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연 기자
입력2023.02.20 18:24 수정2023.02.21 09:32 지면A1
심각해진 꿀벌 실종
"올 100억마리 사라질 것"
남부서 강원·경기로 피해 확산
화분 매개 못해 생태계 파괴
주요 작물 85% 생산감소 우려
사진=게티이미지
강원 춘천시에서 30년 넘게 양봉을 해온 김재환 씨는 지난해 꿀벌 196통(군)을 잃었다. 작년 봄 200통이 넘던 꿀벌 대부분이 1년도 안 돼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김씨는 “5월까지만 해도 아까시 꿀을 땄는데, 여름이 지나면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며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20일 춘천시에 따르면 시 양봉협회 소속 농가에서 키우는 꿀벌 5600군 중 3811군(68%)이 사라졌다. 군당 1만~1만5000마리의 꿀벌이 사는 것을 감안하면 꿀벌 3811만~5716만 마리가 실종된 셈이다. 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농가까지 더하면 춘천에서만 1억5000만 마리 이상의 꿀벌이 사라졌을 것으로 추산된다.
‘꿀벌 실종 사태’는 지난해 초만 해도 남부 지방에서 주로 나타난 문제다. 하지만 지금은 피해 지역이 강원과 충청, 경기 등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꿀벌 78억 마리(전체 꿀벌의 17.8%)가 사라진 데 이어, 올해는 최소 100억 마리 이상이 추가로 자취를 감출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에 따르면 주요 작물의 85%가 꿀벌 감소로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다. 농작물 가격 상승은 물론 작물 멸종과 생태계 파괴까지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그러나 정부는 피해 규모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국내 농업 생산에서 꿀벌 화분 매개의 경제적 기여 가치는 6조원 이상”이라며 “지역별 현황 등 국가 통계 작성과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강원까지 북상한 '꿀벌 실종'…농산물값 폭등 부르나
세계 양봉산업을 강타한 ‘꿀벌 집단 실종 사건’이 국내에서 처음 보고된 건 지난해 초다. 월동한 벌통에서 꿀벌이 모두 사라지는 ‘꿀벌군집붕괴현상(CCD)’ 추정 사건이 속출한 것이다. 그 후 1년여. 남쪽 지역에 주로 집중됐던 꿀벌 집단 실종이 강원도에서도 확인되는 등 피해 지역이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올해 100억 마리가 사라지고 양봉산업이 붕괴할 수 있다”는 공포가 업계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원인 놓고 CCD vs 월동 폐사 격돌
‘꿀벌 100억 마리 실종’이 현실화하면 사태는 과일, 채소류는 물론 우유 등 유제품 가격이 급등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으로 곧장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농작물의 70~80%가 꿀벌의 활동으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20일 양봉업계 등에 따르면 이달 들어 꿀벌 한 통 가격은 40만~50만원으로 치솟았다. 지난해만 해도 한 통에 20만원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두 배 이상 오른 가격이다. 하지만 이 가격을 준다고 해도 꿀벌을 구하기 쉽지 않다. 살아있는 꿀벌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 ‘벌 깨우기’를 끝낸 농가가 늘어나면서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춘천시 양봉협회 소속 농가에서만 꿀벌 5600군(통) 중 3811군이 사라졌다. 경기도에서도 지난 1월 꿀벌 사육군수 25만6448군 중 8만8300군이 피해를 입었다. 충청북도 역시 1301군이 피해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양봉 농가에서는 “지난 1년 사이에 벌의 85~90% 이상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꿀벌 실종 원인을 놓고는 농가와 정부 측 진단이 엇갈린다. 양봉 농가는 농약으로 인한 CCD라고 주장한다. 2022년 초 키우던 꿀벌 중 80% 이상이 월동 전에 사라졌고, 겨우내 10~15%가 더 없어졌다는 설명이다. 신창윤 양봉관리사협회 회장은 “소, 닭, 돼지 등이 80% 죽었으면 정부가 가만히 있었겠냐”며 “실질적인 피해 조사부터 당장 진행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 양봉 농가는 지난 15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정부는 꿀벌 실종이 CCD가 아니라 월동 폐사라고 판단하고 있다. 원래 꿀벌이 월동을 하면 지역에 따라 10~30% 정도 폐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보고된 CCD는 일벌들만 사라지고 여왕벌과 애벌레 등은 남아 있는데 한국에서는 여왕벌까지 모두 사라지는 점도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차원 컨트롤타워 절실”
CCD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까지 가장 큰 요인으로 거론되는 것은 꿀벌 응애의 급속한 확산이다. 꿀벌에 기생하며 체액을 빨아먹고 사는 응애는 ‘날개 변형 바이러스’ 등 병을 옮겨 피해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 기후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겨울철 온도가 높아지면 봄인 줄 알고 벌들이 깨어났다가 다시 추워진 날씨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얼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꿀벌의 실종이 양봉산업의 괴멸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화분 매개자인 꿀벌이 줄어들면 식물이 열매를 맺지 못해 멸종할 수 있고 이로 인해 곤충, 초식동물, 인간에게까지 피해가 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2014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을 지시하기도 했다.
정철의 안동대 교수는 “꿀벌은 꿀벌의 먹이(식물학), 꿀벌의 생태(곤충학), 부산물인 꿀(식품학) 등 다양한 학문이 복잡하게 얽혀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며 “농식품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가 함께하는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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