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구산 집회와 천부교의 시련
천부교 설립 및 소사 신앙촌 착공
민족 간 골육상쟁의 비참한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1955년도 영혼과 육신이 황폐화 된 우리 종교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해 돋는 동방 땅 끝 이 나라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목사들은 혜성처럼 나타난 젊은 30대 박태선 장로를 불의사자라고 칭하였다. 입에서 죄를 태우는 성신의 불이 나왔다. 기성교회에서 박태선 장로(하나님) 초청 집회가 앞 다투어 시작 되었으며 1955. 3. 26.~4. 5. 서울 남산 광장 집회를 시작으로 전국 순회 부흥 집회가 열리게 되었다.
박태선 장로가 개최 하는 집회마다 이슬성신이 내린다고 하였는데 예수교 총회에서는 이단의 역사로 규정하여 파직시킴으로서 자신이 경영하는 공장에서 교인80명 가지고 다시 집회를 시작하였다.
1955. 12. 25.~1956.서울 임시 중앙 전도관 개관 집회(원효로)를 시작으로 천부교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각 도청소재지 및 주요도시에 56년도 14개 재단이 개관 되었다
년도를 바꾸어서 청주전도관 개관 집회 (운천동/ 1957. 1. 14.~1. 20.) 시작으로 16개 재단이 개관되고 , 당시 황무지로 버려진 45만평 부천 소사동 범박동에 1957.11.1. 혹한기를 이용하여 소사 제일 신앙촌 착공이 있었다.
새마을 사업효시
박태선 장로는(하나님) 심령을 새롭게 해 주실 뿐만 아니라, 공장과 주택의 건축 설계에서부터 제품 생산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이 풍요롭게 살아갈 터전을 손수 모범으로 보여 당시 외국 원조가 아닌 자력갱생의 길인 새마을 사업을 전개 하도록 유도 하였다. 당시 무능한 자유당 정부는 깨닫지 못하였지만 10년이 지난 후 박정희 정권에서 이 정신이 실현되어 오늘의 부강 한국의 초석이 된 것이다.
당시 제일신앙촌의 제과 공장에서 생산되는 캐러멜과 카스텔라는 최고 인기 품목이라 새벽부터 사려는 사람들로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캐러멜은 박태선 장로께서 친히 배합 기준을 맞춰 주셔서 일본 모리나가 캐러멜보다 더 맛있다는 평을 들었고, 카스텔라도 일일이 체크하셔서 입에 살살 녹는 부드러운 맛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제과 기술력으로는 상상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지금도 6-7십대 어르신들은 그 시대의 시온제과에 대한 향수를가지고 계신다.
노고산 정상 집회
특히 1958년 여름에 열렸던 소사신앙촌 노구산 집회(1958.6.30~7.5)때는 집회 참석 연 인원 70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가 모여 노고산 정상(당시 오만 명이 수용할 대 재단 신축 터)을 하나님에게 예배하는 모습으로 뒤덮여서 교세가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창세 이후 교회 역사에서 70 만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 사실이 어디에 기록이 없었다.
이미 부흥집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체험하였고 품질 좋은 신앙촌 제품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자, 자동적으로 각 교회 교인 및 일반인과 당시 주요 사회인사 들로 부터 신앙촌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정치 종교인 야합과 천부교 시련의길
이러한 폭발적인 움직임에 위기감을 느낀 일부 기성종교 세력과 당시 정치 세력인 자유당 정치인들과 야합하여 박태선 장로(하나님)에게 존재하지 아니하는 죄명을 씌워 옥고를 치르시게 했던 것이고 시민혁명에 의한 민주당 정부 시절에는 천부교 정권이 박태선 장로에게 사형구형을 내리도록 되어 있던 날 새벽에 박정희장군 주도아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 후 재판에 의하여 출옥하였지만 이미 천부교의 이미지는 어떤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내 각종 언론은 심심풀이 땅콩 감으로 박태선 장로와 신앙촌에 대하여 악의 찬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지금 굴지의 신문이 조선일보만은 그렇지 아니하였고 언론의 정도를 지켰다. 당시 이류 신문이던 조선일보가 저렇게 크진 것도 하늘의 축복 같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나 이론도 사회가 합심하여 왕따 시키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사실을 천부교 가 대표적 사례이다.
당시 300만 기성교인 중 100만 기성교인들이 당시 천부교( 전도관)으로 몰려 왔지만 중상모략으로 다시 되돌아갔으며, 혹독한 핍박으로 지금은 교세가 예전처럼 회복하기란 긴 세월이 소요 할 것 같지만 언제가 그 시절이 다시 돌아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시의 종교교리와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성신 은혜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박태선 장로에 대한 무혐의 판결
최근 참여정부에 들어와서 독재 시절 잘못 저지러진 과거사 정리 일환으로 재심제도에 의하여 대법원으로부터 무혐의 결정을 받은 일이 있다. 각 정권마다 정치권력에 비리 붙어 기성 교회 들이 천부 교를 핍박한 주요지가 천부 교는 이단이며 범법집단으로 매도대상의 증거로 삼았다.
그러나 천부교는 이단이 아니며 성서에 모순되는 일부분을 부정하고 자신의의 교리에 따서 종교 활동하는 신종교로 태어났다. 한 시대 주도한 사업가로 종교지도자로 유명세를 남겼으나 1990년2월 7일 화천하신 박태선 (당시 천부교 회장)명의로 등록된 부동산이나 통장 금액은 한 푼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를 입증 할 수 있는 것은 반대파로 부터 천부교 와 소송 진행과정에서 밝혀진 일이다.
지금은 천부교를 핍박하는 자도 악의 찬 언로 기사도 없다. 모든 부분에서 종교 활동이 자유롭고 법과 제도가 제자리로 찾아가기 때문 인 것 같다. 거짓 주장 하다가 당장 손해배상 청구 소송 당하기 마련이라 기성교회 종교인들이 헛소리를 못하게 되었다.
영광의 날이 다시 돌아오리라
오늘날 정치인이나 종교 지도자들의 처세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박태선 장로(하나님)께서는 몸소 실천하신 위대하신 분임이 틀림없으며 그의 가르침이신 자유율법 교리는 온 세계 사람이 인정하고 교리를 받아드릴 날이 임박해져 오고 있다.
세계 각 나라와 민족이 서로 다툼 속에 전개되는 인간마음을 제어하는 길은 기존의 현실에 길들여진 생각이 아니라 자신이 하늘로부터 물어 받은 양심인 마음의 자유 율법을 지켜 나가는 삶만이 인간구원의 길이 된다. 이 길은 천부교 교리인 자유율법 뿐이다. 이제 천부교는 우리민족 뿐만 아니라 세계 각 나라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데로 불원간 기장 신앙촌을 찾아오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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