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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기행

새벽에 만든 두부 속 '건강'이 모락모락

새벽에 만든 두부 속 '건강'이 모락모락
통도사 청수골 산장가득 두부조림
두부에 멸치·파 넣고 푹 끓여
산초·무 따위도 직접 농사
소주·된장 넣어야 제 맛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청수골 산장가든' 이경자씨가 빨간색 국물을 뒤집어쓴, 평범하고 소박한 옛날식 두부조림을 내놓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두부조림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콩 제품 가운데 으뜸으로는 두부를 친다. 옛날부터 부족한 고급 단백질을 콩에서 얻었다. 두부는 장수식품으로 치매를 예방하고 노화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고려 말기의 학자 이색도 '목은집'에서 '두부가 새로운 맛을 돋우어 주어 늙은 몸이 양생하기 더없이 좋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두부 생각이 난다고 해서 나이가 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경남 양산 통도사 뒤편에는 손두부를 만들어 통도사에 공급해 온 집들이 있다. 한 집에서 손두부로 만든 두부조림을 파는데 그 두부를 먹으면 옛날 생각, 혹은 고향 생각이 난다고 했다. 두부 먹으러 가는 길, 봄기운에 나른해져 쳐다본 하늘이 뿌연 게 꼭 콩물 부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부 요리는 그야말로 종류가 많다. 통도사 뒤편 '청수골 산장가든'에서 한다는 멸치가 들어간 옛날식 두부조림이 혹시 '미꾸라지 두부 숙회' 같은 음식이 아닐까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두부조림은 그런 잔인한(?) 음식이 아니었다. 평범하고 소박했다. 시골에서 흔하게 먹던 그런 음식이었다. 일단 주방에 들어가 두부조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아! 놀라워라. 두부조림은 놀랄 만큼 간단했다. 돌판 위에 두부를 잘라서 올린다→굵은 멸치를 넣는다→양념과 파를 넣고 불에 끓인다, 이게 끝이다. "흠, 이거 집에서 해먹어도 되겠는데…." 어리석은 생각을 한다. 공장에서 찍어낸 두부에서 맛이 제대로 날 리가 없고, 또 소스는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두부만큼 생명이 짧은 것도 없단다. 그래서 두부를 만드는 일은 매일 아침 반복된다. 오전 8시부터 2시간에 걸쳐 두부를 만든다. 흰 콩을 밤새 불린 뒤 맷돌로 잘 갈아서 솥에 넣어 불을 때고 삶아서 익을 때까지 조린다. 면보자기에 담아 짜낸 뒤 국물에 간수(응고제)를 넣고 약한 불로 끓여 응고되면 뽀얀 색의 예쁜 두부가 된다. 굵고 좋은 콩을 쓰는 게 비지가 적게 나오고 두부가 맛난 비결이다.

드디어 상 위에 입맛을 자극하는 빨간색 국물을 뒤집어쓴 두부조림이 올랐다. 김이 모락모락 난다. 빨간색 국물과 두부 사이로 굵은 멸치가 '나 잡아봐라'며 몸통을 내민다.

두부와 멸치의 조합인 두부조림을 한입 떠 넣었다. 이게 웬일인가? 처음 먹는데도 예전에 먹어본 기억이 난다. 머리는 기억을 못해도 혀는 기억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멸치 배를 갈라 먹는 재미도 있다. 반찬도 산초지, 무지, 곤달비 무침 등 완전 자연산이다.

청수골 산장가든 앞에는 평산약수터가 있고, 이 집에서 나온 음식들의 90% 이상이 직접 농사를 지어 아침에 따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맛이 있는 이유가 다 있었다. 옛날 이야기 하나. 이 집 주인 이경자씨가 처음에는 옛날 제사음식을 생각하며 두부를 그냥 구워서 간장 양념을 해서 내놨다.

그런데 어느 날 몸이 좋지 않다는 손님이 한 분 찾아와 두부에다 멸치를 넣고 이런 식으로 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 이씨는 그 손님이 너무 맛있게 먹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두부조림을 시작했단다.

두부조림은 의외로 젊은 사람들도 좋아한다. 집에서 두부조림을 만들어 먹으려면 된장이나 소주도 넣어야 한다고 요리법을 살짝 털어놓는다. 옛날식 두부조림이 6천원, 두부전골 대(大)가 3만원, 소가 2만원이다. 통도환타지아 방향으로 가다 통도사관광민속마을 쪽에서 5분가량 올라가면 된다.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269, 055-383-1286.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ilbo.com
/ 입력시간: 2008. 03.27. 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