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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인사철 축하 난은 이제 그만... MZ 공무원들의 ‘특별한 선물’

“다음에 꼭 방탈출 가요” 롤링 페이퍼 돌려

일부 지자체선 난 돌리기 금지하기도

안준현 기자

입력 2023.02.22 16:15

서울의 한 구청 조모(39) 주무관이 인사철 같이 일하던 직원들로부터 받은 롤링페이퍼/독자제공

서울의 한 구청에서 일하는 주무관 조모(39)씨는 이달 초 인사이동으로 부서를 옮길 때 같이 일하던 직원들로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공무원들이 부서를 옮길 때면 으레 주고받는 화분이나 난 대신 직원들이 직접 쓴 롤링페이퍼를 받은 것이다. 그 안에는 “주임님, 다음에 꼭 방탈출하러 가요” “화음 맞출 메인보컬이 없으니 누구랑 노래를 부르나요” 등 이별을 아쉬워하는 내용과 “잘해낼 것이라 믿는다” “창대한 업적이 쏟아져 나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등의 격려사가 담겼다. 같이 일하던 직원의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주)미나리’라고 지은 가짜 명함도 받았다고 한다. 조 주무관은 “업무가 많은 부서였는데도 이렇게 신경을 써주셔서 그 어떤 선물보다 감동이었다”고 했다.

최근 공직 사회에서는 승진하거나 부서를 옮기는 직원들에게 화분이나 난 같은 식물을 선물하던 관습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젊은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화분이나 난은 큰 의미도 없고, 자주 들여다보면서 관리하기 어려운데 비싸기까지 하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롤링페이퍼나 간식 등 재치 있고 의미를 담은 선물들이 퍼지고 있다.

서울 노원구청에서 근무하는 A 주무관도 최근 승진한 동료에게 줄 선물로 화분 대신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만든 빵을 골랐다. 이 협동조합은 노원구에 있는 발달장애인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A 주무관은 “우리 지역 내 협동조합에서 만든 간식이라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선택했다”며 “떠나기 전 선물한 빵을 같이 나눠 먹으며 동료와 더 깊은 유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구청장들이 직접 나서서 ‘화분 돌리기’를 금지하거나, 실용적인 선물을 권장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서울 구로구청은 최근 일부 직원들이 구청장에게 “불필요한 화분 전달을 없애자”고 건의한 이후로 간부 회의를 통해 화분 전달을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구로구 관계자는 “이제 승진한 동료에게 축하 인사나 식사 정도만 하라고 권유하고 있다”고 했다. 강동구청은 신임 구청장이 취임 축하로 들어온 화분 50여 개를 되팔아 구입한 220kg의 쌀을 아동복지시설에 기부하며 인사철 화분 돌리기를 금지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성북구, 관악구, 강서구 등에서 ‘불필요한 관행 폐지’를 내걸고 인사철 화분이나 난 선물을 금지하는 기조가 퍼지고 있다고 한다.

일선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바람직한 변화다. 더욱 장려하자”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신동근 공무원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최근 있었던 지자체 공무원노조 출범식에서도 ‘축하화환 및 화분을 정중히 사양한다’고 한 곳들이 있다”며 “축하 화환에 상응하는 돈을 이웃 사회에 기부한 곳들도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