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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삶

通 하고싶으세요? 자존심 살리고 코드를 맞추면 마음이 열린다

상당수의 직장인들이 회사내 인간관계의 갈등으로 퇴사 혹은 이직 충동을 느끼고 있다.

얼마전 헤드헌팅 업체 ‘아인스 파트너’가 전국 남녀 직장인 11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5.6%가 직장상사와의 마찰로 인해 퇴사 또는 이직 충동을 느꼈다고 답했다.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이 얼마전 직장인 1544명을 대상으로 ‘자신을 코쿤(나홀로)족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라는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54.9%가 ‘예’라고 응답했다. 직장인의 절반 이상이 소통을 아예 포기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그래서 서로 공유하는 정보가 지천으로 깔렸고 타자에 대한 정보도 수없이 많지만 우리는 왜 공허할까. 왜 소통하지 못하고 갈등할까.

정신과전문의이자 ‘관계의 재구성’(궁리) 등 베스트셀러 저자로 필명을 날리고 있는 하지현(건국대 의대·사진) 교수는 “정보의 정확성이 아니라 진심이 오갔다는 확신이 있을 때 인간은 소통의 만족감을 느끼는 존재”라며 “하지만 서로를 오가는 소통에는 너무나 많은 필터와 장애물이 놓여 있어 현대의 인간관계에서 소통은 늘 안개속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소통을 위해 “우선 서로간에 형성돼 있는 수많은 심리적 필터의 존재를 깨닫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인간이 생존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위기방지장치인 필터를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함으로써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관성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요령을 익힐 수 있다”고 조언한다.

최근 ‘소통의 기술’(미루나무)이라는 책을 펴낸 하 교수로부터 특히 이 책에 들어있는 ‘한국인에 맞는 소통의 코드’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 관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하지 마라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관계를 망치는 말버릇 베스트4를 알아보자.

#1.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자기 주변에서 벌어진 예기치 않은 사건에 대해 재빨리 과거의 증거들을 끌어모아 시나리오를 구성해야만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을 용의자 선상에서 빨리 빼내고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책임당사자 입장에선 자기가 100%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돼버리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2. “그것도 못해?”“그것도 몰라?”=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이 나를 낮추어 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거나, 내가 낮추어지는 상황이 되면 불쾌해지며 민감하게 반응한다.

별다른 악의 없이 농담 삼아 던진 말이지만 상상 이상의 끔찍한 상처를 입힐 수 있다.

#3. “도대체 왜 그랬어?”=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상처받은 자존심을 도리어 건드리기 쉽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어떻게든 자존심을 지키는 방향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자존심 덩어리라는 걸 잊지 말자.


#4.“웬일로 이런 걸 다?”= 뭔가 괜찮은 일을 했는데,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하자. 상대방이 자기에 대해 갖고 있던 평소의 저평가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처럼 내가 별 생각 없이 일상적으로 하는 한마디가 전체적 관계의 시스템을 흔들 수 있다.


◆ 한국인과 통하는 특별한 공감코드

#1. 자존심을 살려주면 관계가 술술 풀린다=사람은 자신이 최소한 남보다 못하지는 않다고 여기고 싶은 본능이 있다. “왜냐하면 나는 소중하니까”라는 CF의 멘트처럼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나쁜 일에 책임을 지기보다 좋은 일을 자기 공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고, 또 자신을 평균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같은 경향을 ‘자기 고양 오류(Self-Serving Bisa)’라 한다. 인간은 이렇게 치사한 존재지만 그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면 소통은 물 건너 간 것이다.

반대로 우리 자신도 자존심을 다스려야 사람을 얻는다. 고통 없이 성장은 없다. 나의 성장을 통해 관계의 성장을 이루고 싶다면 그러한 아픔도 감내할 필요가 있다.


#2. 체면, 정(情), 우리=우리나라 사람들은 최적의 소통상태를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표현하며 추구해왔다. 서양에선 명확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최고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보지만 한국 사람은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최고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이심전심의 기대 때문에 오해의 위험은 더욱 커진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말로 하기 전에 내 몸과 얼굴을 보고 알아서 해주면 ‘체면을 세워주는 것’으로 크게 만족한다.


그 다음 친밀함의 수준은 ‘정’이다. 손해를 보면서 도와주는 것이 정이다. 또 보이지 않게 도와주고 도와준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정이 녹아들면 ‘우리’가 된다. ‘우리가 남이가?’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오해와 갈등은 정을 조준하고 부어주는 방법, 정을 주고 받는 방향이 잘못됐기 때문에 발생한다.
마음은 ‘이심전심’이지만 현실은 ‘동상이몽’(同牀異夢)’인 것이다.

따라서 진심으로 이심전심을 바란다면 지나치게 소극적인 자세로 누가 나를 알아주기만을 바라서는 안된다. 내가 먼저 남의 입장에 서서 배려하고 노력하고 그의 마음속에 들어가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를 내 안으로 끌어들여 흡수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마음의 빗장을 여는 것부터 시작하자.

#3. 코드 공화국 코리아, 통(通)하였느냐!=‘코드 인사’라는 말이 있지만, 한국은 바야흐로 코드의 세상이다.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 어떤 일을 추진할 때 손발이 맞고 뜻이 통해야 능률적인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와 ‘통한다’고 할 때 얻는 만족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짜릿하다. 그 경험을 하면 눈에 콩깍지가 씐 듯 맹목적인 신뢰를 보낸다.


코드가 통한다고 했을 때 ‘코드’는 일반적으로 code(신호법, 암호)지만, chord(조화)이자 cord(연결선)이기도 하다. 먼저 코드(code)는 나의 신호법을 너무 잘 알고 있어 내가 보낸 신호를 정확하게 해석해 100% 이해하는 것이다.

그 다음 코드(chord)는 동등성에 기반을 둔 상호작용이자, 두 사람 사이에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마지막 코드(cord)는 예컨대, 오디오 마니아들이 앰프와 스피커 등 기계를 연결할 때 연결선(cord)의 질을 무척 중요시하듯, 서로의 연결선이 최대한의 속도와 순도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즉, code로서 서로 통하는 언어를 이해하고, chord로서 조화로운 주고 받음을 위해 노력하는 것, 마지막으로 cord로서 감성적으로 하나로 연결되고 통하는 마인드를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처럼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말은 허튼 소리만은 아니다.


정리 =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2007년 7월 9일(월) 오후 1:49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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