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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대홍수 1년뒤 말라버린 강…지구가 미쳤다, 더 빨라진 기후재앙

중앙일보

입력 2022.08.23 02:00

업데이트 2022.08.2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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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일에서는 오랜 가뭄으로 라인 강이 말라버렸다. 석탄을 운송하기 어려워지면서 일부 석탄화력발전소는 발전량을 줄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7월 독일·벨기에는 100년 만의 대홍수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20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18일 스페인 말라가 지방 라비누엘라 저수지가 오랜 가뭄으로 말라버렸다. 전문가들은 인간 활동으로 인한 기후 변화가 폭염, 가뭄, 산불과 같은 극한 기상 현상의 강도와 빈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한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2월 미국 텍사스주 잭슨빌의 기온은 영하 21.1도로 떨어졌다. 기록적 한파와 폭설에 석유·정제유 생산 중단되는 등 미국 에너지 산업에 대란이 벌어졌다.
불과 4개월 후인 지난해 6월 북미 태평양 연안을 덮친 극심한 폭염으로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리턴 지역 기온은 섭씨 49.5도까지 치솟았다. 태평양 해안에서는 수억 마리의 바다 생물이 떼죽음 당했다.

계속된 가뭄으로 독일 라인강이 말라붙었다. 빙겐(Bingen) 근처의 작은 섬에 있는 '쥐의 탑'까지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수 있는 상황이 됐다. AFP=연합뉴스

독일 뒤셀도르프 인근 라인 강의 유량 변화. 위 사진은 2021년 8월 14일에, 아래사진은 지난 13일 촬영한 것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지구촌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이 경고했던 것처럼 기후 재앙, 기후변화의 대환란(大患亂)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기후변화의 시계가 빨라지면서, 기상이변은 더욱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는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폭우와 홍수 피해가 컸지만, 남부지방에서는 여전히 가뭄을 겪고 있다. 유럽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폭염·가뭄·산불에다 홍수 피해까지 빈발하고 있다.

 

세계로 번진 가뭄·폭염 피해

지난달 12일 오랜 가뭄에 시달리는 케냐 북부 마르사빗의 로이양갈라니 지역에서 투르카나 여성들이 땔감을 운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프리카 뿔’이라 불리는 에티오피아·케냐·소말리아 등은 지난봄부터 수십 년 만에 가장 심한 가뭄으로 가축이 떼죽음 당했고, 아동 200만 명이 아사 위기에 처했다.
미국 서부는 12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댐과 저수지가 말라붙었다. 멕시코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유럽도 심각하다. 이탈리아는 70년 만의 대가뭄을 겪었고, 스페인·포르투갈도 1200년 만의 가뭄에 시달렸다. 영국·프랑스·스위스도 수돗물이 부족할 정도였다.
중국도 61년 만에 최악의 폭염과 가뭄에 시달리면서 ‘대륙의 젖줄’이라는 양쯔 강이 말라 80만 명이 식수난을 겪고 있고, 공장도 멈출 지경이다.

북반구의 상황과는 반대로 남반구의 브라질·호주·남아프리카공화국은 올해 들어 물난리를 겪었다.

지난 6월 22일 폭염이 뒤덮은 그리스 아테네에서 한 여성이 머리에 물을 붓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폭염도 최악의 상황이다. 인도 뉴델리는 지난 4월부터 기온이 47도까지 치솟는 등 극심한 폭염에 시달렸다. 스페인 남부 도시 하엔은 5월에 기온이 40도를 기록했다. 7월에 중순 포르투갈 로자 지역의 기온은 46.3도, 리스본은 41.4도까지 올라갔다.
영국에서는 7월 19일 런던 일부 지역 기온이 40도를 웃도는 등 1659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363년 만에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프랑스도 많은 지역에서 최고기온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 6월 11일 미국 캘리포니아·네바다주 경제의 데스밸리는 기온이 50도를 기록했다.
중국 상하이도 지난 7월 13일 40.9도로 149년 만에 가장 높은 기온을 보였다. 7월 중순 이라크 남부 바스라 주는 53도까지 치솟았다.


기상 재해 피해 눈덩이처럼 불어나 

지난 2월 16일 브라질 페트로폴리스 시에서는 폭우로 인해 바위가 거리에 나뒹굴고 있다. 당시 홍수로 페트로폴리스에서 최소 38명이 사망했다. EPA=연합뉴스

이런 폭염 속에 유럽과 미국 캘리포니아 등지에서는 산불이 번지면서 수만 명이 대피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유럽산불정보시스템(EFFIS)은 올해 들어 유럽에서 71만5600㏊(7156㎢)의 산림이 불탔다고 집계했다. 이는 2006~2021년 연평균의 2.2배에 해당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만 17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했다.
2000~2020년 사이 전 세계에서 기상이변으로 사망한 사람이 50만 명을 웃돈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극심한 가뭄 탓에 세르비아 프라호보 지역을 흐르는 다뉴브 강에서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독일 전함 잔해가 드러났다. 로이터=연합뉴스

독일 뮌헨 재보험사(Munich Re)는 올 상반기 전 세계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 피해가 650억 달러(약 86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했다.
지난 2월 유럽환경청(EEA)은 1980~2020년 사이 40년 동안 유럽 32개국에서 극단적인 기상이변 탓에 발생한 경제적 손실이 최대 5200억 유로(약 700조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극심한 기상 이변은 기후변화 탓 

지난달 19일 독일 드레스덴 북부 티엔도르프 인근 지역에서 소방관이 산불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기후학자들은 “기상이변이 빈발하는 것은 기후변화 탓”이라고 말한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 평균 기온은 1.1도 상승했는데, 국지적으로 온도 차이가 벌어지면서 더 극단적인 날씨 패턴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영국의 기후 정보 웹사이트 ‘카본 브리프'(Carbon Brief)’는 1850년부터 올해 5월 사이의 이상기후 현상 504건에 대한 연구 보고서 400여 개를 분석한 결과, 71%가 인간 활동 영향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이달 초 발표했다.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기후변화가 발생하고 이것이 극단적인 기상이변 형태로 나타난다는 얘기다.

문제는 기후변화가 갈수록 빨라진다는 것이다.
미 국립해양대기국(NOAA)에 따르면 지난해가 1880년 이후 6번째로 더웠던 해이고, 최근 9년(2013~2021년)이 가장 더웠던 해 10위를 차지했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기후변화 특임교수(전 국립기상과학원장)는 “기후변화가 갈수록 빨라지고, 강해지고, 명확해진다”고 말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북극 온난화 속도 지구 평균의 4배 

캐나다 인근 북극해에서 촬영한 바다 얼음. 북극은 지난 40년 동안 지구의 나머지 지역보다 거의 4배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AFP=연합뉴스

기후변화 시계가 빨라지는 것은 최근 연구결과에서도 확인된다. 핀란드 기상연구소는 지난 12일 ‘지구와 환경 커뮤니케이션스’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1979~2021년 북극권의 온도가 10년마다 0.75도 이상 상승해 지구 전체 평균 0.19도의 4배 속도라고 밝혔다.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등 일부 지역은 10년 당 1.25도씩 상승했다. 이는 북극이 다른 지역보다 2배 정도 빠르게 진행된다는 기존 연구 결과와 달리 훨씬 급격히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지난 13일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 연구팀은 남극 대륙의 빙붕(氷棚·ice shelf)이 온도가 높은 바닷물로 인해 과거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저널에 발표했다.
개별 빙붕이 아래로부터 녹으면서 녹아내리는 속도가 5~60% 빠른 것으로 측정됐고, 전체적으로는 평균 30%가량 녹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IPCC 보고서보다 상황은 더 심각

IPCC 6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서 전망한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별 기온 전망.

기온 상승에 따른 지구 기후 시스템의 반응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IPCC 6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기후변화 양상은 지난해 8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발표한 제6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보다 훨씬 심각하다. IPCC 보고서는 기존 연구결과를 몇 년에 걸쳐 검토하고, 다양한 입장을 반영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도 IPCC 보고서는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상승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당장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최소 배출 경로에서도 일시적인 1.5도 초과한 후 다시 낮아질 정도다.
당장 온실가스를 줄이더라도 미세먼지(에어로졸) 감소로 기온이 상승하는 효과 때문에 일시적인 기온 상승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가뭄이 심한 중국 충칭 지역에서 양쯔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물에 잠겼던 포예량 섬의 암초 위 불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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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CC 보고서는 기온이 2도 상승하면 10년 빈도의 폭염 때 기온이 지금보다 2.6도 더 올라가고, 10년 빈도의 가뭄은 지금의 2.4배 빈도로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온실가스를 줄이더라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상이변, 재해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재앙 전망 특별보고서 필요"

지난 15일 폴란드 크라즈닉 돌니 마을의 오더 강에 떠오른 죽은 물고기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극심한 가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6월 KAIST 김형준 교수 등 7개국 13개 기관으로 구성된 국제 연구팀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2030~2050년 남미 남서부와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 등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5년 이상 지속하는 가뭄이 빈번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다국적 연구단체인 WWA(World Weather Attribution)는 영국에서 40도 넘는 기록적 폭염이 나타날 확률이 산업화 이전보다 10배 이상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기후변화는 생태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지난 2월 공개한 보고서에서 IPCC는 “지구 기온이 1.5도 오르면 21세기 후반(2041~2100년) 육상 생태계 전체 종의 3~14%가 매우 높은 멸종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등에서는 이달 초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전 세계적인 사회 붕괴나 인류 멸종 시나리오까지 포함하는 연구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기후변화의 재앙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하기 위해 IPCC가 특별보고서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통해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온이 1.5도를 넘어서는 상황에 대해서도 이제 대비해야만 한다는 얘기다.

한반도 온난화도 빠르게 진행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8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대 방향 도로가 침수돼 있다. 뉴스1

한반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연평균 기온은 13.3도로 체계적인 기상관측이 이뤄진 1973년 이후 두 번째로 높았다. 가장 높았던 2016년보다 불과 0.1도 낮은 수준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수산 분야 기후백서(2019)'를 보면 최근 50여 년(1968∼2018년) 동안 국내 바다 표층 수온은 1.23도 상승했다. 매년 0.024도 상승한 셈인데, 전 세계 연평균 표층 수온 상승률(0.009도)보다 2.5배 높은 수준이다.

한반도 온난화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지난 1월 포스텍 민승기 교수팀은 지구 기온이 2도 상승하면 한반도를 비롯한 중위도 지역 여름이 현재 91일에서 3주 늘어난 111~112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홍콩 과학기술대 연구팀이 네이처 자매지인 ‘npj 기후 대기 과학’에 발표한 논문에서,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21세기 말에는 한반도에서는 여름철 호우 일수가 지금보다 최대 15일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회복 가능한 수준 유지해야

녹아내리는 러시아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 효과가 20배 이상이 되는 메탄이 배출된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조천호 교수는 “지구 기온 상승을 1.5도 혹은 2도로 묶어야 하는 것은 인체의 체온이나 혈당·혈압처럼 탄력성 범위 내에, 즉 회복 가능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이를 초과한다면 지구 기후가 회복 불가능한 지점(Tipping point)을 통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티핑 포인트를 지날 경우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리고 메탄가스를 방출하는 등 자기 증폭 단계까지 이른다면 파국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현재로써는 언제 티핑포인트에 도달할 것인지 수치로 명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독일 할테른의 지베르지 호수에 있는 독일 최대 수상 태양광 발전소.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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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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