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세력의 정치는
도덕으로 시작했으나
무능·위선으로 끝났다
이견을 惡으로 보는 팬덤 포퓰리즘
反지성의 모래지옥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입력 2023.01.25 03:20
정치가 우리 생활세계의 너무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식사나 술자리를 갖는 게 불편하다는 국민이 41%에 가깝다. 결혼을 꺼리는 비율이 약 44%에 이른다. 정치의 분단이 생활의 분단으로 확대된 것이다.
2022년 7월 17일 경남 양산 하북면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문 전 대통령 규탄 집회(왼쪽)와 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평산마을 일상회복 기원집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2022.7.17/뉴스1
조선 시대 당쟁은 조금 더 심했다. 같은 당파끼리 한 마을에 모여 살고, 다른 당파와는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다른 당파의 길흉사에 가면 수군거리고, 통혼하면 무리 지어 배척했다. 말씨와 복장이 달라, 길에서 만나도 어느 당파인지 알았다. 정치가 생활 세계까지 완전히 점령한 것이다. 당파는 자손 대대로 세습되고, 다른 당파는 서로 원수처럼 죽였다. 실학자 이익이 그린 당쟁의 살벌한 풍경이다.
일본의 한국학자 오구라 기조(大倉紀藏)는 더 심하게 본다. “조선 혹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철학 그 자체가 영토·사람·주권으로 응결된 것이 조선 혹은 한국이다.” 리(理)의 철학이 주권과 사람뿐만 아니라 영토까지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리가 뻗쳤으니, 도덕과 정치는 이제 우주가 되었다. 그런데 지고지순한 사림이 조정을 장악한 선조 대부터 조정에 피가 낭자하고, 민생은 뒷전이 되었으니, 역설이었다. 율곡이 피를 토하며 ‘만언소’를 올렸으나, 오히려 당쟁에 치여 요절했다.
조선 정치가 전쟁처럼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정치와 도덕을 같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성리학은 정치를 천리(天理)의 실현으로 본다. 성리학의 목표는 인륜이 바로 선 예치국가, 민생이 편안한 위민국가였다. 하지만 “지상천국을 건설하려는 전체주의의 모든 시도가 비록 선한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결국 지옥을 만들 뿐이다.”(Karl R. Popper) 성리학의 문제는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견을 ‘차이’(difference)가 아니라 ‘악’(evil)으로 본다. 대를 이어 죽고 죽이는 참극이 벌어진 이유다. 도덕과 철학의 정치적 역설이다.
성리학이 민주주의로 바뀌었지만, 정치를 도덕으로 보는 한국인의 세계관은 건재하다. 한국인은 “인민이 존재한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인민 또는 인민의 집단적인 의지라는 어떤 신비스러운 관념이 직접 지배한다는 것을 믿는 나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지켜본 저널리스트 브린(Michael Breen)의 비평이다. 한국인은 “민심이 법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놈의 헌법’이라던 대통령도 있다.
하지만 정치가 살아난 놀라운 예외도 있다. 산업화, 민주화 세력이 극적으로 타협한 1987년 민주화다. 1961년 이후 두 세력은 나라의 방향을 둘러싸고 30여 년간 싸웠다. 1987년에는 내전 직전까지 갔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군사정부는 군대 동원 일보 직전까지 갔다. 6·29 선언이 나라를 살렸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비로소 하나의 강물로 합류해, 한강의 기적을 완성했다. 1990년 3당 합당, 1997년 DJP 연합이 그 가치를 공고히 했다. 유권자의 의사와 무관했으니, 이 ‘보수적 민주화’(최장집)는 야합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만 보면 야합이고, 의미를 보면 통합이다. 그게 도덕 너머의 정치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절망한 사람들도 있었다. 1980년 이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주도해온 ‘급진적 민주화’ 세력이다. 그들의 이념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주체사상이고, 정치란 계급 해방과 민족 해방의 역사적 대의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민은 일터로, 학생은 강의실로 돌아가자 투쟁의 장이 사라졌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이념도 무너졌다. 많은 운동가들이 전향했다. 하지만 이념은 하나의 생명체다. 환경이 불리하면 카멜레온처럼 변신하고, 박테리아처럼 동면도 한다. 시민단체로 모습을 바꾸고, 제도권 정치에도 진입했다.
IMF 외환 위기가 이들을 소환했다. 서민의 삶이 무너지자, 국민은 급진적 민주화 세력에 가까운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했다. 국가를 접수한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보수적 민주화 세력과 결별한 것이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타협적 민주화의 가치를 부정하고 도덕정치를 부활시켰다. 두 세력이 부딪쳐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가 일어나고, 다시 투쟁의 정치가 시작되었다.
급진적 민주화 세력의 정치는 도덕으로 시작했으나, 무능과 위선으로 끝났다. 이 세 가지를 함께 담는 그릇이 지역주의와 팬덤에 기생하는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 최고의 위력은 이성이 작동되지 않는 탈진실(post-truth)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여기서는 거짓일수록 환영받고, 대담한 거짓말쟁이일수록 영웅 취급을 받는다. 진보는 도덕적으로는 퇴보했지만, 기술적으로는 진화했다. 문재인 정부가 완성했다. 산업화 가치에 정체되고, 레저 정당에 빠진 보수의 지적‧정치적 태만도 한몫했다. 그렇게 탄생된 정치적 양극화는 점점 반지성의 모래 지옥으로 변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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