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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스르기

2010년 농가소득 4000만원 시대 여는 김병원 전남 남평농협 조합장

2010년 농가소득 4000만원 시대 여는 김병원 전남 남평농협 조합장
지역농협 특색사업 지원 강화하고 농산물이 제값 받도록 환경 만들어야

“농협이 존재하는 이유가 뭡니까.
                 농가소득 향상 아닙니까”

“농업은 희망이 있는 산업입니다. 국민소득이 증가할수록 국민 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농업은 이러한 변화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고, 따라가지도 못했을 뿐입니다.”
올해 농협중앙회가 선정한 업적평가우수조합상과 새농협상을 휩쓴 김병원(54) 전남 나주 남평농협 조합장은 농업과 농촌의 미래에 대한 우려에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농업의 위기라는 표현은 매너리즘에 빠진 이들이 즐겨 쓰는 용어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산업화 사회로의 발전과 전 세계적인 개방화 물결은 한국 농업에 새로운 기회라고 주장했다.
지역농협 조합장으로, 또 농협중앙회 이사로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의례적인 인터뷰용 답변으로 흘려들을 수 있다. 또 위기라는 평가에 대한 반발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 조합장의 남평농협에서의 도전과 성과는 말뿐이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 농업에 대한 희망의 가능성을 김 조합장 자신이 실천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올해로 김 조합장 취임 7년째를 맞고 있는 남평농협의 2006년 연간 순이익은 12억원. 전국 1220개 지역농협 가운데 단연 최고다. 웬만한 우량 중소기업 순이익 규모보다 높다. 농가당 평균소득도 2005년 3400만원을 돌파했다.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소득 4080만원에는 모자라지만 농가평균소득 3050만원보다는 350만원이 더 높다. 또 매년 1억원 이상 적자에 허덕이던 나주 다도농협도 지난해 8월 남평농협에 합병된 이후 적자에서 벗어나 합병 첫해인 올해는 1억원의 흑자를 기대하고 있다.
“농촌도 도시가구 못지않은 소득 향상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남평농협의 경우 2010년이면 조합원 가구소득 4000만원 시대가 열릴 겁니다.”
김 조합장이 전망하고 있는 남평농협 조합원 가구의 소득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예상을 훨씬 앞선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가구당 농가소득을 2012년 3700만원, 2017년 4500만원으로 전망했다.

농촌의 공익적 가치
광주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난 1978년 농협 말단직원으로 입사해 1999년부터 13~14대 남평농협 조합장을 연임하고 있는 김 조합장은 2004년 농협중앙회 이사에 선임됐다. 그는 산업화 과정에서 농업이 우리 경제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온 현장을 생산자로 혹은 관리자로 목격해왔다.
“쌀의 공익적 가치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9조원입니다. 농촌에 대한 평가를 생산량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공익적 가치도 함께 평가해야 합니다.”
김 조합장은 농촌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평가를 지적했다. 농업이라는 산업을, 농촌이라는 공간을 단순히 국민의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데 대한 서운함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이어 농촌의 깊숙한 부분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 농촌의 숨어있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국민적 인식과 캠페인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긴 설명이 이어졌다.
도시민들이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게 되는 농촌은 그 풍경만으로도 분명 아름다움 자체다. 여기에 향수를 달래주고, 일상에서 겪을 수 없는 색다른 체험의 장으로서의 농촌은 김 조합장의 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공익적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논 왜 지켜야 하는가>라는 책에 따르면 시장가치에 반영되지 않은 우리나라 쌀의 가치는 총 90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의 삶은 또 다르다. 공동화와 고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한편 문화적 소외감과 빈곤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공익적 가치와는 상반된 반비례 현상이다.
김 조합장이 ‘9988’ 봉사대를 운영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 봉사대를 운영하기 위해 김 조합장은 매년 5000만원의 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봉사대는 200여 명의 노인들에게 정기적으로 집안 청소, 목욕 봉사, 건강검진 등의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농촌 고령자들은 1960~1970년대 산업화 사회로 전환하는 와중에서도 농촌을 지켜온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소득과 삶의 질은 그때보다 오히려 낮아졌고 삶 자체도 방치돼 있습니다.”

시장변화 예측하고 미리 대비
김 조합장은 농업도 자본기술집약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의 노동집약형 농업만으로는 더 이상 산업화시대에서의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현재 전무하다시피 한 농외소득의 비율도 절반 정도로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업도 소비자 삶을 분석해야만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가격과 무관하게 친환경제품은 꾸준히 판매율이 상승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도시민을 농촌으로 유인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때 농업은 뒤떨어진 산업이 아니라 첨단시대와 함께 하는 산업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말로는 얼마든지 내뱉을 수 있는 공허한 장밋빛 가능성이 아니다. 김 조합장은 실제 이러한 실험을 시도했고, 또 성과를 거두고 있다. 남평조합이 브랜드화한 ‘왕건이 탐낸 쌀’은 대표적인 사례다. ‘왕건이 탐낸 쌀’은 추곡수매제로 판로가 보장됐던 10년 전 미리 쌀 시장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대비한 고품질 쌀이다. 밥맛이 좋은 종자인 ‘청무벼’를 도입하고 꾸준한 객토작업을 실시하는 등 7년에 걸쳐 쌀농사에 대한 품질관리를 해오고 있다. 그 결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주관하고 농림부가 후원하는 전국 12대 우수브랜드 쌀 선정에서 2003년 전국 3위를 차지한 데 이어 2005년과 2006년에도 잇따라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또 과거에 비해 40kg당 1만원 이상 더 비싼 값에 생산량의 100%를 수매했다. 현재 60% 이상이 계약재배로 이뤄질 만큼 소비자 선호도도 높다.
남평농협이 직영하고 있는 파머스마켓도 다른 지역에 비해 매출이 두드러진다.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농협이라는 특성을 살려 전국에서 싱싱한 농산물을 최대한 편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유통구조까지 획기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990㎡(300평) 정도의 직거래 장터인 파머스마켓의 하루 매출은 4000여만원. 지난해 조합원 생산물이 135억원의 총 매출의 절반이 넘는 76억원을 차지해 안정적인 판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직원들이 아침에 농가에서 농산물을 직접 수거함으로써 조합원들은 상점 수수료, 운송료, 인건비 등을 절감할 수 있고, 파머스마켓은 그만큼 싱싱한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하루 2000명이 넘는 고객의 70% 이상이 광주와 화순 등 인근 지역에서 찾아오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를 얻기까지 김 조합장이 쏟은 노력과 시간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전남대 경영대학원과 농업생명과학대학원에서 마케팅과 농업경제학 공부를 하며 석사학위를 취득한 한편 같은 대학에서 농업경제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과거 눈대중 농업에서 탈피해 과학영농의 학문적 기초를 다져왔다. 또 남평농협 산하에 친환경대학을 설립해 한 해 50명의 기술농업인을 양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장에서는 단위면적당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흙 살리기 사업을 전개해오고 있다.
“흙이 살아야 친환경농업을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농촌의 흙은 수년에 걸쳐 연간 3~4회전까지 재배가 이뤄지면서 혹사당하고 있습니다. 이를 건강한 흙으로 만들어줘야 합니다.”
이를 위해 지난해까지 1~2단계로 농지 396ha, 하우스 토양의 95%에 달하는 112ha에 각각 50%와 40%의 비용을 보조해 객토사업을 완료했고, 현재 3단계로 밭 객토사업을 진행 중이다. 또 토양 검정실 운영, 토양 개량제 공동 살포, 퇴비제조장 및 왕겨숯공장 운영 등 친환경농업을 구현하기 위한 투자와 실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역농협 사업기능 강화해야”
김 조합장은 남평농협의 발전이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지속적인 발전을 장담했다. 여기에는 농외소득 확대 계획도 포함돼 있다. 물론 사전조사 작업이 시작됐고, 일정 부분 밑그림도 그려졌다. 지난해 합병한 다도농협이 자원이다. 그동안 적자에 시달려왔던 다도농협은 한마디로 ‘깡촌’이라 불리는 산촌으로, 그는 묻혀있는 자원이라고 말했다. 나주호와 불회사라는 유서 깊은 사찰이 자리하고 있어 관광자원은 물론 친환경사업의 적지라는 것이다.
“남평에 없는 사업을 다도에서 찾으려 합니다. 건고추를 비롯한 농산물은 물론 관광자원과 도시민을 유인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 조합장은 남평농협의 현재 성과와 미래 성장사업만으로 만족해하지 않았다. 남평농협만의 성과로는 한국 농업의 발전을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농민소득 향상을 위해 농민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면서 개인이 투자할 경우 오히려 개인의 삶만 피폐해진다고 강조했다. 결국 농민의 소득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농협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농협중앙회의 지역농협 지원 규모는 2006년 260억원 정도였는데 적어도 500억원 정도는 돼야 합니다. 또 지역농협도 특색사업을 통해 자립도를 높여야 합니다.”
김 조합장은 지역농협의 특색사업의 정의에 대해 숙원사업이라고 덧붙였다. 즉, 중앙회 지원 없이 자립의 기반을 갖출 수 있는 발전 모델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중앙회는 현재 전국 1220개 지역농협의 절반에 불과한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지원사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 조합장은 농협중앙회가 대단위 협동조합 형태로 발전해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때 중앙회는 ‘협동조합’이 아니라 ‘기업’이라고 구분했다. 따라서 중앙회는 연합회 기능을 확대하고, 지역농협은 가능한 사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협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농가소득 향상 아닙니까. 그러나 농협이 가격의 결정권을 쥐고 있질 않습니다. 그건 시장이지요. 농협은 농산물이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김 조합장은 농산물 유통센터 건립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농협의 가장 기본적이고 본연의 업무라는 것이다. 산지유통시설은 물론 대도시 물류센터가 모두 포함된 개념이다. 특히 TV홈쇼핑 사업은 농협이 절대적으로 직접 진출해야 하는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기존의 농수산홈쇼핑이 본질을 훼손당한 채 대기업에 매각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 김 조합장은 각종 수수료 등으로 이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온라인 유통구조에 농협이 직접 참여해야 하고, TV홈쇼핑은 가장 우선시 되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김 조합장은 논농사 1만㎡(3000평), 밭농사 3300㎡(1000평)를 직접 경작하고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농사일을 한단다. 농협 업무와 각종 강연 등으로 새벽이 아니면 농사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건강은 아침식사 전에 하는 조깅이 전부다. 집 바로 옆에 골프장이 들어섰다는 말에 왜 골프는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대답이 천생 농군이다.
“골프요? 그거 해야 합니까? 다들 왜 안 배우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그냥 농기계나 휘두르렵니다.”

글: 한정곤 기자 (allen@chosun.com)

사진: 홍승모 기자

이코노니 플러스 2007. 9월호 통권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