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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국방

獨전차 세계대전 달릴 때, 소달구지 끌던 韓…라이벌 된 비결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2022.08.26 05:00

선망의 대상

독일은 고정 관념처럼 돼버린 제조업 강국이라는 위상 덕분에 상거래에서 이득을 많이 보는 대표적인 나라다. 실제로 제2차 산업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기계ㆍ화학 분야는 세계 최고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판매자가 갑질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쟁력이 독보적이다. 지난 2015년 ‘디젤 게이트’로 알려진 사기극이 밝혀졌음에도 독일제 자동차의 명성은 변함이 없을 정도다.

무기 분야에서의 위상은 더욱 대단하다. 역사가 오래됐거니와, 20세기에 있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포함해 실전에서 전과가 많았기에 독일제 무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패전국인 관계로 전후 오랫동안 무기의 개발과 보유에 제한을 받아 왔으나, 지금은 세계 방산 시장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특히 전통의 육군 강국답게 지상군 무기는 최정상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레오파르트 2는 미국의 M1 에이브럼스와 더불어 40여 년 가까이 서방 전차 시장을 반분하고 있는 절대 강자다. 국산 K2가 이러한 공고한 아성에 도전 중이다. 위키피디아

그래서 독일제 무기는 오랫동안 우리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6ㆍ25 전쟁 이후 미국제 무기에 대한 의존도가 크기에 거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한국 해군의 본격적인 잠수함 역사를 개막한 장보고급처럼 의의가 상당한 무기를 공급받기도 했다. 최초의 국산 전차인 K1의 탄생에 본의 아니게 독일의 역할이 작용했던 사례처럼 종종 방산 거래에 있어 독일을 지렛대로 삼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에 우리 정부는 북한에 뒤진 기갑 전력 격차를 해소하려고 미국에 M60 전차의 면허생산권을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은 기존에 공급한 M48 전차면 충분하다며 거절했다. 아무리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박정희 정권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어도 당시 예멘ㆍ에티오피아에도 M60이 공급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상당히 불쾌한 결정이었다. 더구나 한국은 냉전 시대 서방의 최전선이었다.

 

독일 전차의 도입을 우려한 미국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최초의 국산 전차인 K1이 탄생할 수 있었다. 위키피디아

이에 정부는 서독과 접촉에 나섰다. 마침 서독은 레오파르트 2 전차의 개발을 완료해 배치를 눈앞에 둔 시점이었기에 단종할 레오파르트 1 전차의 생산 시설을 한국으로 이전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M60과 맞먹는 레오파르트 1의 한국형을 개발해 공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우리 정부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자 화들짝 놀란 미국이 부랴부랴 국산 전차의 개발을 돕겠다며 나섰다.

서독은 미국의 핵심 동맹이지만 전차를 비롯한 기갑 장비는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던 사이였다. 특히 서유럽은 독일제 전차의 텃밭과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마저 독일제 전차를 도입하면 동아시아 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기에 미국이 다급하게 나왔던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M1 에이브럼스 전차의 기술을 기반으로 탄생한 전차가 바로 현재 국군의 주력인 K1이다.

시대의 변화가 바꾼 모습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우리가 처음에 염두에 두었던 M60보다 성능이 좋은 제3세대 전차를 적기에 도입하고 국산 전차 시대를 앞당길 수 있게 된 데는 이처럼 독일의 존재가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이후에도 국산 장비를 개발할 때 동종의 독일제 무기는 당연한 벤치마킹 대상이자 성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기술력이 부족해 국산화에 애를 먹던 부품의 주요 공급원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받아 온 국산 기갑 장비가 어느덧 K9 자주포를 시작으로 세계 방산 시장에서 독일제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다. 독일의 PzH 2000 자주포는 향후 배치 예정인 국산 K9A2 이전 모델보다 성능이 좋다고 우리도 인정하는 명품이다. 하지만 K9이 성능이 크게 뒤지지 않으면서도 가격이 저렴하다는 강점을 내세워 시장을 공략하자 현재 PzH 2000은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다.

현존 최고의 155㎜ 자주포라는 평가를 받는 PzH 2000의 사격 모습. 하지만 K9의 2.5배에 이르는 엄청난 가격 때문에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위키피디아

전차는 더욱 극적이다. 국산 K2가 현존 최고의 전차 중 하나라는 명성을 가진 레오파르트 2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K2는 최대 1000대로 알려진 폴란드의 전차 도입 사업에서 유일하게 구매자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철옹성 같은 독일 전차의 장벽을 허물고 처음으로 유럽에 진출하게 됐다. 노르웨이에서도 최신형인 레오파르트 2A7을 상대로 선전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자주포. 전차와 더불어 3대 필수 기갑 장비 중 하나인 장갑차도 마찬가지다. 약 17조 원 규모의 최신예 장갑차 400대 도입을 계획 중인 호주에서 국산 AS21 레드백이 독일의 KF41 링스와 경쟁 중이다. 독일제 장비의 성능이 뛰어나기에 참여한 모든 사업에서 한국의 수주를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제가 여러 후보 중 마지막까지 남아 독일제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현재 호주에서 독일의 KF41과 치열하게 채택 경쟁 중인 AS21 장갑차. 이뿐 아니라 현재 여러 나라에서 국산 장비가 독일제의 맞상대로 부상한 상태다. 앞으로도 이런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한화디펜스

우스갯소리로 독일 전차가 명성을 써 내려 간 제2차 대전 당시에 소달구지를 끌었던 나라가 오늘날 경쟁자가 되었다는 자체가 대단한 반전이다. 그래서 설령 경쟁에서 패해도 국산 무기가 난공불락 같은 독일제 장비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부상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극적인 변화는 지난 30년간 국제 정세의 변화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냉전 종식 후 대다수가 군축에 나섰던 반면 우리는 주변의 군비 경쟁으로 말미암아 투자를 꾸준히 해온 덕분에 독일을 비롯한 선도국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새로운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서방에서 필요로 하는 무기를 적시에 공급해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됐다. 어렵게 차지한 이런 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