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박사가 본 인간 박정희
박정희 대통령이 "고속도로를 만들자는 사람은 너뿐이구나!"
"삶아도 구워도 먹을 수 없는 사나이"라고 한 그는 누구일까?
모든 사람이 안된다고 반대하던 경부 고속도로를 만들자고 했으며 장관을 시키려 해도 싫다 하고 재물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그를 반만년 역사이래 가장 청렴결백한 박 대통령이 삶아도 구워도 먹을 수 없는 사나이라고 했으니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는 박정희 대통령과 대구 사범 동기생으로 5,16혁명 당시 국가 최고회의 자문위원이었으며 육사, 해사, 수산대, 한양대 교수, 한국 과학기술 초대 이사장을 비롯해 인하대 총장 등반세기에 걸쳐 교단에 몸담았던 이학 박사로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인이며 거의 1세기를 살아온, 올해 93세의 김병희 박사입니다.
필자가 김병희 박사와 알게 된 것은 인터넷에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글을 올리고부터 입니다.
그동안 회고록도 보내주시며 많은 격려와 칭찬을 아낌없이 해 주신 김 박사는 6,70년대 파란만장한 격동의 시대를 중심에서 직접 몸으로 겪고 살아온 대한민국에 살아 있는 유일한 증인 중에 한 분입니다.
더욱이 홈페이지를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직접 만들고 수록한 수학적 기억력과 웬만한 도서관 하나 정도의 엄청나고 방대한 자료와 글,..., 참으로 놀라움에 감탄과 경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아래 글은 김병희(金昞熙) 박사님의 동의 없이 회고록의 일부를 발췌하여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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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야! 너와 나는 대구사범에 입학해서본관 2층, 1년 2조 교실에서 처음 만났지!
이름 글자로는 극히 드물던 "희(熙)"를 우리 둘은 똑같이 공유했기에 비록 성(姓)은 달랐어도 형제와 같은 그런 친근감을 느꼈지!!
너는 항상 모든 일에 총명했다.
게다가 의분을 느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용감한 의리의 사나이였지!
어느 날, 박물관 뒤뜰에서 대구출신 S 군과 약골인 주재정 군과 싸웠는데 깡패와도 같았던 S는 주군을 단숨에 때려눕히고 맥주병을 깨어 머리를 내리쳤는지라 유혈이 낭자했지!
모두가 겁을 먹고 도망쳤는데, 오직 박군만이 뛰어들어 그를 때려눕히고 주군을 구출했다.
그 용기와 지모 그리고 그의 애국심 등이 5.16혁명을 있게 하였건만,
그에게 넘겨진 대한민국은 GNP 83불의 헐벗은 백성이 사월 남풍에 대맥(보리)가 누렇게
익기만을 기다리는 형편이었다.
이른바, 우리 겨레의 비운이었던 보릿고개를 알았기에 그는 10원짜리 냄비국수로 점심을 때우면서도 그런 것조차도 못 먹는 불쌍한 동포들의 굶주림을 걱정했으리라!
또, 체인스모커(chain smoker)(줄담배꾼)인 그가 담배 없이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으니 피우기는 해야겠는데
그 옛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궐련은커녕 한 봉지의 장수 연이나 희연(囍煙) 담배조차도 피우기 어려웠던그때를 회상하면
아마도 그 "아리랑" 담배를 피우는 것조차도 송구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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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옛날, 대구사범 1학년 때의 생각이 문뜩 떠오른다.
박물 시간에 식물 꽃 단면을 확대경으로 통해 보면서 크고 세밀하게 그리는 공부를 하였는데 여러 급우가 그린 것 중 최고 평점인 "G"를 박 군이 차지했다.
그는 일찍 경북 선산군 구미 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그와 같은 수석들만이 응시했던 대구사범에 9대1이라는 입시경쟁을 돌파한 엘리트였고 그 엘리트 중에서도 "G"라는 평점을 받을 만큼 그의 두뇌는 매우 명석하고 총명했으며 비상했다.
그러기에 천군만마를 질타하는 작전계획이라면 미, 육사 출신 엘리트들조차 우리 박 장군을
따를 자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기에 쓰러져 가는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한 한강 도강작전이 성공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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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장실에 들어갔을 때 첫인상은 그 방이 어쩌면 그렇게도 초라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마치 야전 사령관이 있는 천막 속을 방불케 했다.
특히 그가 앉은 의자는 길가에서 구두 닦는 아이들 앞에 놓인 나무의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그런 의자였다.
게다가 그가 피우는 담배는 국산 "아리랑"이었다.
당시 내가 피우던 담배는 국산으로는 최고급품인 청자였고 때로는 선물로 받은 외제 양담배였다.
하루는 그 방에 들어갔더니 마침 점심을 먹고 있는데 10원짜리 냄비국수 한 사발과 노랑무 서너 조각이 전부였다.
나는 10원짜리 우동을 50그릇이나 살 수 있는 500원짜리 고급식사를 마치고 온 터라 몹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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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의장의 애국심은 지나치게 보일 때도 있다.
그는 당시 장충단공원에 있는 의장공관을 쓰고 있었는데 어느 눈비 내리는 겨울 아침, 국민학교 6학년인 장녀 근혜양을 운전병이 지프차로 등교시켜 준 일이 있었다.
그날 저녁, 그 사실을 알게 된 박 의장은 근혜 양을 불러다 꿇어 앉혀놓고, "그 차가 네 차냐, 그 차가 아버지 차냐?" 하고 힐책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울고만 있는 딸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차는 나라 차야, 나라 차를 네가 감히 등교용으로 쓸 수 있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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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人間) 박정희(朴正熙)!
그는 이미 하늘나라로 가버렸으니 어찌 나의 이 추모의 정을 알이오.
오늘에 와서 그를 비방하는 일부 인사들도 있지만 진정 그를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나는 그를 가까이 모시면서 만사에 청렴결백했던 그를 잘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렇게 맑게 한다 해도 후일의 가족을 위해 어느 구석진, 이를테면 MBC 재단 같은 곳에 그들의 생활비 정도는 나올 그 무엇인가는 마련해 두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보니 그것도 아니었으니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청렴결백한 집권자가 어디 또 있을까! 있을까?
--金昞熙--
(이글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책에도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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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장군이 냄비 우동으로 점심을 때우고 그 흔한 외제 담배도 많건만 아리랑 담배를 피울 때, 자신은 냄비 우동의 50배가 넘는 가격의 음식으로 점심을 하고 고급 외제 담배를 피운 것이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김병희 박사!
93세의 고령임에도 의욕적으로 우리나라의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회고록 등 많은 책을 무료로 배송해 주시고 있을 뿐만 아니라 후학들을 위해 인터넷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모든 분야의 다양한 글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올리고 계십니다.
또한, 아무리 짧은 댓글이라도 꼭 답 글을 달아주시는 인자하신 김병희 박사님의 홈페이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조선일보 게시판(민주당)란에서 퍼 온 것임)글쓴이; 홍순재
http://home.megapass.co.kr/~gimbyn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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