며
주자학 연구에 전념하여 '국학대사'로 불렸다.
저서에 《논어요략(論語要略)》 《맹자요략(孟子要略)》 《중국사상사》 《주자신학안(朱子新學案)》 등이 있다.
3) 1974 - 과테말라의 시인, 소설가, 외교관 아스투리아스(Asturias, Miguel Angel) 사망
아스투리아스 [Asturias, Miguel Angel, 1899.10.19~1974.6.9]
1967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 1920∼1930년 파리 소르본대학(파리대학교)에서 마야의 문화 및 종교를 연구하는 한편, 쉬르레알리슴(초현실주의)의 영향도 받았다. 이들 연구와 어렸을 때의 체험을 토대로 중앙아메리카 원주민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 준 《과테말라의 전설집 Leyendas de Guatemala》(1930)을 발표, P.발레리를 비롯하여 프랑스와 에스파냐에서 절찬을 받았으며, 그 이후 '토착문화파(土着文化派)'로서의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대통령 각하 El sen or presidente》(1946)에서는 독재자의 압제라는 것이 인간을 내면으로부터 말살해 가는 과정을, 중앙아메리카의 한 작은 나라를 무대로 하여 독특하고 박력 있는 문장으로 묘사하였다. 《옥수수의 인간 Hombres de maiz》(1949)에서는
옥수수 농사를 하는 땅과 더불어 수천 년의 역사를 살아온 인디오들이, 대자본가에게 땅을 빼앗기는 한편 땅과의 정리를 잃고,
서유럽문명과의 접촉으로 타락해 가는 현실을 묘사하였다.
이 밖에도 《강풍(强風) Viento fuerte》(1950), 《녹색의 교황(敎皇) El Papa verde》(1953), 《과테말라의 주말 Weekenden Guatemala》(1955), 《죽은 자들의 눈 Los ojos de los enterrados》(1960), 《물라타의 여인 Mulata de tal》(1963) 등이 있다.
창작활동 외에 프랑스 주재 대사도 역임하였다.
2006 - 제18회 월드컵축구대회 개막(독일)
2006년 FIFA월드컵 독일™(2006 FIFA World Cup Germany™, FIFA Fussball-Weltmeisterschaft Deutschland 2006™)은 독일에서 열리는 제18회 월드컵이다. 개최 기간은 2006년 6월 9일부터 7월 9일까지이며, 12개 도시에서 개최된다. 출전이 확정된 32개국은 유럽 14개국, 아시아 4개국,
아프리카 5개국, 남아메리카 4개국, 오세아니아 1 개국, 북아메리카 4개국이다.
이탈리아가 우승을, 프랑스가 준우승을 하였다. 주최국 독일은 3등을 하였다. -위키백과
“구텐 모르겐” 월드컵 열기속으로
“전세계를 친구로~.”
독일 뮌헨 시각으로 9일 오후 6시. ‘휘익~’ 하고 월드컵 킥오프 호각이 울렸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아침 9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낮 1시, 서울 10일 새벽 1시….
지구촌의 눈과 귀가 동시에 열렸다. 주말 전야를 맞은 독일 축구팬들은 뮌헨월드컵경기장과 동네 맥줏집이 떠나가라
함성을 질렀고, 독일의 개막전 맞상대인 지구 반대편 코스타리카 국민들도 오전 일과를 멈췄다.
월드컵 그라운드에 던져진 가죽공이 지구촌 24시를 따라 구르기 시작했다. 세계는 저마다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는 탓에
월드컵을 볼 수 있는 여건도 모두 다르다. 개최국과 인근 유럽 나라들이 오후 시간에 맥주를 마시며 느긋하게 월드컵을 즐긴다면, 한국 축구팬들은 잠 못 이루는 한달을 지내야 한다.
‘축구광의 대륙’ 중남미는 일과시간대와 겹치는 경기시간 때문에 업무시간이 어수선할 전망이다.
공식 개막전에 앞서 열린 개막식 행사에서는 펠레가 독일 출신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시퍼와 피파 월드컵 트로피를 들고
입장했으며, 이어 시데스 기히아(1930년 우루과이·79살 최고령) 보비 찰턴(1966년 잉글랜드) 등
역대 월드컵 우승 주역들이 독일 어린이들과 손을 맞잡고 들어와 월드컵 열기를 고조시켰다.
호르스트 쾰러 독일연방 대통령은 “이제 시작이다. 4주 동안 훌륭한 경기를 치르게 돼 기쁘다. 전세계를 친구로,
이것이 이번 월드컵의 모토”라며 개막을 지구촌 만방에 선언했다.
월드컵의 열기는 북한의 ‘닫힌 사회’도 열어 젖히고 있다. 북한 방송은 독일월드컵을 ‘축구 대축전’이라 표현하며 자세히
보도했다. 또 조선중앙방송위원회 명의로 남쪽에 월드컵 시청 협조를 부탁하는 한편, 조선우표사가
역대 월드컵 스타들의 모습을 담은 4종의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뮌헨/오태규, 정세라 기자 ohtak@hani.co.kr 한겨레 2006-06-09 오후 06:44:05
http://www.hani.co.kr/arti/sports/soccer/worldcup2006/130848.html
2006 - 부미볼 타이 국왕 즉위 60돌
정치적 혼란으로 몸살을 앓던 타이가 오랜만에 잔치 분위기로 들떴다. 전세계 25개국 왕과 왕족들도 방콕에 모였다.
9일로 즉위 60돌을 맞은 부미볼 아둘리아데지(Bhumibol Adulyadej, 1927~ ) 타이 국왕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이날 오전 국왕은 왕궁 발코니에서 ‘국민과의 만남’ 행사를 열었다, 타이인들이 상서롭게 생각하는 시간인 19시19분에는
모든 타이인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촛불을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앞으로 며칠 동안 코끼리 행진 등 축하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타이 곳곳은 왕실을 상징하는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과 국왕의 초상화로 물결을 이뤘다.
현존하는 ‘세계 최장수 재위 국왕’인 그는 타이 현대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입헌군주제인 타이에서 절대왕권은
1932년 폐지됐지만, 푸미폰 국왕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어낸 국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타이 정치의 고비고비마다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평소 “현실을 알지만 입은 닫는다”는 정치 불개입 원칙을 고수하지만, 1973년 군부가 민주화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에게
발포하자 왕궁 문을 열어 도망치는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등 군사정권 반대를 분명히 했다. 92년 군사쿠데타와 뒤이은
민주화 시위로 희생자가 늘자 양쪽의 지도자를 불러들였고, 국왕 앞에 머리를 조아렸던
쿠데타 주모자 수친다 끄라쁘라윤 장군은 곧 사임했다.
올해에도 탁신(Thaksin Shinawatra, 1949~ ) 총리 일가의 부정부패에 항의하는 시위가 거세지자 탁신 총리를 궁전으로
불렀고, 국왕을 만난 후 탁신 총리는 “올해는 국왕 즉위 60돌인 상서로운 해이기 때문에 사임한다”며 물러났다.
당시 타이 일간지 <네이션>은 “국왕이 속삭인다”는 제목을 달았다. 조용한 말 한마디로 쿠데타나 정치적 소요가 멈추고,
총리를 하야시키는 국왕의 힘을 표현한 것이다. 차크리 왕조의 9대 국왕이자 ‘국가의 영혼’으로
불리는 그는 17번의 쿠데타, 21명의 총리를 지켜보면서 섬세하게 정치적 풍랑을 해쳐왔다.
1950년대부터 자급자족형 농업개발계획을 추진해 왔고, 고산지대 소수민족들의 고냉지 채소 재배를 돕기도 했다. 세계적인 인공강우 전문가로, 직접 개발한 인공강우 기술로 가뭄 해소에 나서고 있다. 이 기술은 지난해 국제특허도 받았다.
그동안 한번도 부정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적이 없으며, 재즈 연주자로도 활약할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도 가지고 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한겨레 2006-06-09 오후 06:44:56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siapacific/130849.html
1974 - 과테말라의 시인, 소설가, 외교관 아스투리아스(Asturias, Miguel Angel) 사망
아스투리아스 [Asturias, Miguel Angel, 1899.10.19~1974.6.9]
1967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 1920∼1930년 파리 소르본대학(파리대학교)에서 마야의 문화 및 종교를 연구하는 한편,
쉬르레알리슴(초현실주의)의 영향도 받았다. 이들 연구와 어렸을 때의 체험을 토대로 중앙아메리카 원주민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 준 《과테말라의 전설집 Leyendas de Guatemala》(1930)을 발표, P.발레리를 비롯하여 프랑스와
에스파냐에서 절찬을 받았으며, 그 이후 '토착문화파(土着文化派)'로서의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대통령 각하 El sen or presidente》(1946)에서는 독재자의 압제라는 것이 인간을 내면으로부터 말살해 가는 과정을, 중앙아메리카의 한 작은 나라를 무대로 하여 독특하고 박력 있는 문장으로 묘사하였다. 《옥수수의 인간 Hombres de maiz》(1949)에서는
옥수수 농사를 하는 땅과 더불어 수천 년의 역사를 살아온 인디오들이, 대자본가에게 땅을 빼앗기는 한편 땅과의 정리를 잃고,
서유럽문명과의 접촉으로 타락해 가는 현실을 묘사하였다.
이 밖에도 《강풍(强風) Viento fuerte》(1950), 《녹색의 교황(敎皇) El Papa verde》(1953), 《과테말라의 주말 Weekenden Guatemala》(1955), 《죽은 자들의 눈 Los ojos de los enterrados》(1960), 《물라타의 여인 Mulata de tal》(1963) 등이 있다.
창작활동 외에 프랑스 주재 대사도 역임하였다. -naver
1970 - 서울 지하철건설본부 발족
서울특별시지하철건설본부는 1970년 6월 9일 발족하였으며, 1974년 8월 15일 1호선 7.8㎞ 구간을 개통하였다(1971. 4 착공).
1978년 3월 2호선 착공 및 1980년 2월 3·4호선 착공 후 1981년 9월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가 설립되면서 3·4호선 건설사업을 인수하였다(1985년 10월 3호선 27.7㎞, 4호선 28.3㎞ 완전개통). 1984년 5월 2호선(57.2㎞)이 완전개통되면서 같은 해 9월 15일 해체되었다.
1989년 11월 3일 서울특별시 제2기 지하철 건설을 위한 서울특별시지하철건설본부가 다시 발족하여 같은 해 11월 3·4호선 연장구간 공사에 들어가고, 1990년 6월 5호선, 12월 7·8호선, 1994년 1월 6호선 공사에 들어갔다.
1994년 4월 3·4호선 연장구간(12㎞), 1996년 12월 5호선(52㎞), 1999년 7월 8호선(17.6㎞), 2000년 8월 7호선(42㎞)이 완전개통하였다. 6호선(31㎞)은 2000년 12월 초에 완전개통할 예정이었으나 건설업체의 부도 및 파산절차로 2001년 초로 연기되었다. 이보다 앞서 1994년 3월 15일 지하철 5·6·7·8호선의 운영을 위해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가 설립되었다. 김포국제공항~여의도~반포(25.5㎞)
구간을 연결하는 9호선은 2001년에 착공하여 2007년에 완공할 예정이다.
1962 - 제2차 통화개혁 (10 대 1로 평가절하. 환을 원으로 변경)
1962년 6월 9일 한글로 된 최초의 화폐 단위가 채택되었다. 5·16군사정변 이후 통화량의 투기자금화를 방지하고
음성적인 부정축재자금을 장기산업투자재원으로 활용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제2차 긴급통화금융조치가 취해졌다. 이 조치는 긴급통화조치법의 개정법률과 긴급금융조치법에 의거해 단행되었는데, 당시의 혁명정부가 제2차 통화개혁을
단행하면서 종래의 환 대신 원을 새로운 통화단위로 채용했다. 환과 원의 교환비율은 10 대 1이었다.
1961 - 프랑스의 세균학자 게랭(Guérin, Camille) 사망
게랭 [Guérin, Camille, 1872.12.22~1961.6.9]
알베르 칼메트(Calmette, Albert, 1863∼1933)와 함께 결핵예방 백신(Bacillus Calmette Guerin/ BCG)을 개발한 학자.
이 백신은 유럽과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수의사로 경력을 쌓은 뒤 게랭은 1897년 릴리에 있는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칼메트와 함께 일하게 되었으며,
일생을 백신연구에 바쳤다. 그는 1906년 결핵에 대한 저항력이 몸속에 있는 간균(桿菌)과 관련되어 있음을 밝혔으며,
13년에 걸쳐 칼메트와 함께 독성이 더 작은 우(牛)결핵균을 배양해내는 데 성공했다. 1921년에는 마침내 그들이 배양한
세균이 인체에는 해를 주지 않으면서 항체형성을 촉진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1922년 파리의 샤리테 병원에서 출생한 신생아들에게 최초로 그들이 만든 백신을 접종했다.
백신에 대한 모든 의문점들이 해결된 1930년대부터는 일본·러시아·중국·영국·캐나다·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도 집단을 대상으로 백신접종이 실시되었으며, 1950년부터는 일리노이대학과 그 연구재단이 미국에서 생산과 판매를 시작했다.
게랭은 죽을 때까지 파스퇴르 연구소의 명예소장으로 있었다. - 브리태니커
- '94 세계구강보건의 해 기념 (1994.06.09. 발행)
1946 - 제1회 구강보건의 날(치아의 날)
해방직후 齒協의 전신인 조선치과의사회는 해방되던 해인 1945년에 재발족하고 이듬해인 1946년 6월 들어
「구강위생강조주간」을 설정했다. 제1회 구강보건주간행사가 시작된 것이다.
매년 6월 9일∼15일까지 「구강위생강조주간」으로 설정한 조선치과의사회는 이 기간동안에 전국 치과의사들이 총동원되어 각 국민학교 아동에 대한 구강검사와 중고교생들에게 구강위생강연 등을 펼치고 라디오,
신문 등을 통해 대국민계몽사업을 펼쳐나갔다.
특별히 6월 9일을 구강위생의 날로 정한 것은 `6세 구치를 보호하자'는 의미에서 6과 9를 따서 6월 9일을 구강보건의 날로 정한 것이다. 과연 누가 이 아이디어를 주장했으며 어느 임원회에서 결의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시기로 봐서
1946년 4월∼1947년 5월까지 재임했던 조선치과의사회 제2대 회장이신 박명진(朴明鎭) 회장 재임시라고 추정할 수 있으며, 이한수(李漢水) 등에 의하면 1947년 서울대학교에서 예방위생학을 강의하신 김문조(金文祚) 선생님이 당시 치과대학 3학년 강의중 6월 9일을 구강위생의 날로 제정하게된 배경을 설명하신 적이 있고, 김문조(金文祚) 선생님이 당시 조선치과의사회 보건위원(1945∼1947)이셨던 점을 감안하면 김문조(金文祚) 선생님이 주장하셨으리라는 개연성이 있다.
변영남(성신치과의원 원장) 2002.05.20 www.dentist2.co.kr
1942 - 체코슬로바키아의 리디체가 하이드리히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파괴되다
리디체 [Lidice]
체코슬로바키아 스트르제도체스키 주(중앙 보헤미아 지방)에 있는 마을.
프라하의 바로 북서쪽에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 클라드노 석탄분지의 광산촌이었으며 인구는 약 450명이었다.
1942년 6월 10일 이 마을은 독일군에 의해 몰살당했는데, 그것은 나치독일의 친위대 부대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별칭은 '교수집행인 하이드리히')가 체크의 지하투사들에 의해 암살된 것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의 일환이었다.
하이드리히가 폭격의 부상으로 죽은 지 5일 후인 6월 9일 친위대가 리디체 주민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이튿날 남자 172명을 총살했다. 현장에서 총살되었거나 그 이전에 도망치려다 총살된 7명을 제외한 여자들은 라벤스브뤼크 집단수용소로
이송되어, 이곳에서 47명이 죽었고(7명은 가스로 처형) 3명은 실종되었다. 도망치려다 총살된 어린이 1명을 제외한 90명의 어린이들은 조사를 통해 '순수한 혈통'임이 밝혀져, 독일 전역에 분산시켜 이름을 고치고 독일인으로 양육했다.
1차 체포에서 빠졌던 이 지역 광부들(남자 19명)은 그후 프라하에서 처형당했다. 학살과 강제수송이 끝나자 친위대는
리디체를 불지르고 무너지지 않는 모든 구조물을 폭파했으며 잔해를 갈아 없앴다.
리디체 대학살이 끝나고 2년 뒤인 같은 날에 오라두르쉬르글란이라는 프랑스 마을에서 이와 비슷하면서도 그 규모가
더 큰 파괴행위가 벌어졌다. 1947년 그 근처에 새로운 마을부지가 지정되었다. 기념비와 국제적 규모의 장미정원을 갖춘
박물관이 원래 마을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인구 505(1970). /브리태니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독일어:Reinhard Heydrich, 1904년3월 7일 ~ 1942년6월 4일)는 게슈타포 및 SS보안방첩부의 수장으로서 나치 독일 치하에서 국가보안본부의 수장 및 보헤미아 및 모라비아 보호령의 총독대리를 지낸 인물로서
1942년 6월 4일, 영국에서 훈련받은 체코슬로바키아레지스탕스의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하이드리히 사후 국가보안본부는 에른스트 카르텐브루너가 후임으로 취임했다. 생전에 하이드리히는 ‘프라하의 도살자’, ‘피에 젖은 사형집행인’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또한 하이드리히는 유대인 대학살의 주요 계획자였으며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 방안"을 모색한 1942년반제
회의를 주관했다. - 위키백과
하이드리히 암살사건
1942년5월 27일,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 총독대리 하이드리히가 체코슬로바키아레지스탕스의 공격을 받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 사건은 영국의 지원을 받은 얀 쿠비츠와 요제프 가베크가 시도한 암살 사건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권총과 폭탄 공격을 당한 하이드리히는 즉시 시립병원으로 옮겨졌고, 당시 프라하에서 가장 솜씨
좋은 외과의사인 호올 바흐므가 수술했다. 폐와 복부에 파편이 꽂혀 있었고, 중상이었다. 수술 후 하이드리히는 회복 조짐을 보였으나 6월 3일 위독상태에 빠졌다. 히믈러가 2명의 전속 의사를 급히 파견했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6월 4일 아침에 하이드리히는 사망했다. 검시 해부 결과 비장 절제 때문에 일어난 화학 현상으로 발병한 가슴 중앙부의
염증이 사인이라고 공식 기록되었다.
다만, 히믈러가 파견한 의사들의 노력이 나중에 오히려 하이드리히의 죽음을 재촉했다는 설도 있다. 하이드리히를 발탁한 것은 히믈러였지만, 이무렵 히믈러와 하이드리히의 관계는 극악의 라이벌 관계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 하이드리히를 최초로 수술한 바흐므는 전후에 나치 협력자로 체포되어 강제 노동형에 처해졌다.
이 자는 지뢰 제거 작업에 투입되었으나, 지뢰가 폭파하여 중상을 입었고, 아무도 치료하려 하지 않으려 하여 라이프치히로 옮겨졌으나, 그곳에서 죽었다.
- 레지스탕스들은 성 카를 보르메우스 교회에 숨어있었는데, SS와 게슈타포가 습격하여 모두 죽여버렸다.
- 하이드리히가 죽은 날, 152명의 유대인이 처형되었다.
- 6월 9일, 복수를 이유로 7 SS의용산악사단 프린츠오이겐의 일부 병력이 차출되어 한낱 농촌에 불과했던 리데체를
완전히 파괴했다. 마을 주민 중 남자들 172명이 처형되었고, 여자들은 수용소로 보내졌으며,
아이들은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로 입양보내졌다. 이 아이들 중 일부는 나중에 다시 발견되었다.
- 하이드리히 사후 국가보안본부는 히믈러에 충직한 에른스트 카르텐브루너가 장으로 임명되었지만,
1943년 1월말에 취임했다.
- 영화 《새벽의 7인 (원제 : Operation Daybreak)》는 이 사건을 다룬 영화다.
- 한글학회 창립 50돌, 창립 60돌 기념
1896 - 국어학자 이희승(李熙昇) 출생
이희승 [李熙昇, 1896.6.9~1989.11.27]
이희승은 현대 국어학 발전의 초석을 놓은 국어학자이다.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국어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조선어학회에서 국어연구에 주력하다가,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에는 경성대 교수, 1946년 학제개편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썼다. 1961년 정년 퇴임 후에는 서울대 명예교수, 동아일보사 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활발한 학문 및
사회 활동을 했다. 그는 규범문법을 정립하고 근대적인 학문으로서 국어학의 체계를 세우고자 노력했다.
주요 저서로 <초급국어문법>(1949)·<국어학개설>(1955)·<국어대사전>(1961) 등이 있다. 그밖에 <박꽃>(1947) 등의 시집,
<딸깍발이>(1952)·<벙어리 냉가슴>(1956) 등의 수필집을 남겼다.
"한 민족의 언어는 그 민족의 정신생활의 총화와 물질생활의 전부가 반영된 상징물이고,
사전은 그러한 언어가 담겨 있는 그릇이다."
- 이희승, <국어대사전> 머리말
1891 - 미국의 작곡가 포터(Porter, Cole) 출생
1891 - 미국의 작곡가 포터(Porter, Cole) 출생
1870 - 영국의 소설가 디킨스(Dickens, Charles) 사망
1865 - 덴마크의 작곡가 닐센(Nielsen, Carl) 출생
1843 -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평화주의자 주트너(Suttner, Bertha von) 출생
1781 - 영국의 증기기관차 발명가 스티븐슨(Stephenson, George) 출생
1762 - 프랑스, 루소의 <에밀>에 대해 유죄판결 내리고 체포령 내림
1672 - 러시아의 차르, 황제 표트르 1세(Pyotr I) 출생
1597 - 네덜란드의 화가 산레담(Saenredam, Pieter Jansz)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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