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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국밥 한 그릇이면 됩니다"...돈봉투 내밀자 공무원이 한 말

중앙일보

입력 2023.04.14 05:00

김경수 우리글진흥원 교수가 2005년 중국 고비사막 250km 레이스에서 시각장애인 이용술씨와 함께 뛰고 있다. 둘은 서로의 몸을 줄로 연결했다. [사진 김경수]

“따듯한 국밥 한 그릇이면 됩니다.”
김경수(60·사진) 공익법인 우리글진흥원 교수가 2012년 서울 강북구 팀장 재직 시절 자신에게 두툼한 돈 봉투를 내민 A건설사 대표에게 정중히 건넨 말이다. 인허가 부서에 있을 때 알게 된 대표가 ‘김 팀장이 미국 그랜드캐니언 울트라마라톤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후원금’ 명목으로 내민 봉투였다.

표창 담당 간부 상납금 관행 끊어 

당시에도 레이스 참가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500만원 정도 필요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언제든 부정·부패와 연결될 수 있어서다. 1993년 공직을 시작한 그는 몇 년 뒤 표창 담당 간부에게 상납을 거부했고 한다. 이후 조직에서 이런 관행은 사라졌다. 직장에서 ‘사회 부적응자’란 막말까지 들었지만, 청렴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나중에 그 건설사 대표께서 주변에 ‘공직사회가 진짜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하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뿌듯했다”고 말했다.

김경수 우리글진흥원 교수. [사진 김경수]

전국 최초 탄생한 '지자체 여행사'

김 교수는 2020년 강북구 마을협치과장을 끝으로 명예퇴직했다. 30년 가까운 공직생활 동안 여러 성과도 냈다. 지자체 최초 여행업 서비스인 ‘구민생활 서비스코너’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지자체별 경영수익사업을 적극적으로 유도할 때다. 일종의 ‘강북구 여행사’를 차렸다. 국내·외 여행정보는 물론 항공권·호텔숙박 예매서비스까지 제공했다. 김 교수가 유명 항공사 등을 찾아다니며 6개월간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강북구 여행사는 한 해 매출 13억원을 올릴 정도로 성과를 냈다. 구청 인력·시설을 사용해 인건비·관리비가 발생하지 않으니 1억원은 세외수입이 됐다. 이후 여러 지자체가 벤치마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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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출·퇴근 길엔 환경순찰로 전봇대에 붙은 불법 광고물이나 고장 난 가로등, 인도에 쌓인 불법 적치물 등을 찾아 개선했다. 2005년 중국 고비사막 250㎞ 오지 레이스엔 시각장애인 레이스 도우미로 참가해 완주에 성공했다. 또 후원받은 4500만원 상당 장애인 특수차를 복지단체에 기증하는 가하면, ‘구정논단’에 연구논문을 발표해 3차례 우수논문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청렴·결백, 헌신·봉사하는 모범공무원을 발굴하는 ‘청백봉사상’ 2007년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 교수는 “조직 성과는 구성원이 배려하고 협력해준 결과로 나 역시 훌륭한 조직에 몸담고 있기에 가능한 영예였다”며 “수상 이후 ‘동료 선후배들에게 더욱 귀감이 돼야 한다’는 책임감을 무겁게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직 후배들에게 “경험상 공직은 자기 일과 인간관계, 자기 계발이란 3개 축 균형이 중요하다”며 “이를 통해 조직도 발전하고 자신도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중구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제46회 청백봉사상 시상식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수상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행정안전부=뉴스1

'청백봉사상' 후보자 추천 21일까지 

한편 청백봉사상은 1977년 제정된 국내 최고 권위 상이다. 행정안전부와 중앙일보가 공동 주최하고 JTBC가 후원한다. 현재 전국 5급 이하 지방공무원을 대상으로 후보자 추천절차가 진행 중이다. 접수는 이달 21일까지다.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