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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기행

‘평냉’ 좀 아는 당신, ‘쓴 메밀면’은 잡솨봤나 [결정적 메뉴]

서관면옥, 능라도 등 냉면 세대교체
냉면 하루 1600그릇 파는 ‘서관면옥’ 김인복 셰프
비결은 쌉싸름한 제주산 ‘쓴 메밀’

박정배 음식평론가
입력 2022.08.24 11:00

2010년 전후로 냉면업계에도 새 바람이 불었다. 실향민 노포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미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새로 유입된 젊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면서 몇몇 곳이 눈에 띄는 성공을 거뒀다.

고급 재료로 냉면계에 새 바람을 몰고 온 ‘능라도’, ‘의정부 평양면옥’ 주방장이 독립해 개업한 ‘진미평양냉면’, 경기 광명에서 명성을 얻어 서울까지 진출한 ‘정인면옥’ 같은 집들이다. 이들은 독특한 냉면을 만들고 인테리어도 레스토랑 형태로 바꿨다.

◇‘평냉 힙스터’ 인기식당 서관면옥...면 맛으로 승부한 김인복 셰프

2018년 김인복 셰프가 창업한 ‘서관면옥’도 그 중 하나다. 기존 냉면집이 ‘메밀 대 밀가루’ 배율을 조절해 식감 차별화를 꾀했다면, 김 셰프는 일반 메밀과 쓴 메밀을 섞어 면의 맛 변화를 시도했다.

서관면옥에 이어 프리미엄 소고기와 냉면을 파는 식당 2020년 ‘한우다이닝 울릉’을 연 김 셰프는 최근 냉면집 ‘광평’을 또 열었다. 서관면옥은 하루에 냉면 약 800그릇, 울릉은 500그릇, 광평은 300그릇을 판다. 합치면 1600그릇이다.

이제는 어엿한 냉면 명가가 된 서울 서초동 '서관면옥' 초기메뉴. /김종연 영상미디어기자

‘김인복의 면’은 다른 집에 비해 풍미와 감칠 맛이 강하다. 일반 메밀에 섞은 제주산 쓴 메밀 덕이다. 제주산 쓴메밀을 껍질째 갈아 검은 색이 약간 감돈다. 매끈한 면발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호감도가 떨어질 수 있다. ‘광평’에서는 이 면발로 일반 평양냉면과 비빔면인 골동면(비비작작면)을 주로 낸다. 평양냉면이 7, 골동면이 3 비율로 나간다.

평양냉면 육수에는 간장을 섞어 약간 갈색이 돈다. 우래옥 스타일이다. 뼈가 일절 들어가지 않은 살코기로 끓인 국물은 진하면서 깔끔한 고기향이 돈다. 국물은 경산 암소 고기를 써서 뽑는다. “경산 소고기는 콜라겐 성분이 많아 녹진한 맛이 나요.”(김인복) 고기 육수 100ℓ를 만드는데 고기 25kg이 들어 간다. 육수 염도는 1 로 맞추고 냉면 사리가 들어가면 0.8 정도가 되게한다. 오랜 경험으로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염도를 찾았다.

냉면집 '광평'의 골동면. 메밀면 맛을 느끼기에 최적화된 메뉴다. /박정배 음식평론가 제공

◇쓴 메밀 맛 제대로 보려면 골동면

면의 특성이 가장 드러나는 메뉴는 골동면이다. 19세기의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수록된 비빔면인 ‘골동면(骨董麵)’에서 이름을 따왔다.

널찍한 황금색 놋대접에 면발을 중심으로 무채, 익힌 미역취나물과 표고버섯, 통들깨와 으깬 참깨를 빙 둘러 꾸민다. 면발 위에는 백김치와 배, 양지 꾸미를 올렸다. 여기에 황금빛 들기름, 양조 간장과 우리 간장을 섞은 자가 제조 혼합 간장을 손님 앞에서 뿌려주면 골동면이 완성된다.

들기름 때문에 면은 오일 파스타처럼 매끈하게 혀와 식도를 넘어간다. 면, 꾸미, 간장, 들기름 등 감칠맛 나는 것들이 모여 더 큰 감칠 맛으로 탄생한다.

 
서관면옥, 한우다이닝울릉, 광평 등 식당을 운영하는 김인복 셰프. 음식 컨설팅으로도 유명하다. /박정배 음식평론가 제공

김인복 셰프는 퓨전 한정식집을 시작으로 BBQ의 ‘닭 익는 마을’ 대표 등 다양한 식당 경험을 했다. 이후 경기 용인 ‘기성면옥’, 광주광역시 ‘광주옥’ 같은 유명 냉면집의 메뉴 설계를 거쳐 2018년 서관면옥을 시작했다. 서관면옥을 준비하면서 일본 논문에서 ‘쓴 메밀’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한다.

메밀은 전세계적으로 20여 종이 존재하지만, 재배종은 일반 메밀(단 메밀)과 타타르 메밀(쓴 메일) 단 두 종류다. 일반 메밀 낱알이 각진 사각인데 반해 쓴 메밀은 얇고 길다. “쓴 메일을 먹어보니 맛있는 커피처럼 쓴맛이 단맛과 잘 어울렸다. 잘 쓰면 냉면의 풍미를 올리고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김인복)

몇년 전까지만 해도 쓴 메밀이 일반 메밀보다 3배 가량 비쌌지만, 요즘엔 재배가 늘면서 가격이 비슷해졌다. 쓴 메밀을 3~15% 비율로 섞어 20여 차례의 실험을 했다. 10% 정도가 넘으면 쓴맛이 났고, 7~8%에서 풍미가 확실히 좋아졌다. 지금도 이 비율을 지키고 있다.

김인복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 ‘한우다이닝 울릉’ 입구 설치된 자동 맷돌. 200kg이 넘는 무게다. / 박정배 음식평론가 제공

식당 ‘광평’은 제주도 메밀산지에서 따왔다. 제주는 우리나라 메밀 최대 산지. 해발 500m에 위치,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이란 별칭이 있는 광평리는 15가구가 영농법인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을 만들어 메밀 농사를 짓고 있다. 광평리의 메밀은 쭉정이가 거의 없고 씨알이 굵은 편이다. 김인복 셰프는 2018년부터 법인과 위탁 계약 재배로 메밀을 공급받고 있다.

김셰프가 운영하는 식당 두 곳에서 일주일에 1t의 메밀을 사용한다. ‘한우다이닝 울릉’ 입구에는 200kg이 넘는 자동 맷돌이 있다. 저속으로 돌며 2시간 반에 일반 메밀 20kg을 빻는다. 쓴 메밀은 입자가 작아 제주에서 제분해서 보내준다. 두 가지 메밀 가루를 정수기 물로 냉반죽해 냉면 분창에 내려 1분 10초 가량 삶는다. 면발의 두께는 약 1.5mm.

어떤 면발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김인복 대표는 “메밀의 맛과 향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신선한 느낌을 최고로 친다”고 했다. 100% 메밀면을 고집하는 이유다.

우주옥의 물냉면. 쇠고기를 진공포장해 수조안에 넣고 천천히 익힌 '수비드' 방식으로 꾸미를 만든다. /박정배 음식평론가 제공

음식업계에서는 냉면의 새로운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한우다이닝 울릉’에서는 아직 대중적인 인기는 덜하지만 청양고추를 넣은 청량냉면도 메뉴로 나왔다. 연남동에는 수비드한 소고기 꾸미를 올린 냉면을 파는 ‘우주옥’ 같은 냉면집도 등장했고, 오향중화냉면 같은 밀키트도 나왔다. 냉면의 미래가 본격화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