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 여행

바람따라 마실가자]①함안 군북면 원북마을

바람따라 마실가자]①함안 군북면 원북마을
한적한 듯 바쁜 농촌 마을의 '가을 한낮'
생육신 조려 선생 거닐던 '채미정' 500년 전 시간 멈춘 듯 고풍스러워
짐도 나르고 높은 곳 감도 따주고 오늘 하루는 '유쾌한 심부름센터'
2007년 11월 09일 (금) 글 여경모 사진 김구연 기자 babo@idomin.com
   
 
  함안 원북마을 집집마다 처마에 감을 주렁주렁 매달아 놨다. 한 해 동안의 기쁨과 슬픔, 계절과 세월도 함께 매달려 있다. 아들 자랑과 남편 자랑도 내걸려 가을 바람에 실려간다.  
 
가을 바람이 차다. 차가운 날씨에도 시골에선 수확 철 몸놀림에 등에서 땀이 흐른다.

집안에 앉아서 쉬는 이들에게는 차가운 날씨지만 일 년 농사를 시작하거나 거두는 이들에겐 시원하기만 하다.

도내를 자전거로 누비고 놀던 레저 팀이 페달에서 내려 농촌으로 가을 마실에 나섰다. 외로이 집안에서 계신 분들이 있으면 말동무도 되어주고, 시골 장에 갔다 오는 촌로들의 무거운 짐도 들어주고, 과일 따는 농부를 만나면 장대를 들고 수확도 도울 예정이다.

'얼렁뚱땅 심부름센터'로 자진하고 나선 레저 팀. 가을 벌판을 가로질러 뛰어가서 늙어가는 촌마을에 '젊은 피'를 공급했다.

   
 
 
◇ 은행에 안긴 보물 '원북마을'


함안 가야읍에서 마애사 쪽으로 1004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은행나무가 줄지어 있다. 단풍 든 은행 구경이 끝나는 종점에 500년 역사를 그 자리서 지키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조선 초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 조려(漁溪 趙旅, 1420~1489) 선생의 생가가 있는 이곳은 원북마을이다.

입구에 다다르면 어계 선생이 세상과 담을 쌓고 거닐면서 지냈던 '채미정'이란 정자가 있다. 낙향한 어계 선생이 비명에 간 단종을 애도하며 비분을 삭이면서 낚시로 세월을 보내던 곳이다.

근데 채미정으로 들어가는 문이 이상하다. 정면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장 오른쪽 작은 쪽문으로 들어간다. 그 이유는 대문이 있을 자리에 경전선 철도가 지나게 되면서 기형적인 입구가 생겼다. 하지만, 정원 안으로 들어서자 이런 생각은 잊어버릴 정도로 아담하기 그지없다. 작은 샘과 이끼 낀 돌다리가 놓여있다. 다리 옆으로 깎아지른 자연석은 500년 전 시간이 멈춘 듯 고풍스럽다.

채미정 길 건너편 마을 첫 집에 들렀다. 마당에서 마늘을 까고 있던 대암댁은 불쑥 들어간 레저 팀을 마을 청년들인 양 반갑게 맞는다. 그의 남편이 한국전쟁 때 다쳐 드러누우면서 집 살림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한평생을 일만 하는 셈이다. 그래도 그는 "다른 건 다 좋은데 우리 부모에게 효도 못한 그기 억울한 거지"라며 까던 마늘을 놓고 감 다듬으러 뒷마당으로 가 버린다.

하천을 따라 조금 지나니 신음댁이 동네 빨래터에서 방망이질을 하고 있다. 하천 옆에서 큰소리로 "손 시리겠어요"라고 말하자 "괘안소. 이 정도면 날씨 좋은 편이지. 겨울도 아닌데"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이다. 그래도 그는 바깥어른이 약주를 한잔하러 갔는지 노심초사다.

개울물이 맑아 보러 내려갔더니 물고기에 가려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물 반 고기 반'이다. 그래서 신음댁에게 다음에 손자가 오면 이곳에서 낚시를 해보라고 귀띔했다. 그는 그러겠다고 싱긋 웃는다.

몇 걸음 더 옮기니 하천 위로 정자 하나가 만들어져 있다. 정자 뒤로는 다마골댁이 양파 모종을 심느라 열심이다. 60이 다된 그이지만 마을에서는 그래도 젊은 편이다. 5000원어치 모종을 사서 심는데 몇 포기 되지도 않는다. 차라리 5000원어치 사 먹는 게 낫겠다고 말하자 "그렇네"라며 아쉬워한다. 양파 모종값과 다 자란 양파가격이 비슷하다. 모순된 농촌의 현실이다. 하지만, 다시 5000원어치 더 사서 심겠다는 다짐을 하고 집으로 향한다.

   
 
  조선시대 어계 조려 선생이 비명에 간 단종을 애도하며 비분을 삭이려고 낚시를 즐기면서 세월을 보냈던 '채미정'.  
 
◇ 함안 조씨의 고향


이곳에는 흔한 것이 감이라 하천 여기저기에 감이 떨어져 있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가장 부지런한 집을 찾았다. 북실댁이 사는 집에는 집 크기보다 주황색으로 주렁주렁 달린 감이 더 많다. 곶감을 만들려고 부부가 쉼 없이 작업 중이었다. 그의 집 닭도 소(일련번호 1902번)도 감을 먹고 있다. 감 먹고 자란 소다. 1년에 한 마리씩 송아지를 낳는데 감 힘이 도움됐다고 북실댁이 자랑이다.

어계 선생의 고택에 다다르자 감나무 아래서 구부정한 허리로 감을 따는 다마골댁이 보인다. 그가 가진 감나무는 2그루. 하지만, 딸 수 있는 감은 5개. 어른 키 만한 높이에 있는 감도 그에게는 난공불락처럼 '그림의 감'이다. 레저 팀 사진기자가 사진기를 내려놓고 팔을 걷어붙여 장대를 들고 까치밥 1개를 빼곤 모두 따주었다.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르는 다마골댁이 감을 건네자 부리나케 도망쳐 어계 고택 재실에 숨어들었다.

어계 고택은 현재 후손들이 재실로 사용하고 있다. 원북재로 불리는 재실과 사당이 있다. 부엌이 없이 재실로만 사용하는 원북재 뒤로 사당이 있는데 이곳에 조려 선생이 짚고 다니던 죽장(竹杖)과 왕에게 하사받은 동제향로(銅製香爐)가 있다. 하지만, 사당의 문은 굳게 닫혀 구경할 수 없다. 재실 마당에는 500년 된 은행나무가 곧게 자라고 있다. 마을 입구의 은행나무와 달리 열매가 한가득 떨어져 있다. 이 나무는 암컷이란다.

이곳 재실을 지키는 창녕댁(78). 창녕 조씨다. 얼굴에서 온화함이 넘치고 옷매무새도 곱다. 배를 깎아 드시다가 껍질을 버리려고 집 밖으로 나섰다가 레저 팀과 만났다. 함안 조씨 종손집안에 시집와서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의외의 답을 내놓는다.

"그때는 다 그렇지. 그래도 얼굴 한번 안 보고 시집왔는데 신랑 얼굴이 너무 잘 생겨 참고 살았지. 마을에서도 최고 인물이었거든."

바깥어른 자랑하는 할머니는 아들자랑도 서슴없다. "울 아들이 삼성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했는데 손자가 이번에 다시 삼성에 공채로 합격했어."

그래도 사다 놓은 쌀 반 가마니를 곳간에 넣어줄 사람은 집에 아무도 없다. 물론 레저 팀 몫이었다.

   
 
 
◇먹을 만한 곳


중암 쌈밥 = 함안 원북마을 부근에서 식당을 찾기 쉽지 않다. 근처 군북면 군북시장 입구에 쌈밥 집이 있다. 쌈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양이 만만치 않다. 한 접시 가득 수북이 쌓여 있어 쌈만 싸서 먹어도 남을 지경이다. 고등어찜은 살이 통통 올라있다. 쌈을 싸서 먹으면 항상 밥이 모자라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되는데 밥그릇이 일반 음식점과 달리 제삿밥 그릇만 하다. 함안군 군북면 중암리 90-1(군북 우체국 앞). 쌈밥정식 4500원·돌솥 비빔밥 3500원. 055-585-4537.

글 여경모 사진 김구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감사합니다
ⓒ 경남도민일보(http://www.idomi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