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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흔적

백제 청동인장 출토돼

 원문출처 : 전북 고창에서 '백제 청동인장' 출토돼
신형준 기자 hjshin@chosun.com
입력 : 2007.09.07 14:05 / 수정 : 2007.09.07 14:07
  • '○義將軍之印'(○의장군지인·○자는 판독 불가)이라는 글자를 새긴 6세기 초반 백제의 청동제 인장. /전북문화재연구원 제공
  • 전남 영산강 유역이 언제 백제에 편입됐는가는 논란의 대상이다. 이는 한강에서 시작된 백제가 언제 한반도 서남부 지역을 완전히 장악했는가에 대한 논쟁이기도 하다.
    일본 최고의 역사서로 꼽히는 ‘일본서기’에는 서기 4세기 중엽에 이미 백제가 이 지역을 장악했다고 기록됐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고고학자는 없다. 전남 나주 복암리 고분 발굴 결과를 바탕으로, 서기 7세기 초반이나 돼서야 백제 지역으로 완전히 편입됐다고 주장하는 경우조차 있다.
    전북 고창군 흥덕면 오호리에서 나온 백제시대 도장 한 점이 이 논란에 불씨를 다시 지폈다.서기 6세기 초반 것으로, 백제시대 인장(도장)이 출토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전북문화재연구원(원장 최완규)은 7일 “전북 고창군 흥덕면 오호리 신지매유적 돌방무덤(石室)에서 ‘○義將軍之印(○의장군지인·맨 처음 ○자는 판독이 안됨)이라고 새긴 청동제 인장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청동인장은 가로 세로 각 2·5㎝의 정사각형으로, 도장면 위로는 고리형으로 손잡이가 달렸고, 고리 아래쪽에 구멍을 뚫었다. 휴대하기 편하도록 끈으로 매달아 보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단은 전형적인 백제 돌방무덤에서 발굴됐으며, 출토 유물 등을 종합할 때 인장은 서기 6세기 초반 것으로 보았다. 최 원장은 “도장에 새긴 글씨는 백제 중앙에서 영산강 유역 바로 북쪽이나 마찬가지인 이 지역에 관료(=장군)를 파견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며 “이는 서기 6세기 초반에 백제가 최소한 영산강 유역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의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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