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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흔적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

보수동 헌책방골목
골목골목 누비며 책의 소중함 느껴요

 
  보수동 헌책방골목 한 서점에서 고객이 켜켜이 쌓인 헌책들 사이에서 책을 고르고 있다. 국제신문 자료사진
책과 벗하기에 적당한 계절입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면 집에까지 배달해 주는 요즘, 서점에 직접 나가보라 하거나 헌책방을 찾아보라 하면 생뚱맞게 들릴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국 유일의 헌책방골목인 부산 중구 보수동 헌책방골목은 새 책과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더욱 의미 있는 공간이랍니다. 발품을 팔아 책을 싸게 사는 재미와 책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책값이 없었던 시절 헌책방 골목골목을 누비던 부모님 세대의 아련한 추억도 함께 전해주면 좋겠습니다.

헌 책이 필요 없는 세태 속에서도 부산의 문화의 거리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보수동 헌책방골목. 곧 문화축제도 열린다 하니 가을이 가기 전에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정가(定價)가 없다

보수동 헌책방골목에는 종이접기 안내서에서부터 각종 교과서, 참고서, 오래된 명화집, 누런 옛날 족보까지 책이란 책은 다 있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가격이 없는 곳입니다. 남명섭 충남서점 사장은 "이곳은 책과 함께 살아가는 정이 있다"며 "무조건 깎아 준다"고 합니다. 권당 9000원 하는 박경리 선생이 지은 소설 '토지' 16권짜리 한 질이 6만 원이고, 시가 1만5000원짜리 '수학의 정석'은 새 책과 다름없는데도 7000원이면 살 수 있습니다. 지난 주말 부모와 함께 온 정수은(금양중 2년) 학생은 'SF 홍길동'이라는 만화를 1500원에 집어들고 턱없이 낮은 가격이 신기한가 봅니다. "그것 봐 싸지" 두런두런 대화하는 부모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방금 나온 새 책이 아니더라도 시가보다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40%까지 할인된답니다.

추억이 있다

부산에 여행 왔다는 김온숙(45·서울) 씨는 "서울의 청계천 고서점가가 청계천 개발로 사라졌는데 부산에 이런 헌책방골목이 남아 있다니 반갑다"며 "서울에서는 부산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체험여행지로 제법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이곳은 6·25전쟁 때 피란 온 한 부부가 박스를 깔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 만화책들을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형성됐습니다. 피란민들이 중구 국제시장 중심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구덕산 자락 보수동 뒷골목은 노천교실 천막교실로 많은 학교가 생겼고 책을 팔고 사는 골목이 자연스레 만들어졌답니다. 1960~70년대엔 생활형편이 어려운 학생과 지식인들이 많이 찾으면서 한때 100여 점포가 성업을 이뤘죠. 이 골목에서 30년째 차를 팔고 있는 양윤옥 할머니는 "5년 전만 해도 참고서 등을 사려는 사람들로 골목이 넘쳐났다"고 자랑합니다. 학창시절 이곳에서 책을 사갔던 부모라면 그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에겐 추억이 될 것입니다.

'문화의 거리로 살리기'- 내가 상인이라면

골목 입구에 '중구 문화의 거리'라는 큰 안내판이 있기는 하지만 150~200m 정도의 책방 골목은 한산합니다. 생활형편이 나아지고 새 책의 수요가 늘면서 예전의 명성은 많이 퇴색했습니다. 전국 유일의 헌책방골목을 부산의 명소로 홍보할 수 있는 전략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우선 아이들과 이곳을 둘러보고 장·단점을 생각하도록 한 뒤 '내가 상인이라면 어떻게 할까' 홍보 전략을 짜보게 하면 됩니다. △관광안내 포스터 만들기 △헌 책의 장점을 소개하는 편지글 쓰기 △헌책방골목 살리기 모둠 청문회 등이 해볼 만한 프로그램입니다.

이곳 상가번영회도 이곳을 문화의 거리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보수동 책방골목축제'가 그것입니다. '책은 살아야 한다'는 주제로 오는 28~30일 도서전시회와 각종 문화공연 등을 펼칩니다. 단체로 찾아오는 유치원 학원에는 책을 기증할 예정이랍니다.

가는 길

버스 59, 60, 81번 부평동이나 보수동 정류소 하차. 지하철 1호선 자갈치역 국제시장 출구 쪽에서 도보로 100m.

문의 보수동 책방골목번영회(051-253-7220) 홈페이지(www.bosubook.com).

방희원 부산시보 편집위원 hwbang@busan.go.kr

입력: 2007.09.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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