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문 기자 leemoon@mk.co.kr
입력 : 2023-08-08 16: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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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장시간 노출되면 열사병과 같은 온열질환이 발생하기 쉽다. 특히 노약자나 고혈압, 심장질환,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폭염 상황에서 기저질환이 악화될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코로나19가 재유행하며 이달 중순 하루 평균 확진자가 6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5월 20일부터 8월 6일까지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1719명, 추정 사망자는 21명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온열질환자 1564명, 추정 사망자 9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온열질환은 일사병(열탈진), 열실신, 열경련, 열사병 등 경증 질환부터 중증까지 범위가 넓고 증상으로는 두통과 어지럼증, 메스꺼움, 빠르고 강한 맥박, 근육경련, 극심한 피로감, 빈맥·빈호흡·저혈압 등이 발생한다.
뇌와 몸의 기온 상승은 관계 밀접
온열질환은 방치하면 생명이 위험한데 왜 체온 상승을 인지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우리 몸의 컨트롤타워(사령탑)인 '뇌'에 해답이 있다.
뇌는 기계처럼 열을 받으면 체온을 조절하는 중추신경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판단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온열질환 증상이 생겨도 시원한 그늘로 옮겨가거나 물을 마셔 체온을 낮춰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뇌는 혈관과 신경세포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날씨나 기온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뇌가 열을 받으면 정신 상태가 흐려져 사소한 일에도 금방 흥분하고 화를 낸다.
뇌는 작업능률을 100으로 봤을 때 24도만 돼도 83%, 30도에는 63%로 떨어지고 40도 이상에서는 작업이 불가능하다. 폭염과 함께 열대야현상이 빈발할 때 일할 의욕이나 작업 효율이 낮아지는 것은 바로 뇌와 몸의 기온 상승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뇌가 열을 받지 않도록 한낮에는 야외 활동을 삼가고 하루 2ℓ의 물을 마시는 게 좋다. 뙤약볕에서 골프를 칠 때 얼음주머니를 목 뒤나 머리 위에 얹어 놓으면 정신이 번쩍 들고 기운을 차리게 되는 것도 바로 뇌의 온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비닐하우스와 같이 밀폐된 공간은 단시간 내 체온이 올라 뇌의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땀 많이 흘리는 비만인 뇌경색 주의
무더운 여름철에는 체온을 낮추기 위해 우리 몸은 다량의 땀을 배출한다. 이 과정에서 혈액이 끈적해지며 순환이 잘 안 돼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 위험이 크다.
뇌졸중은 크게 뇌혈관 파열로 생기는 출혈성 뇌졸중(뇌출혈)과 뇌혈관이 막히는 허혈성 뇌졸중(뇌경색)으로 구분되는데, 뇌출혈은 기온 변화가 큰 환절기(3~4월, 9~11월)에 위험성이 높고 뇌경색은 여름철에 발병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더위에 물을 자주 마시라고 하는 것도 온열질환과 함께 뇌졸중 예방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버드의대에서 조사한 결과 여름철 기온이 평균보다 1도 오르면 당뇨병과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 위험률이 약 10%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심장학회 연구에서도 기온이 32도 이상일 때 뇌졸중은 66%, 관상동맥 질환은 20%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65세 이상 고령자들은 기온이 27도에서 28도로 상승했을 때 사망률이 2.5%, 28도에서 29도로 올랐을 때는 3.1% 늘었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등과 같이 심혈관질환을 일으키는 주요 위험인자를 지닌 사람들은 폭염의 날씨가 심장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며 "기온이 30도를 넘으면 심장질환 사망률이 2배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고혈압 환자도 무더위에 조심해야 한다. 특히 덥다고 찬물로 샤워를 하거나 몸이 뜨거운 상태에서 바로 에어컨 바람을 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확장된 혈관이 찬바람을 맞으면 갑자기 수축돼 혈압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뇌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 샤워는 미지근한 물로 하고 냉방기를 사용할 때는 실내외 기온 차이가 4~5도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탈수는 고혈압을 악화시킬 수 있어 야외 활동을 할 때는 목이 마르지 않더라도 충분한 수분 섭취가 필요하다. 당뇨병 환자도 무더위에 탈수 현상이 나타나면 급성 당뇨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더운 날씨로 인해 시원한 청량음료나 빙과류, 과일 주스 등을 찾는 일이 많은데 이는 당분 함량이 많으므로 당뇨병 환자는 피하는 게 좋다.
저혈압, 폭염에는 실신·쇼크 가능성 커
폭염에는 저혈압이 잘 발생한다. 골프장에서 퍼팅라인을 보고 퍼팅을 하기 위해 일어섰을 때 갑자기 어지러운 이유가 바로 기립성 저혈압 때문이다.
여름철 어지럼증은 단순히 '더위를 먹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저혈압으로 인한 증상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저혈압 환자는 1년 중 가장 무더운 7~8월에 가장 많이 병원을 찾는다. 더운 날씨로 땀을 많이 흘리면 탈수로 일시적인 저혈압이 유발될 수 있다. 국내의 한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1도씩 오를 때마다 병원을 방문하는 저혈압 환자는 11%씩 증가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더운 여름에 땀 배출이 늘어나 체내 수분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체내에 수분이 부족하면 혈액량도 같이 감소해 혈압이 떨어질 수 있다. 또한 기온 상승에 따라 혈관과 근육이 이완될 수 있고 혈액의 이동 속도가 느려져 혈압이 낮아질 수 있다.
평소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약 자체가 혈관 확장제 성분이어서 기립성 저혈압이나 혈압 하강에 따른 증상을 느끼기 쉬워 실신이나 이에 따른 낙상 위험이 높다.
따라서 섭씨 30도 이상 고온에 습한 날씨가 장기간 이어지면 외부 활동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서늘한 날씨라도 고온의 사우나나 온탕에 들어갈 때 똑같이 적용된다.
저혈압은 고혈압과 달리 진료 지침에 명확한 기준이 없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저혈압은 일반적으로 수축기 혈압 90㎜Hg 미만 또는 이완기 혈압 60㎜Hg 미만인 경우에 해당된다.
서지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저혈압은 노인, 항고혈압제 복용, 전립선 비대증약 복용, 당뇨병, 만성 알코올 중독증, 류머티즘 질환 등이 있는 사람에게서 잘 발생한다"며 "체내 수분이 쉽게 부족해질 수 있는 여름철 환경은 저혈압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여름철 저혈압을 예방하려면 하루 1.5~2ℓ의 물을 마시고, 충분한 염분 섭취도 필요하다. 또한 술이나 커피는 체내 수분을 배출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피하는 게 좋다.
고령자는 침대에서 일어날 때 침대에 수 분간 앉았다가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 좋다. 운동은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진행한다.
열대야 '불면증' 적정 실내 습도 중요
열대야는 오후 6시 1분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일 때 해당된다. 열대야현상이 계속되면 밤잠을 설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잠을 잤나 싶을 정도로 상당한 피로를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고, 직장과 가정에서 일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연신 하품을 하며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렇게 밤새 깊게 잠들지 못하고 잠을 자다가 자주 깨며 그로 인해 낮에 졸리고 피로감이 생기는 증상이 '불면증'이다.
열대야를 이겨내고 숙면을 취하려면 실내 습도를 60% 이하로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잠들기 전 침실의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후 적정 온도의 에어컨이나 선풍기로 시원한 환경을 만들고, 차가운 수건을 걸어두거나 머리 옆에 얼음주머니를 두면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에어컨 온도가 추위를 느낄 정도로 낮거나 밤새 가동하게 되면 습도가 떨어지면서 호흡기질환에 걸릴 수 있어 22도 이하는 지양하고, 2~3시간 후에 꺼지도록 예약을 설정해야 한다. 선풍기는 바람을 타고 실내 미세먼지가 호흡기로 유입되면 목이 붓는 등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작동 시 회전 모드로 설정하고 바람은 아래로 향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호흡기질환을 앓는 사람은 급성 호흡곤란까지 겪을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오상훈 의정부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덥고 습한 날씨에도 수면시간과 기상시간을 평소대로 유지해 생체리듬이 깨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자기 전에 미지근한 물로 샤워나 족욕을 해 편안한 심신 상태를 만드는 것도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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