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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역도 권유에 '버럭'했던 소녀, 10년 후 세계를 들었다

역도 권유에 '버럭'했던 소녀, 10년 후 세계를 들었다

역도 선수출신 아버지 끈질긴 설득 끝에 입문, 3년만에 태극마크 달아

[ 2008-08-16 22:01:00 ]

베이징=CBS 올림픽특별취재단 박지은 기자


"역도 한번 해보지 않겠냐"는 아버지의 권유에 버럭 화부터 냈던 십대 소녀가 바벨을 잡은지 만 10년만에 '최고의 무대' 올림픽에서 정상에 섰다.

장미란(25, 고양시청)은 16일 베이징항공항천대에서 열린 2008 베이징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75kg 이상급)에서 인상 140kg 용상 186kg 합계 326kg(종전 세계기록 319kg)을 들어 세 부문의 세계신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며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장미란이 역도를 시작한 것은 상지여중을 졸업하던 1999년이었다. 젊은 시절 잠시 역도 선수의 길을 걸었던 아버지 장호철씨(54)가 기골이 장대했던 장미란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봤다. 그러나 처음 아버지의 얘기에 화만 냈다는 장미란이다. 아버지의 집요한 설득에 점차 마음이 흔들린 장미란이 바벨을 잡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역도만 잘 해도 대학갈 수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고.

늦깎이로 시작했지만, 아버지의 눈은 정확했다. 장미란은 바벨을 잡는 순간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선수 시작 3년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집안 대대로 힘이 좋다는 것이 장미란의 설명. 그런 유전적인 영향 때문인지 장미란의 여동생 장미령(23)도 고양시청에서 함께 선수로 활약 중이다.

비록 아버지에게 떠밀리다시피 역도를 시작했지만, 장미란은 선수라면 한번쯤 시도하는 팀 이탈 한번 하지 않은 선수다. 힘은 타고 났다지만 타고난 힘을 이용해 세계 정상에 설 수 있었던 것은 혀를 내두를 만큼의 성실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질풍노도'라 불리는 십대, 사춘기 시절에도 방황 한번 한 적이 없다고. 물론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도 한 몫을 했다.

장미란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03년 벤쿠버에서 열린 2005 세계선수권부터였다. 당시 용상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린 장미란은 그 이듬해 출전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최중량급(75kg이상급)의 새 별로 떠올랐다.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2005년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장미란은 2006년과 2007년 연거푸 세계선수권 정상을 지켜내며 아시아 여자선수 최초로 3연패 금자탑을 세웠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과 동시에 세계신기록까지 작성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낸 장미란은 이로써 명실상부한 여자 최중량급 세계 최강자로 자리했다.

대학에 가고 싶어서 시작한 역도인만큼, 장미란은 2005년에 특기자 전형으로 고려대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해 꿈을 이루기도 했다. '대학 재학중인 선수는 실업팀에서 뛸 수 없다'는 대한체육회의 규정 때문에 잠시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으나, 올해 다시 복학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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