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도청사가 대전 시민 품으로 돌아온다.
대한제국이 1896년 8월 4일 전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에 따라 충청남도청을 공주에 설치(현.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자리)되면서 공주에 있었고, 1930년 11월 10일 조선총독부가 정식으로 충청남도청 신축 예산안 발표가 있었고 다음해인 1월 13일 충청남도청 대전이전 확정 발표 했다.
1931년 6월 12일 충청남도청 기공식에 이어 1932년 10월 1일 도청을 충청남도 공주에서 충청남도 대전시로 이전하였다.
1989년 1월 1일 충청남도 대전시가 대전광역시로 승격되어 충청남도에서 분리
소재지 대전광역시 중구 중앙로 101 (선화동 287-2)로 하여 2002년 5월 30일 등록문화재 제제14호로지정 되었다.
대전시가 대전직할시로 승격하면서 관할에서 제외, 2006년 3월 기준 7시 9군 24읍 147면 40동의 행정을 총괄하는 지방행정기관이다
2006년 2월 12일 지방자치단체와 도청소재지의 괴리에 따라 도청이전지 결정(홍성군 홍북면·예산군 삽교읍 일원) 에 따라 곧 내포 신도시로 이전하게 되면 이곳은 문화재로 남아서 대전시민 곁으로 돌아온다.
도청건물은 아치형 현관의 벽면들을 요철모양으로 파내어 장식적 요소를 가미하여, 건물 자체의 조형성을 갖추기 위한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으며, 건물의 하중을 받치는 기둥과 기단의 각을 곡선 처리하여 유연성을 살렸다.
당초 2층으로 준공되었던 것을 1960년경, 넓은 창을 낸 모임지붕형태로 3층 부분이 증축되었으며, 한때 이 건물 외부에 첨가된 문양이 조선총독부를 상징했던 오동나무 꽃이라는 의견이 있었으나 ‘도청의 장식문양은 당시 정사각형을 겹쳐, 외장을 다양하게 장식하였던 기법 중의 하나로 일왕과 왕실을 상징하는 조선총독부 마크와는 상관성이 없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그대로 존치되고 있다.
청사 바로 옆에는 충남지방경찰청이 위치해있으며 본관 이외 신관1동과 별관3동이 추가 증축되어 현존한다. 일제 강점기 권위적 성격의 청사건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근대건축물로서의 상징적 가치가 있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이 건물은 6.25 사변 때에 임시로 육군본부로 사용되기도 했다.
충남도청 소재지의 홍성 내포신도시 이전으로 인해 새로운 용도와 구체적인 홀용 방안을 모색해 오던 충남도청사를 놓고 아이디어를 제안하도록 한 공모전이었다고 한다. 어떤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돌아오더라도 개발의 미명아래 상업성 사업으로 도배 되지 말고 시민들의 정서 함양에 도움 되는 역사적 기념비로 오래토록 아름다운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대의 흔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종교, 신앙이란 (0) | 2011.12.18 |
---|---|
완행열차와 만원버스에 대한 추억 (0) | 2011.12.04 |
고려후기 최고 명문가 남평 문씨 (0) | 2011.07.18 |
민족의 한이 서린 고려 궁지 (0) | 2011.05.30 |
의우리 농촌 이농(離農)과 귀농(歸農) 현장 (0) | 2011.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