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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삶

부그러움 이란 ?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고 기록문화 중 하나가 성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진위를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고 인간 의식구조에 대한 최초 기록이고  양심의 가책에 대한  심리 묘사이기에 인용해 본다.


『하느님께서는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되, 이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뱀이 여자한테 와서 그 나무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주었다. 남편도 받아먹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렸다.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부르셨다. "너 어디 있느냐?" 아담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정해주신 룰(법)을 어기고 난  첫 사건에서 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느낀 순간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기록이다. 부끄러움은 법을 어긴 인간이 하나님에게 향하기 위한    잘못에 대한  뉘우침이고  용서의 표현이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


이 땅에 원죄를 짊어지고 태어난 인간들은 잘못을 범할 수밖에 없에 만들어지고 그잘못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게된 것이 인간이 가진 심성이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약이 되기도 한다.



이런 말은 논리적으로는 맞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는 이 말이 너무 모순적이고 맞지 아니한 것이 현실이다. 무엇이 부끄러운 것인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가  언젠가부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도덕과 윤리적인 면에서 살펴 볼 때 불의 한 마음가짐과 양심을 범하고 있는 죄의식에 대하여 너무도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질이 풍족하고 여유로워졌는데도 물질에 대한 욕심과 이성을 향한 성적 타락은 날이 갈수록 그 도가 끝을 모르게 치닫고 있으며 양심의 가책되는 행동을 자랑인양 처신하는 세대에 살아가고 있기때문이다.



인간에게 가장 고귀한 것은 하늘이 부여한 선의 기준인 되는 양심을 어겼을 때 부끄러움을  깨닫게 되는 마음가짐인데 한번 흐려지는 마음 바탕이 회복하여 올바른 자세로 나아간다는 것은 인간 심리상  원상회복 되기 어렵도록 창조되어 진것이 인간이다.


 

불의하고 도덕적 타락된 마음 가짐의 늪은 그 맛을 알게 되면 인간은 부끄러움을 깨닫지 못하며 죄된 심성에서 놓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도둑질이나 성범죄의 전과가 있는 자는  몸서리치는 수감생활을 한 후면 다시 범죄 하지 아니하여야 할 테지만 ,재범 등 누범을 저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소중한것은  부끄러움을 깨달을 줄 아는 조직과 사람이 절실히 요구하는 시대이다.

사회 각 계층에서 말과 행동에서 온갖 불의를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들을 볼수 있으며, 모범이 되어야할 모양만 있을 뿐 행동에서는 부패하고 타락한 군상들이 너무도 많이 버티고 있다.  이런 사회로는 밝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어렵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고 선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기대하시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쉽다.



인간은 태어날 때는 각자의 심성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부끄러움이란 맑고 아름다운 성품의 소유하고 태어났다. 그러나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인성을 올바로 제어하며 생활하여 왔는가에 따라 모습이 달아져 가는것을 알수 있다.  선을 향한 아름다운 삶의 자세를 갖추고 살아가는 양심적인 사람은  세상의 어느 보석으로도 살수 없는 가치가 주어지며, 앞으로 이런 사람과 민족이 대접 받는 시절이 도래 된다.



인간은 범죄 할 수 있고 부패 타락할 수 있는 유전인자를 타고 태어났지만 작은 실수에도 자신을 뒤돌아보며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고 작은 선을 실천 하는 데도 인색하지 아니하는 사회가 희망과 축복의 촛불로 국운이 밝혀지지 아니할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