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행열차와 만원버스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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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이 울리는 앵두나무 우물가에서 동네 처녀 돈 바람나 모두 한번 잘살아 보겠다고 부모형제 다 버리고 무조건 마을을 탈출하여 돈 벌어 사람답게 살아보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대 도시로 흘러 들어갔던 시대가 우리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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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품을 떠나올 때 잘살아 보겠다며 가슴속에 다지고 다졌던 각오도 막상 고향 역에서 기차를 타던 순간부터 희미해지고, 어디로 가야할지 마땅히 정해진 목적지도 없었다. 지금부터 어떠한 어려움도 자기 혼자서 이겨내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갑자기 자신감이 없어지고 두려움이 앞섰던 그런 시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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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울로 내달음 치는 완행열차의 기적소리는 차가운 밤기운을 타고 더욱 빠르게 고향 역에서 멀어져 갔다. 차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억지로 잠을 청해 보지만 곧 닥쳐올 낯선 세계에 대한 불안감에 눈은 더욱 말똥말똥 해지고 가슴은 콩알 만 해졌다가 커졌다가 콩콩 뛰었다가 수없이 반복했다. 차창 밖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천지다. 가끔씩 빠르게 지나가는 불빛이 전부였다.
기차 안의 광경은 좌석이 비좁을 정도로 빼곡히 들어찼지만 긴 침묵만 흘렀다. 모두다 보따리를 하나씩 가슴에 안고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그 보따리에는 옷 두벌에 쌀 두 되가 전부였지만 그 사람에게는 소중한 재산이었다. 혹시나 잃어 버릴까봐 선반 위에 올려놓지 못하고 내릴 때까지 가슴에 안고 있었다.
모두다 시골에서 도회지로 돈 벌러 가는 사람들이다 보니 그 차안에 탄 사람들의 차림새는 거의가 비슷했다. 머리도 단정하게 깎고 옷도 한 벌 사 입었지만 시골티의 냄새를 지우지는 못했다.
기차가 닿는 역마다 저마다 사연을 안고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내렸다. 그들은 역에 내리자마자 모두다 하나같이 총총걸음으로 바쁘게 역에서 사라져 갔다. 그때부터 치열한 생존의 전쟁이었다.
처녀들은 여공에서부터 식모살이, 술집 종업원으로, 남자들은 공사장 막노동에서부터 중국집 배달원, 양복점 심부름꾼으로 화물차 조수로 스며들었다. 그들은 기술을 배우기 위하여 온갖 멸시를 받았지만 꾹 참고 견뎌냈다. 그 결과 그들은 타향에서 빠르게 생활의 터전을 잡아갔다. 그래서 몇 년 만에 가는 귀향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웠다”(장병길 작가의 글 중에서)는 당시 서민들이 철도를 이용하던 완행열차의 사실적인 묘사이기도 하다. 지금은 일일생활권으로 어디로 찾아가던지 몇 시간내 도착되며 서민들도 거의 KTX 를 이용하고 있으며 장거리 여행을 완행열차를 이용하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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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광역시의 경우 경제 유동인구가 많아서 때로는 혼잡한 시내버스도 간혹 있지만 모든 것이 부족한 그 시절 대중교통 수단이 버스 아니면 전무하던 시절 지나가는 버스를 놓치면 그 날은 죽을 써는 날이 되곤 했다. 출퇴근 시간에는 차장이 승객들을 한사람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서 고래고래 얼마나 악을 섰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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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차안은 콩나물시루같이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사람이 너무 많이 타 공기가 탁해 숨이 막혀 모두 다 헐떡거리며 천장을 향하여 고개만 빼들고 섰다. 앞에선 사람이 아가씨 허리든 아저씨 허리든 잡히는 대로 당기고 올라섰다. 한마디로 차안은 남녀노소가 뒤엉켜 뒤죽박죽이었다.
오는 버스마다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이기고 언제 또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은 모험이기에 무조건 올라타야지 다음을 기다릴 수 없었다. 발만 올려놓을 틈만 있으면 비집고 올라서게 되어 있어서 계속해서 밀어 붙였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지각을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점잔을 빼며 체면을 차리다가는 차도 탈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출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얼마나 태웠는지 문을 닫지 못해 안내양이 양쪽 문고리를 잡고 버스 문에 매달려 달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사회적 환경 속에서도 용하게 적응하여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 오늘의 대한민국의 주춧돌 역할을 충실하게 하였던 세대 이였다. 우리 기성세대는 세월의 차량에 매달려 지금 여기까지 왔으며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제 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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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세월의 뒤안길을 돌아 볼 때 모질고도 용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면서 어렵던 그 시절 추억들이 왠지 전쟁터의 무용담처럼 마냥 새롭고 자랑스럽기만 했으면 좋으려만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세대가 이어갈 앞날에 검은 먹구름 같은 것이 우리 곁으로 닦아 오는 것 같은 불안감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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