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05.31 바다의 날, 세계 금연의 날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루스벨트
1) 2) 3)
1) 2007 - 유엔, "아웅산 수지 감금은 국제법 위반"
임의감금에 대한 유엔 실무그룹은 31일(현지시간) 미얀마 군사정부가 국제법을 어기고 아웅산 수지 여사를 가택연금
조치한 것이라고 확인하고 수지 여사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했다.
유엔실무그룹은 "아웅산 수지 여사의 자유를 박탈한 것은 독단적인 횡포로, 세계인권선언 조항에 배치되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고 수지 여사의 변호사이자 미국 자유인권회 회장인 자레드 젠서가 31일 전했다.
젠서 회장은 "미얀마 정부가 수지 여사를 가둔 것이 국제법을 위반하는 행위임을 유엔으로부터 재확인받아 만족스럽다"면서
"이 사태는 한 여성을 감금한 것에 그치지 않고 미얀마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의 표상과 같다"고 말했다.
최근 아웅산 수지의 가택연금을 1년 연장한다고 밝힌 미얀마 군사정권은 당초 수지 여사가 자신의 신변보호를 위해 스스로 갇혀있다고 주장했으나 이후 "아웅산 수지는 국가안전에 위협을 가한다"며 말을 바꿨다.
이로써 유엔 실무그룹의 이런 입장은 수지 여사가 정부 전복을 꾀했다는 미얀마 군사정권의 주장에 근거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 노르웨이 총리를 지낸 쉘 마그네 본데빅 등 각국의 전직 대통령과 총리 등 59명은 이달 초
미얀마 군정 최고지도자인 탄 쉐 장군에게 수지 여사의 석방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낸 바 있다.
-미주복음방송국 2007-06-01 - http://www.kgbc.com/bbs/board.php?bo_table=sub2_03&wr_id=466&page=6
2) 1980 - 정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신설
1980년 5월 31일 유신체제 붕괴 후 등장한 신군부가 통치권을 확립하기 위해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와 국보위상임위원회를 설치하고 상임위원장에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임명했다. 국보위는 6월 17일 국기문란·시위주도 등의혐의로 정치인·교수 등 329명을 지명수배했으며, 6월 24일 김종필·이후락 등 유신세력의 핵심인사들을 모든 공직에서 배제시켰다.
7월 9일에는 고급 공무원 232명을 숙정했고, 7월 31일에는 <창작과 비평> 등 172개 정기간행물과 일본 <아사히 신문 朝日新聞> 등 외국 신문의 서울지국을 유언비어 보도혐의로 폐쇄했다.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의 하야로 국보위의 정치적 정지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이어 8월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실시된 선거에서 총투표자 2,525명 중 찬성 2,524표,
기권 1표를 얻어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3) 1959 싱가포르 제1회 총선거
싱가포르는 중국계 이민이 많아 정치활동이 침체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의 점령에 따른 반일 저항운동을 계기로 정치활동이 활발해졌다. 1955년에는 입법의원의 반수가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정치활동이 더욱 발전하여 반식민지 투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주의적 경향을 띤 정당으로 ‘노공전선(勞工戰線)’과 ‘인민행동당(人民行動黨)’이 결성되었으며, 전자는 1955년의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싱가포르의 반식민지 투쟁이 확대되자 영국은 1959년 싱가포르를 자치령으로 만들었으며, 그해 6월에 공포된 헌법에 따라 실시된 입법회의 선거에서는 중국계 유권자, 특히 청년·노동자층을 기반으로 하는 인민행동당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인민행동당의 리콴유[李光燿]가 총리가 되면서부터 사회주의적 정책을 탈피하고 영국기지의 존속, 평화적 방법에 의한 사회변혁을 달성, 노사협조 등과 같은 온건한 정책을 택하였으며, 경제정책으로는 공업화의 촉진에 중점을 두었다.
(6월 3일 자치국 독립선언, 6월 5일 이광요 내각 성립)
1) 2) 3)
1) 2005 - 동학지도자 전봉준 체포된 ‘순창 피노리 주막’ 재현
동학농민혁명 지도자인 전봉준 장군이 관군에 체포됐던 전북 순창군 쌍치면 금성리 피노마을 주막이 복원됐다.
순창군은 31일 “피노마을 옛 금국초등학교 터 2792㎡에 마을 주막과 초가집 정자 등을 재현했다”고 밝혔다. 전시관에는 동학혁명의 전개 과정과 전봉준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그림과 사진 등 교육자료 107점을 진열했다.
강인형 군수는 “호국의 현장인 회문산과 함께 피노마을 주막을 역사탐방 관광코스로 개발해 후손에게 항쟁의 역사를 제대로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녹두장군으로 불린 전봉준 장군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군을 이끌다 그해 11월 초 공주 우금치전투에서 패배했다. 그 뒤 도망을
다니다 같은 해 12월 피노마을 주막에서 부하였던 김경천의 밀고로 붙잡혀 일본군에 넘겨졌으며, 다음해 4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전주-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한겨레 2005-06-01
2) 1996 - 제1회 '바다의날'
1994년 11월, 유엔해양법협약 발효를 계기로 해양 자유이용 시대에서 해양분할경쟁 시대로 바뀌게 되면서 해양을 둘러싼 국제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자 이러한 국제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21세기 해양시대를 맞아 세계 해양
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1996년 제정한 법정 기념일로, 해양수산부가 주관한다.
매년 5월 31일을 바다의 날로 정한 것은 통일신라시대 장보고(張保皐) 대사(大使)가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한 날을
기념하고, 또 국민 축제 시기에 적합하다는 이유에서이다. 이 날 행사는 전국 지방해운항만청과 해양경찰서,
해군 및 해병대, 관련 기관 등에서 각각 특성에 맞는 행사를 개최하는데,
주로 항만 및 바다 청소, 국민 계몽, 수산자원 보호 등과 관련된 행사를 한다.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했던 완도에서는 5월 27일부터 5월 31일까지를 장보고 축제 기간으로 정해 전국 청소년장보고
선발대회, 장보고 무역선 승선체험, 장보고배 전국 국악경연대회, 바다의 날 기념음악회, 해군함정 관람 등의 행사를 한다. 그밖에 지역별로 민·경 친선도모를 위해 지역 주민과 학생들을 초청해 경비함정 및 주요 장비 공개행사를 하는 한편, 해상 정화 및 치어 방류, 기념축제 등을 벌이기도 한다.
해양수산부에서는 해양산업 발전에 기여한 민간인 또는 단체를 대상으로 해양개발·해운항만·해양환경·수산진흥·해양안정 등 5개 분야로 나누어 훈장·포장·표창 등을 수여해 해양산업 종사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 국민들에게는 해양에 대한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계기로 삼고 있다.
3) 1948 - 제헌국회(制憲國會) 개원
1948년 5월 31일 대한민국 제1대 국회인 제헌국회가 총 203일의 회기를 일정으로 개원했다. 제헌국회는 많은 논란 끝에
실시되었던 1948년 5·10총선거 결과 선출된 198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었다. 제헌국회는 7월 12일 헌법을, 16일 정부조직법을 제정하고 20일 이승만·이시영을 각각 정·부통령으로 선출하는 등 정부수립을 위한 준비를 진행시켰다. 제헌국회가 통과시킨 법안에는
친일파의 처벌을 위한 '반민족행위처벌법', 양곡의 정부 매도를 의무화한 '양곡매입법안', '국가보안법안' 등 20건이 있다.
세계 금연의 날
세계보건기구(WHO)가 '연기 없는 사회(smoke free society)' 조성을 목표로 1987년 5월 총회에서
창립 40주년을 맞이하여 결의한 날. 이날 하루만이라도 담배의 해가 없는 세계를 만들고, 끽연자가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의도에 의해 5월 31일로 정하였다.
한국도 가맹한 WHO는 '모든 적절한 수단을 강구하여 국민이 금연하도록 할 것', '담배 판매자에게 당일 모든
담배 제품의 판매를 자숙하도록 지도할 것' 등을 결의하였다
2003 - 에어프랑스사 콩코드 마지막 운항 (뉴욕~파리)
대형사고가 2000년 7월 25일 프랑스 Paris-Charles De Gaulle 공항에서 발생했다. 앞서 이륙한 항공기로부터 떨어져 나온 티타늄
금속이 이륙 중에 있던 콩코드 좌측 타이어에 부딪혀 타이어가 찢어져 터지는 바람에 날개 아랫면이 관통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충격으로 연료탱크도 깨지게 되었다. 이륙 후에 랜딩기어는 동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고 조종사는 항공기를
멈출 수 없는 상태에서 가까운 공항에 착륙하려고 했다. 그러나 속도제어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륙 후 3분도 안된 채 스톨상태로 들어갔고 추락하여 113명이 사망하게 되었다.
이 사고 후 영국과 프랑스 엔지니어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는데 구멍이 나도 터지지 않는 미쉐린 사가 새로 개발한 타이어가 장착되었고 날개 표면이 손상되더라고 연료 유출을 상당히 감소시키는 Kevlar 라이너들이 각 연료탱크에 장착되었다.
랜딩기어를 위한 유압 장치들도 보호되었다. 이렇게 개선된 콩코드는 2001년 7월 17일 다시 운항이 재개되었다.
2003년 4월 10일 , British Airways 와 Air France 항공사는 콩코드의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발표했다. 기술적 문제라기 보다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대서양 횡단 여행 승객 감소와 유지비용 증가 등으로 인해 더 이상 경제적 이익을 더 이상 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 였다. 2003년 5월 31일 에어 프랑스는 콩코드의 마지막 운항을 하였고 영국 브리티시 에어웨이사도 11월에 최종 비행을 하였다.
콩코드 프로그램이 실제적으로 남긴 유산은 단지 아름다운 여객기라는 점이 아니라 대단한 기술적 도전과제를 극복하기 위한 유럽의 기술 협력 문화와 생산 인프라 스트럭쳐의 강화일 것이다. 필턴과 톨루즈에 있던 콩코드 제작공장은 현제 에어버스 사의 일부가 되었으며 보잉사 와의 대등한 경쟁을 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콩코드는 아직까지 세계에서 유일한 상업용 초음속 여객기로서 남아있다.
항공우주연구정보센터 www.aric.or.kr/info/people
(에어프랑스사 콩코드 마지막 운항은 5월 30일 파리~뉴욕간 운항과 다음날 뉴욕~파리간 회항편 입니다. ^.@)
-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 2002.5.31 발행
2002 - 제17회 월드컵축구대회 개막 (한국-일본)
지구촌 최대의 축제, 21세기 첫 축구제전인 2002 한일월드컵 축구대회가 2002년 5월 31일 역사적인 막을 올렸다.
17회를 맞은 이번 월드컵은 오후 8시30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지난 1998년 대회 우승팀 프랑스와 세네갈의 경기를 시작으로 킥오프, 31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2년여동안 치열한 지역예선을 거친 본선진출 32개국은 한국과 일본 20개 도시의 경기장에서 8개조로 나뉘어 조별 리그전을 벌였다. 한일월드컵은 사상 최초로 동양에서 열렸을 뿐만 아니라 2개국이 공동개최하는 첫 대회였다. 프랑스와 세네갈의 개막전은
이변의 전주곡이었다. FIFA 랭킹 42위 세네갈이 1위인 프랑스를 1대0으로 침몰시켰기 때문이다.
한국은 종합전적 3승2무2패로 4위에 올라 전국민을 흥분시켰고 세계를 놀라게 했다. 개막식은 `동방으로부터(From the East)`라는 주제로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고, 상생의 정신을 표현해 전세계 시청자들의 갈채를 받았다.
1999 - 김대중 대통령 몽골 방문, 한국-몽골 정상회담
김대중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 울란바토르 정부종합청사에서 1999년 5월31일 바가반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 90년 수교 이후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몽골을 국빈 방문한 김 대통령은 청사 3층에서 단독회담과 확대회담 순으로 모두 1시간30분 가량 양국 관심사를 협의했다. 대통령은 회담에서 대북 포용정책과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해 설명했고, 바가반디 대통령은 충분한 이해와 지지의 뜻을 표명했다. 양국 정상은 회담후 옆방으로 자리를 옮겨 양국간 형사사법공조조약, 범죄인인도조약 등 조약 서명식을
참관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21세기 새로운 차원의 상호보완적 협력관계를 위한 노력을 골자로 한 11개항의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김 대통령은 회견 서두발언에서 "이번 회담을 통해 우리 두 나라 관계를 새로운 천년의 공동번영을 위한 긴밀한 협력관계로
발전시킬 자신감을 얻었으며, 밝은 미래를 확신하게 됐다"며 회담 내용을 설명했다.
1996 - 월드컵 축구대회, 한일 공동개최 결정
21세기를 여는 첫 월드컵축구대회의 팡파르는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울려 퍼지게 됐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1996년 5월 31일
스위스 취리히 FIFA본부에서 집행위원회를 열고 2002년의 제17회 월드컵을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 개최키로 결정했다.
주앙 아벨란제 국제축구연맹회장은 이날 밤 11시 취리히 돌더 그랜드호텔서 요한슨 유럽축구연맹회장 및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등 부회장단,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 사무총장, 나가누마 겐 일본축구협회회장 등 FIFA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집행위원회는 한일공동개최안을 놓고 토론을 벌인 결과 표결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고 발표했다.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공동개최 대회로 기록될 이날 결정으로 한일 양국은 경쟁자 입장에서 동반자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한국은 월드컵을 향한 국민적 열기와 정부 유치단의 추진력으로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킴으로써 공동개최를 유도하는 외교적 성과를 얻어냈다.
- 세계청소년대표자회의 기념, 1995.5.31 발행
1995 - 세계청소년 대표자 회의 개최 (5.31~6.2)
1995년에는 유엔·유네스코·한국정부가 공동으로 '유엔 창설 50주년 및 유엔제정 관용의 해'를 기념해 ‘관용,
도덕과 인간성 회복을 위한 대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30여 개국 1500여 명이 참가했으며,
같은 해에 '세계청소년 대표자 회의'와 ‘21세기 사회윤리에 관한 국제학술회의'도 연속 개최했다.
http://www.khus.ac.kr/works2.html
- 제13회 멕시코월드컵 출전 기념, 1986.5.31 발행
1986 - 제13회 월드컵축구대회 개막 (멕시코)
1986년 5월 31일 멕시코의 아즈텍 경기장에서 개막된 월드컵에는 축구 강호 24개국이 모습을 드러냈다.
66년 북한이 이룩한 8강신화를 창조하려는 한국팀은 대회 최강으로 지목되는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와 한조가되어 있었다.
서독 프로리그에서 활약중인 차범근까지 끌어들인 한국대표팀은 아르헨티나에게 3대1로 패하며 반칙만이
난무하는 팀이라는 혹평을 받는다.
불가리아와 무승부를 기록하며 이탈리아와의 한판에 목숨을 건 대표팀은 최순호의 동점골과 허정무의 추격골로 최선을 다했지만
세계의 장벽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경기방식이 조정 되어진 이번 대회는 이전에 2차 리그로 4강을 뽑던 방식을 버리고 16개국을
뽑아 토너먼트를 벌이는 방식으로 조정이 되었다.
4강을 가리는 4경기 중 3경기가 승부차기로 갈만큼 접전이었던 이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는 축구의 신동이라는 걸죽한 스타를
탄생시킴으로 월드컵에 한발자국 다가서게 된다.
신의 손이라는 논쟁을 불러일으킨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문제의 골 이후 3분 뒤 미드필드에서 단독드리블로 수비수 5명과
골키퍼마저 제치고 성공시킨 마라도나는 이 대회의 영웅으로 추대를 받게 된다.
프랑스와 벨기에를 각각 2대 0으로 물리친 서독과 아르헨티나는 결승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지만 마라도나의 2어시스트로 서독을
물리치게 된다. 가난한 아르헨티나의 감격적인 우승이었다. /KBS 영상실록 worldcup.kbs.co.kr
1970 - 제9회 월드컵축구대회 개막 (멕시코)
FIFA(국제축구연맹) 주관 아래 열린 월드컵축구대회로, 16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1970년 5월 31일부터 6월 21일까지
22일간 멕시코에서 개최되었다. 1964년 도쿄[東京]총회에서, 해발고도 1000m의 고지대와 고온(高溫)이라는 약점을 안은 멕시코가 1968년 올림픽경기대회 주최국이라는 장점을 업고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75개국이 지역예선에 참가하였고, 개최국인 멕시코와 전 대회 우승국인 잉글랜드를 포함하여 16개국이 본선에 올랐다. 대회는 멕시코시티·과달라하라·레온·톨루카·푸에블라 5개도시에서 열렸으며 4개국씩 4개조로 나누어 조별 리그전을 벌이고 각조에서 1·2위를 차지한 8개팀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을 가렸다.
펠레를 중심으로 한 브라질은 7전 전승으로 3번째 우승을 차지하여 FIFA의 규정에 따라 쥘리메컵을 영구 소유하게 되었고,
이탈리아가 준우승, 서독(지금의 독일)이 3위를 차지하였다.
32개경기가 치러진 이 대회의 총관중은 167만 3915명, 평균관중은 5만 2312명, 총득점은 95점, 경기당 평균득점은 2.97점이다.
사상 최초로 선수교체 및 옐로·레드카드를 도입하는 등 규정을 개정하여 이전 대회들에 비하여 거친 경기가 많이 줄어들었다.
1968 - 제1회 '집배원의 날'
"체신부에서는 1967. 11. 27 체신부 훈령 제341호로 매년 5월 31일을 '집배원의 날'로 제정하여 금년에 첫회를 맞이한다.
우리나라에 현대식 우편제도가 실시된 후 84년간 체신사업의 첨병(尖兵)으로 가진 고난을 극복하면서 맡은바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 집배원을 위하여 집배원의 날이 제정됨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매년 이날을 기념하고 그들의 사기를 진작(振作)시켜 명랑한 분위기에서 우정사업에 종사할 수 있게함은 하나의 쾌사(快事)가 아닐수 없다.
오늘도 우리들의 갖가지 사연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
가가호호(家家戶戶)를 누비며 두루 다니는 집배원을 볼때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집배원의 날을 기하여 그들의 불굴의 진취성과 희망찬 내일에 대한 포부를 안겨주는 한편 우편 집배업무의 개선향상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동시 우리다같이 집배원들의 노고를 다시한번 상기하면서 격려와 따뜻한 위로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 이다.
체신부에서는 이렇듯 뜻깊은 제1회 집배원의 날을 맞이하여 온 국민과 함께 축하하며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각종 행사와 더불어 2종의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kstamp 1968-05-31
정보통신의 날 (4월 22일)
의의
정보통신의 중요성과 의의를 높이고 정보통신사업의 발전을 다짐하며 관계종사원의 노고를 위로
유래 및 연혁
'56. 6. 4 우정총국 개설 축하연을 베푼 날(1884. 12. 4)을 '체신의 날'로 지정(체신부훈령)
'67.11.27 5월 31일을 '집배원의 날'로 지정(체신부훈령)
※ '64. 5.31 충남 금산군내 기자단이 집배원의 노고를 위로 격려하고, '66. 5.30부터는 모범 집배원을 포상하고
노고를 치하하는 행사를 가짐
'72. 7. 7 고종황제께서 우정총국 개설을 명령한 날 (1884. 4. 22)을 '체신의 날'로 개정(체신부훈령)
'73. 1.24 집배원의 날을 “체신의 날”에 통합 (체신부훈령)
'73. 3.30 법정기념일로 제정
'96. 5.30 명칭 변경 (체신의날 → 정보통신의날)
법정기념일-행정안전부
http://www.mopas.go.kr/gpms/view/korea/korea_index_vm.jsp?cat=
bonbu/chief&menu=chief_06_03_sub3_2
1962 - 유태인 학살범 아이히만 교수형
전직 나치스 친위대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이 1962년 5월 31일 이스라엘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아이히만은 1961년 12월 15일
이스라엘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1906년생인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중에 독일과 독일 점령하의 유럽 각지에 살고 있던 유태인의 체포-강제이주-살해를 계획하고 지휘했다.
독일이 패전한 뒤 가족을 데리고 대서양을 건너 아르헨티나로 도망가 그곳에서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명으로 아르헨티나 시민권을 얻은 뒤 부에노스 아이레스 근처의 자동차 공장에서 기계공으로 은신해 있던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비밀정보부 모사드의 끈질긴 추적끝에 1960년 5월에 아르헨티나에서 납치돼 이스라엘로 비밀리에 압송되어 재판을 받게 된 것이었다.
모사드의 아이히만 납치가 국제법을 위반했고, 나치 전범을 처벌하기 위한 1950년 법률이 형벌 불소급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 등을 둘러싼 이스라엘 검사와 독일 변호사간의 법정공방이 뜨거웠으나 이스라엘 법정은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선
(5월 31일 자정 무렵 형이 집행된 모양입니다. ^.@)
1930 - 미국의 영화배우,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Eastwood, Clint) 출생
1924 - 미국의 첫 흑인 여성 관방장관 해리스(Harris, Patricia Roberts) 출생
1923 - 모나코 공국의 군주 레니에 3세(Rainier III) 출생
1910 - 남아프리카공화국, 영국으로부터 독립
1887 - 프랑스의 시인, 외교관 생 종 페르스(Saint-John Perse) 출생
1886 - 이화학당(梨花學堂) 설립
1857 - 로마 교황 비오 11세(Pius XI) 출생
1832 - 프랑스의 수학자 갈루아(Galois, Évariste) 사망
1819 - 미국의 저널리스트, 시인 휘트먼(Whitman, Walt) 출생
1817 - 독일의 시인 헤르베크(Herwegh, Georg) 출생
1809 -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하이든(Haydn, Joseph) 사망
1773 - 독일의 소설가, 극작가 티크(Tieck, Ludwig) 출생
1750 - 프로이센의 정치가 하르덴베르크(Hardenberg, Karl August von) 출생
1557 - 러시아의 차르 표도르 1세(Fyodor I) 출생
'오늘의 뉴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우표와 사건 06.02(1) (0) | 2019.06.03 |
---|---|
오늘의 우표 06.02 (0) | 2019.06.02 |
오늘의 우표와사건 06.01 (0) | 2019.06.01 |
오늘의 우표와 사건 06.01 (0) | 2019.06.01 |
오늘의 우표 05,31(2) (0) | 2019.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