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원이 1991년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꺼내들었다. [사진 미국 하원의장실]
낸시 펠로시(82) 미국 하원의장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만류에도 아시아 순방을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캘리포니아주를 출발해 하와이를 거쳐 1일 새벽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워싱턴포스트(WP) 외교·안보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은 펠로시 의장이 말레이시아 방문을 마친 뒤 2일 밤이나 3일 오전 대만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펠로시 의장이 대만 방문을 추진한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가 지난달 19일 처음 나온 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군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지난달 28일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2시간 17분간 전화 회담을 했을 때 시 주석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불 장난하면 타 죽는다"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이틀 만에 펠로시 의장은 대만행 여부를 공식화하진 않은 채 순방길에 올랐다. 앞서 지난 4월 대만 방문을 추진했을 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돼 일정이 취소된 바 있다.
최근 열흘간 워싱턴에선 펠로시 의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에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펠로시 의장에게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봤다.
①아시아 순방 일정 전체를 취소 또는 연기하거나 ② 아시아 순방을 진행하되 대만을 제외하거나 ③ 대만 방문까지 관철하는 것.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펠로시 의장이 미·중 간 긴장 고조를 피하기 위해 아시아 순방 일정을 늦추거나 취소할 수 있다는 전망도 없지 않았지만, 발 빠른 움직임으로 ①번 선택지는 단박에 사라졌다. 문제는 ②든 ③이든 정치·외교적 부담이 크단 사실이다.
중국 측이 펠로시가 탄 비행기 "격추"를 주장하거나(후시진 환구시보 전 편집인), "중국군은 절대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 "분명히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중국 국방부 대변인) 등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낸 이유는 펠로시 의장이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미국 하원의장은 대통령 부재 시 부통령 다음 권력 승계 서열 2순위다.
1일 싱가포르를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왼쪽)이 이스타나 대통령궁에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중국이 펠로시 의장을 기피하는 데는 더 깊숙이 자리한, 불편한 속내가 있다. 펠로시 의장에 대한 중국의 구원(舊怨)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4년 차 하원의원이던 펠로시는 초당적 의원 방문단 일원으로 베이징을 방문했다. 당시 그는 중국 정부 허가 없이, 동료 의원 및 미국 기자들과 호텔을 몰래 빠져나와 톈안먼 광장으로 달려가 작은 플래카드를 꺼내 펼쳐 보였다.
거기엔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2년 전 1989년 이 광장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를 유혈진압 한 '톈안먼 사태' 당시 숨진 학생과 시민을 추모하는 돌발 행동이었다.
순식간에 경찰이 에워쌌고 추격전이 시작됐다. 펠로시 의장은 훗날 지역 신문 SF게이트 인터뷰에서 "나는 도망쳐 뛰기 시작했다"면서 "동료 의원들은 약간 맞기도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기자들은 더 나쁜 대우를 받았고, 구금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마이크 치노이 CNN 특파원은 최근 '포린 폴리시' 칼럼에서 펠로시는 택시를 타고 현장을 떠났고, 기자들은 경찰에 체포돼 몇 시간 동안 구금됐다고 썼다.
중국 인권과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펠로시를 베이징은 오랫동안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외교적 기피 인물)'로 인식하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펠로시 의장이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가깝게 교류하고 티베트인 권리를 강력히 지지하는 입장도 중국으로선 불편하다. 펠로시 의장은 2015년 중국 정부 허가를 받고 삼엄한 경비 속에 시짱자치구(티베트) 주도 라싸를 방문했다고 WP는 전했다.
펠로시 의장은 지난주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미국 외교정책에서 자신이 가진 목표는 안보, 경제적 이익, 그리고 "우리 가치관 존중"이라는 3가지라고 말했다
펠로시는 "만약 상업적 이익 때문에 중국 인권을 옹호할 수 없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그것을 대변할 수 있는 모든 도덕적 권위를 잃게 된다"라고도 했다.
펠로시 의장은 중국의 악의적인 행동은 "톈안먼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그들은 일국양제를 약속했다. 그런데 홍콩에서 한 일을 봐라. 대만 문제는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냈다. 만약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펠로시 의장은 민주당 내에서도 유독 중국 민주주의, 종교의 자유와 인권 옹호에 목소리를 높여왔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지역구 인구 상당수가 중국계를 포함한 아시아계로, 권위주의 중국 정부에 반감을 가진 점도 펠로시 의장이 대중 강경 노선을 견지하는 이유 중 하나다.
펠로시는 1998년 SF게이트 인터뷰에서 정치적 행동주의는 자신의 피에 흐르고 있으며, 인권에 대한 관심은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펠로시는 "나는 아이들을 영사관과 대사관 밖에서 길렀다. 전 세계 어느 나라든 억압에 항의했다"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리는 소련 영사관 앞 단골이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의 전직 독재자 대통령)가 시청에 만찬을 위해 왔을 때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고 회상했다.
1997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민주당 동료 의원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이 영빈관 블레어하우스에서 만찬을 주최했다. 펠로시는 블레어하우스 밖에서 장 주석을 폭군이라고 부르며 항의 시위를 했다고 한다.
올해 82세인 펠로시는 다섯 명의 자녀를 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하원의원을 지내고 볼티모어 시장을 지낸 아버지 토머스 달레산드로 뒤를 이어 정계에 입문했다.
미국 의회의 대표적 '중국 매파'인 35년 차 하원의원의 꿈은 "백악관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대만 방문을 통해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경력을 마무리하고 싶어한다"(폴리티코)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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