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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스르기

나의 첫사랑에 그리움

 

 

나의 첫사랑에 대한 생각 

 

부부간에 인연을 맺고 살아가면서 서로가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때로는 모든 것이 하나같이 같을 수는 없다.

 

추억, 여행, 첫사랑이야기, 설레는 마음 등 등…

 

한 지붕 밑에서 인연을 맺고 살아온 부부이지만 모든 것이  항상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서로가 다른 모습으로 살아오면서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감정은 더 더욱 다른 것 같다.

 

아내는 서로 젊은 날 살아온 과거에 대한 사랑에 대한 감정표현에서는 단호하다고 할 만큼 외 골로 엄한 어머니 품에서 자란 탓인지 아니 엄한 가풍 속에서 길들여진 가정교육 때문일까?. 젊은 날 그 누구에 대하여서도 첫사랑의 감정을 가져보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나도 어느 누구와 사랑을 속삭이거나 사랑의 수작을 벌인 일은 없지만 첫 사랑이란 추억의 감정 하나는 가슴속에 숨겨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내와 같이 살아오면서 당연히 잊어지고 잊어야  할 것 같은 일인데 말입니다.

그 사랑의 첫 대상은 이름도 모르는 부산여자중학교 3학년 한 예쁜 얼굴의 소유자인 한 소녀 가 있었습니다. 당시 부산여자중학교는 가슴에 단 학교 교복의 뱃지 크로바의 색갈로 학년을 구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예쁜 얼굴의 소녀에 대하여 내가 아는것은 학교와 학년외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동생들의 이름은 수없이 들은 일이 있지만 그 소녀의 이름은 알지 못하며 단지 아버지의 성함이 던 문패를 보고 성이 송씨라는사실을 알았을 뿐이다. 수 많은 시간이 흘러간 후 우연히 알았던 일인데 그의 부친은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녀는 천사 같은 미모의 소유자 이였습니다. 장미꽃 아름답게 피어나던 오월 중순 어느날 내가 이른 아침 세벽 교회 같다가 서대신동2가 소녀집 앞을 지나오는 길목  대문앞에 서서 미소 짓고 있던 첫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은 깊은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한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60년도 당시  “스와니강의 추억”이란 인기 음악영화가 한편 상영되고 있었다. 그 소녀는 영화속의 여주인공인 미국민요작가 포스트의 아내 제니역인  제인 맥다월과 너무 닮은 얼굴이었지요.  당시 나는 고등학교 2학년으로 학교에서 충무동에 있던 부산극장에 학교 단체로 관람한 일이 있는데 그후 이류 극장에서 상영할 때  여동생을 데리고  다시 한번 더 본 기억이 납니다.

 

어린마음에 이성에 대한 이끌림에 소녀 집 대문에 달려있던 문패의 주소로 용기를 내어서 발신자주소 없이 서대신동2가 00번지 송 00으로 하여 소월 시집과 함께 러브 레타를 보낸 일도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집 앞을 지나다니다 어쩌다가 만나면 왜 그렇게 부끄러운지  얼굴이 홍당무가 되곤 하였는지요.  소녀가 부산여자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집앞에서 만나게 되면 언제나 맑고 밝은 옅은 미소를 잃지 아니하고  보내어 주었으며  학창시절이 그렇게하여 지나 가버렸습니다.

 

세월이 50년 지난 지금까지 내마음속에 생생하게 기억되며 맑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던 그 소녀에 대한 기억이 일생 살아오면서 잊어지지 아니하는데 이것은 나의 아내에 대한 올바른 예의가 될 수 있을까?

 

아내는 가끔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이성에 대하여 마음에 사랑의 감정을 담아두고 있는 것은 육체적으로  불의을 범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합니다.

 

나는 결코 불의한 생각을 가지거나 꿈 꾼 일도 없으며, 순수한 시절의 추억으로 첫 이성에 대한 끌리던 순간의 그리움에 감정이기에 더욱 지워지지가 아니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삶의 순간이 두번씩이나 변해 갔으며 이제 공직에서 정년퇴직하여 이렇게  죄잔하여지고 늙어가는 마당에 젊음이 가지는 혈기에 타오르는 무슨 흑심이나 욕망 같은것이 있겠어요 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세상을 베워 결혼을 하고 남녀간 사랑이 무엇이지 알고 난 후에 내가 여자에게 가끔 느끼던 그런 감정과는 지금 사뭇 다른데도 아내는 사랑에 대한 개념에서 나의 생각을 이해하여 줄 수 있을까? 자신의 감정에 상처 없이 나의 마음을 받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혼자 가져보지만 한 번도 말해본적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서로 살아가면서 서로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부부 사이에서도 관용과 배려가 필요한 경우가 이렇게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종교 단체라고 하여도 한 조직이란 거대한 울에서는 서로 각자의 사고와 스타일로 업무를 추진하다보면 우리가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선의의 관용을 베풀지 아니하고  살 수가 없다하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