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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흔적

단군조선, 동북아문명의 공동발원지”

단군조선, 동북아문명의 공동발원지”


국사편찬위 내일 ‘상고사토론회’사회과학자 2인 문제제기 눈길

《단군조선이 과연 신화에서 역사로 거듭날 수 있을까.

역사학계에서 기원전 2333년에 세워진 단군조선은 신화를 벗어나지 못했다. 실증사학의 전통을 중시하는 국내 학계에선 국가 성립이 이뤄지는 청동기문명이 만주지역에선 빨라야 기원전 15세기경, 한반도에선 기원전 10세기경에나 이뤄졌다는 점에서 단군조선을 역사적 실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중국사서에 반복 등장하는 고조선이 기원전 7, 8세기경부터 부족들의 연맹국가 형식으로 존재하다 기원전 4세기경 기자를 따르는 무리에 의해 철기문명이 전해졌고 기원전 2세기경 중국 연의 망명객 위만에 의해 왕권 찬탈이 이뤄질 무렵 강력한 왕권이 확립된 고대 왕국으로 발전했다고 봐 왔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 배후에 숨어 있는 랴오허()문명론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이런 시각에 대한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랴오허 강 유역인 중국 네이멍구() 츠펑() 시 일대와 랴오닝() 성 차오양() 시 일대에서 중국 황허()문명을 훨씬 앞지르는 신석기와 청동기 유적이 대거 발굴됐다.

신석기는 기원전 7000년경까지 올라가 기원전 4500년경 황허의 양사오()문화나 기원전 5000년경의 창장() 강 유역 허무두()문화보다 2000년 이상 앞선다.》





청동기의 경우도 순동과 석기가 함께 사용된 동석()병용시대가 츠펑 시 일대를 중심으로 한 훙산()문화 만기(·기원전 3500년∼기원전 3000년)에 이미 시작됐고 본격 청동기시대에 진입한 샤자뎬()하층문화도 기원전 20세기경 시작됐다는 점에서 황허문명의 청동기 진입시기(기원전 16세기경)를 훨씬 앞지른다.

문제는 이들 랴오허문명권이 그동안 우리가 고조선의 영역이라 짐작했던 요동을 넘어서 요서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또한 한국 고대문화의 정체성으로 생각해 왔던 빗살무늬토기, 돌무덤, 석성, 비파형 청동검뿐 아니라 중국 문화의 상징으로 여겼던 용, 옥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유물도 출토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중국학계 일각에선 랴오허문명과 황허문명이 만나 중국 문명을 이뤘다거나, 한 발 더 나아가 랴오허문명이 중국 문명의 기원이라 주장하며 과거 동이족 문화 전체를 중국 문명의 일부로 포섭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 역사학계의 인식은 동북공정이 고구려사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 멈춰 있다. 여기에는 기존 통설을 뒤집는 파천황적 변화가 가져온 충격도 크지만 학계의 고질인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의 불화도 한몫한다.

역사학의 주류를 자처해 온 강단사학에선 정통으로 역사학을 공부하지 않은 고대사 연구자들을 재야사학이라 폄훼해 왔다. 재야사학계에선 오래전부터 단군조선이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실체임을 주장하면서 만주뿐 아니라 중국 본토까지도 우리 민족의 고토라고 주장해 왔다. 랴오허문명과 관련해 새롭게 드러난 고고학적 발굴 결과는 이런 재야사학계의 주장을 상당 부분 뒷받침한다.

강단사학계의 깊은 시름은 여기에 연유한다. 랴오허문명과 단군조선의 연계성을 인정할 경우 초민족주의적인 재야사학의 손을 들어줘야 하고 그렇다고 이를 부인한다면 중국의 역사왜곡에 말려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연 해법은 없을까.

28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열리는 ‘상고사 토론회’가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토론회는 이례적으로 재야사학자도, 강단사학자도 아닌 2명의 사회과학자가 초청됐다. 연세대 사회학 박사 출신으로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을 쓴 우실하(47) 항공대 교수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박사 출신인 ‘대쥬신을 찾아서’의 저자 김운회(46) 동양대 교수다.

동양사회사상사를 전공한 우 교수가 랴오허문명의 고고학 발굴 현장을 답사하고 관련 논문을 독파해 랴오허문명론의 실체를 파헤친 학자라면 중국 25사를 독파한 김 교수는 중국이 동호, 숙신, 예맥으로 분류한 동이족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주장을 문헌학을 통해 펼쳐 왔다.

우 교수는 1980년대 이후 집중 발굴된 랴오허문명 유적의 실태와 더불어 랴오허문명론의 핵심 이론가인 쑨서우다오() 쿼다순() 쑤빙치() 장비보() 등이 고조선의 역사를 중국 역사화하기 위해 황허문명 기원론에서 점차 랴오허문명 기원론으로 이동해 갔음을 보여 준다. 특히 훙산문화의 주역은 단군조선에 등장하는 곰 토템 부족의 원형이며 이를 계승한 샤자뎬하층문화야말로 단군조선의 실체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중국 25사에 등장하는 동이, 동호, 숙신, 예맥, 읍루 등의 표기가 서로 교차돼 사용되거나 동일 의미로 쓰였음을 보여 주는 문헌 분석을 토대로 한국에 수립된 국가가 ‘쥬신=조선=숙신’, ‘고리=고구려=고려’로 이어지는 동일국호의 변용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는 또한 몽골(원), 거란(요), 여진(금·청)과 한반도, 일본이 본디 하나의 동이()문명권에 속하며 특히 부여족의 이동을 통해 대륙부여(부여), 반도부여(백제), 열도부여(일본)가 성립됐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두 학자는 ‘동이사=한국사’로 바라보는 기존 재야사학계의 민족주의적 시각에 대해서 비판적 관점을 견지한다. 김 교수는 단군조선이 중국사에서 북적과 동이로 분류된 모든 민족의 공통 기원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 교수는 랴오허문명의 일부가 남하해 황허문명과 결합해 중국문명을 이뤘고 그 남아 있는 문화가 동이족문명을 이뤘다는 점에서 랴오허문명을 동북아 국가들의 ‘공통의 시원 문명’으로 공유하자고 주장한다.

단군조선의 전유()가 아니라 공유()를 통해서 동북아 역사 갈등을 풀어갈 지혜를 찾자는 두 사람의 주장이 과연 우리 역사학계에서 어떻게 수용될지 주목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동아일보 입력2007.09.27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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