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수 기자 hslee@chosun.com 입력 : 2007.07.16 02:06 / 수정 : 2007.07.16 02:43
- 충남 예산 시골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박효신(59)씨는 인기 있는 블로거다. 농사꾼으로 사는 일상을 개인 블로그 ‘풀각시 뜨락’(blog.naver.com/hyoshin4858)에 올리고 있는데, 하루 수백 명 네티즌이 찾는 인기 코너다. 여기에 힘입어 그동안 쓴 글을 엮은 에세이집 ‘바람이 흙이 가르쳐 주네’(여성신문사)를 출간했다. ‘속을 알 수 없는’(?) 충청도 사람들과 섞여, 정감 어린 시골 미용실 같은, 그곳에 살면서 느낀 단상들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박씨는 젊었을 때부터 농사꾼은 아니다. 40대 중반이었던 15년 전 처음으로 농사꾼이 될 생각을 했다. 1970년 한국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 홍보실, 여성신문사 편집부장을 거쳐 한국광고주협회 상무로 잘나가던 때였다.
“흙을 만지면서 노동하며 사는 게 죄를 덜 짓고 사는 길이라 생각했어요. 직장생활 하면서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목숨 걸고 싸우고 지키려 했던 것들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어요.”
- 그때부터 차근차근 준비했다. 살 곳을 정하는 게 우선이었다. 1994년 일산과 분당 신도시 아파트 분양 붐이 일 때, 32평 아파트를 분양 받을 수 있었던 돈 9000만원으로 아버지 고향마을에 땅 900평을 사고 40평 집을 지었다. 밭에는 옥수수·콩·오이·호박 등 채소와 복숭아·배·감나무를 심었다. 이후 주중에는 직장 다니고, 주말에는 시골집에 내려가 농사짓는 이중생활을 했다. 박씨는 “시골에서 한 달 100만원 수입만 있으면 완전히 내려갈 텐데 그렇게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고 했다.
2003년 기회가 왔다. 시골집에서 30분이면 출근할 수 있는 온양의 한 박물관에서 관장을 뽑는다는 소식이었다. 박씨는 억대 연봉을 박차고 당장 내려갔다. 하루아침에 그의 수입은 5분의 1로 줄었다. 하지만, 줄어든 수입도 박씨의 바람보다는 몇 배나 많은 액수였다. 온전히 농사꾼이 된 건 2년 전부터다. 어머니(82)의 건강을 위해서 미련 없이 박물관에도 사표를 던지고 어머니와 함께 살기로 작정했다.
화려한 전원생활이 아니다.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개똥을 쌀겨와 짚과 섞어 퇴비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한다. 밭에 나가 잡초를 뽑고 물을 주면 한나절이 간다. 쌀은 사다 먹지만 나머지는 모두 자급자족이다. 박씨는 “한 달 100만원이면 돈이 남는다”면서 “농사일이란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젖게 하는데 직장에서 어떤 성취를 이룬 것보다 더 짜릿하다”고 말했다.
“식물은 인간보다 더 똑똑해요. 잎이 넓은 식물을 심은 밭에는 잎이 넓은 잡초가 생겨요. 잔디밭에 생기는 잡초는 잔디와 똑같은 모습이죠. 식물한테는 사람도 못 당해요.”
박씨는 “시골살이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먼저 주말농장이라도 가서 노동을 해보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했다. “누리던 것 다 누리고 살려 하면 시골에서는 절대 못살아요.” 아직 미혼인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지금 당장이라도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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