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간극장에서 연예인이었던 여자가 운명에 의해 내림굿을 받고 巫女로서의 변신한 인생을 녹화하여
방영하였다. 날카로운 작두위에 맨발로 서고 어린 시절에 몇 번인가 본 기억도 나는 일반인이 이해 할 수없는
巫俗女 들의 모습도 함께 보여줬다.
사실이냐 아니냐 떠나서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迷信이라고 외면 할 수만도 없다. 종교와 미신의 경계를 어디에 삼아야 할지조차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언적으로 말 할 수 있는 성질은 아니란 생각도 하여본다.
인간은 눈앞에 나타난 세상의 신기한 일들을
먼저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고 믿는 科學이란 도구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어떤 한계에 부딪히면 宗敎란
도구를 동원하고 그다음엔 思惟의 세계 관념의 세계인 철학 그리고 미신까지도 동원한다. 그래야만 궁금증이
풀리는 복잡 미묘한 세상에 연약하면서도 强한 인간들이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이다.
왜 세상에 살고 있는지?
살아가야하는지 ?
목적이 무엇인지?
歷史시대 아니 先史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 존재 하다가 사라진 수천억 인간들의 공통된
의문이자 욕망이었을 것이다.
어떤 스님이 특별 法會에 초대받아서 ,
프랑스에서 신부님들과 상호 종교적 관심사를 담론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참석한 신부님들 왜 기독교를 믿느냐는 질문에
“ 인간은 原罪를 가지고 태어났고 예수님을 통하여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기 위함이다” 라는 명쾌하고 통일된 답변을 하더라는 것이다.
비단 신부님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웬만한 기독인들은 新 舊敎를 막론하고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스님이자 교수인 자신은 왜 불교를 믿느냐고 질문을 받으면 말문이 막힌다 한다.
결국 해탈이니 뭐니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을 얻기 위함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蛇足을 붙이자면 어떤 행복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얻느냐에 달려 있다고 부가적인 해석을 해본다.
世俗의 많은 인간사에 운명의 실체를 인정해야 할지 아닐지 각자의 생각에 달려있지만, 무조건 운명을 배척
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운명은 “될 대로 되어라” 라는 자포자기가 아니고 ,順理的인 우주의 운행과 함께 한다는 것이고 그 속에는 권선징악의 善循環의 고리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종교도 귀신의 존재는 인정하고 있다.
그 귀신의 영역에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찾아온 무녀의 길을 걸어야하는 여자의 기구한 운명(?),
아니면 행복한 삶일 수도 있는 그녀의 인생을 보면서..,
또 모방송국에서 방영 되는 ”세상에 이런 일이“ 란 프로에 등장하는 특이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가끔씩 우리들의 보편적 가치가 그 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다.
송 혜교 씨 주연의 黃眞伊란 영화를 봤다.
그동안 황진이가 많이 다루어졌지만 대부분 妓生이라는 그리고 양반들의 가면을 벗긴 風流女로써의 기능적인 흥미 위주라면, 금번 영화는 황진이의 내면의 세계를 절제되게 표현 하였다.
여기도 運命이란 굴레가 나온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는 원초적인 운명이다.
운명이란 그 일부는 본인이 Control 할 수없는 제3의 영향력이라 할 수 있고,
타의에 의해 결정된 자신의 운명을 당사자는 일생동안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운명을 배척하질 않고 순응하며 또 개척한 삶을 살아간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마지막 장면 어디쯤인가 황진이의 작품을 내레이션 하여 Over Lap 시켰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도 든 영화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왜 여기에 서 있어야 하고
그 대들은 지금 왜 거기서 서 있어야 하는지...,
결국 운명이란 주어진 틀에서 좌절하질 않고 불리한 운명을 포장하거나 각색을 하는 마음이 있어야 행복의
거리에 설 수 있지 않을까 한다.(2007.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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