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조사하는 중국공산당(CCP) 스파이 활동 관련 건수는 2018년에 비해 7배 늘었다. 최근 3년 동안 MI5의 중국 관련 사건 처리 능력은 2배로 증가했고, 향후 수년 동안 2배 더 커질 것이다.”
이번달 6일 MI5본부가 있는 런던 시내 템즈하우스(Thames House)에서 켄 맥컬럼(McCallum) MI5 국장이 기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MI5는 영국의 국내 방첩(防諜)·정보기관이다. 그는 이날 크리스토퍼 레이(Wray) 미국 FBI 국장과 역사상 처음 양국 정보기관 수장(首長) 회담을 갖고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최근 4년 영국내 中 스파이 사건 7배 급증”
레이 국장은 이 자리에서 “FBI는 약 12시간마다 중국에 대한 새로운 방첩사건 수사에 착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CCP의 행태에 대해, “판을 바꾸려는 것(game-changing)”, “거대하고 숨막힌다(immense and breath-taking)이라고 표현했다. CCP의 활동이 상상 이상으로 치밀하고 위협적이라는 얘기이다.
중국공산당의 국내 정치 개입이 각국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올해 1월 영국 MI5는 의회 의원 전원에게 크리스틴 리(Lee)라는 중국인 여성 변호사의 실명과 사진을 담은 ‘간섭 경보(interference alert)’를 발령했다. “중국우호협회 소속인 그녀가 중국공산당 통일선전부와 연계해 은밀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2018년 10월 4일 마이크 펜스(Pence) 당시 부통령이 워싱턴 DC 소재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 행사에서 중국을 직접 겨냥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 정치 시스템을 와해하고 미국 국내 정책과 정치에 개입하기 위해 중국은 힘을 사용하고 있다. (중략) 중국이 표적으로 삼은 미국 카운티의 80%가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찍은 곳들이다. 중국은 연방정부와 주(州)정부간 균열을 활용하려고 미국의 주와 지방 정부, 당국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중국의 활동은 현지 언론 보도에 노출될 정도로 적극적이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Axios)는 2020년 12월 8일 “1년간의 취재 끝에 크리스틴 팡(Fang)이라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중국 정보기관 소속 여성이 2011년부터 5년동안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에릭 스왈웰(Swalwell) 연방 하원의원(민주당)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들을 상대로 첩보활동을 벌인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美 연방의원, 시장, 市의원 침투
대학생으로 가장(假裝)한 팡은 연방의원과 시장, 시(市)의원 등에 접근해 선거자금 모금을 돕거나 성(性)관계를 맺으며 정보를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정부는 올 봄 실시된 뉴욕 의회 선거에도 직접 개입했다”면서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올해 뉴욕 의회 선거에서 1989년 6월 천안문 시위 참여자로서 중국을 비판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중국은 해당 후보에 대한 불리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사설탐정을 고용했다. 아무 정보도 찾지 못하자, 성 노동자를 이용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려 했으며 교통사고를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 전역의 435개 연방 하원의원 선거구에서는 대개 박빙(薄氷)의 승부가 이뤄진다. 자금을 집중 지원하거나 중국계 미국인을 동원해 수 천명 또는 1만~2만명의 표만 움직이면 중국에 우호적인 의원들을 더 많이 당선시킬 수 있다.
호주 정계를 겨냥한 중국의 침투는 더 노골적이다. 개인과 기관을 동원해 총선 등에 영향력 행사를 시도한 것이다. 2016년 맬콤 턴불(Turnbull) 총리의 자유당 정부에서 중국인 부자가 200만달러를 노동당 상원의원을 비롯한 정치권에 뿌린 게 정보기관에 적발됐다.
샘 데스티에리(Dastyari) 연방 상원의원은 2014년부터 중국공산당과 연계된 재벌 사업가로부터 소송비용과 중국 여행, 고급 와인 같은 향응(饗應)을 받았다. 2017년 후원 사업가에게 “호주 정부가 당신의 휴대전화를 도청하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귀띔한 사실이 보도돼 국민적 분노를 샀고 2018년 1월 정계에서 퇴출됐다. 그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같은 사안에 친중(親中) 선택을 해 ‘상하이 샘(Shanghai Sam)’으로 불렸다.
◇“후원금, 광고, 일자리로 호주 공략”
호주 정부는 이후 외국인의 정치 후원금 기부를 제한하고, 외국 정부에 고용된 대리인이 내정에 간섭하면 형사처벌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클라이브 해밀턴 호주 찰스스터트대 교수는 “중국공산당은 호주를 미국에 ‘노(No)’라 말하는 국가로 만들려 한다. 호주의 상당수 국회의원, 특히 노동당 의원이 주로 중국의 정보 당국 공작원에 의해 영향을 받아온 증거가 드러났다. 그들은 중국인 커뮤니티와 유명 사업가와 손잡고 자금 출처를 숨기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대만, 필리핀에서도 개입 공세
중국의 정치 개입 공세는 동아시아에서도 뚜렷하다. 2019년 아키모토 쓰카사(秋元司) 일본 자민당 의원이 중국 국유기업 500.com으로부터 370만엔(약 3800만원)의 뇌물을 받아 징역 4년 판결을 받은 게 그 증거이다. 국토교통성 부대신(차관)을 지낸 유력 정치인을 친중파로 만들려던 중공의 노림수가 무산된 것이다.
최소 5000명 넘는 중공 간첩(間諜)이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대만은 더 심각하다. 최근 총통 선거에 국민당 후보로 나선 한궈위(韓國瑜) 가오슝 시장 당선을 목표로 중공이 수억원의 자금을 책정해 대만 기업인을 통해 집행한 사실이 올 1월 드러났다.
전직 중국 스파이로 2019년 호주에 망명한 왕리창(王立强)은 “한궈위를 돕기 위해 2018년 8월부터 SNS 계정 20만개를 사용해 차이잉원 총통과 민진당에 대한 허위 정보를 유포했다”고 폭로했다. 대만은 2020년부터 ‘외부 적대 세력’의 정치 개입을 차단하는 ‘반(反)침투법안’을 시행 중이지만, 중공에 매수된 정치인·군인들의 구속과 처벌이 잇따르고 있다.
필리핀에선 두테르테 대통령의 정적(政敵)인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이 2020년 9월 SNS(소셜미디어)를 이용한 중국의 필리핀 정치 개입을 공개 경고했다. 추후에 155개 페이스북 계정과 6개 인스타그램을 가동한 중국이 두테르테 대통령과 그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를 지원한 게 확인됐다. 친중파(親中派)인 사라 두테르테는 올해 5월 필리핀 선거에서 부통령이 됐다.
중국의 파상 공세에 각국은 방첩력 증강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실(ODNI)이 2021년 4월 ‘외국 악(惡)영향 센터(Foreign Malign Influence Center)’를 세운 게 대표적이다. 그해 10월 윌리엄 번스(Burns) 미국 CIA 국장은 성명을 내고 “‘중국임무센터(China Mission Center)’를 신설해 대(對)중국 정보 업무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세 갈래로 한국 정치 압박하는 중국
초점은 중국공산당이 한국 정치에는 얼마나, 어떻게 개입·간여(干與)하고 있는가이다. 취재 결과, 한국 정치 개입은 세 갈래로 이뤄진다. 첫번째는 중국 외교부와 주한중국대사관을 중심으로 한 공식 라인이다. 이들은 각종 발언의 수위와 타이밍을 긴밀하게 조율한다.
2021년 7월 15일 윤석열 국민의 힘 대통령 예비후보의 “(중국이)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려면 자국 국경 인근에 배치한 장거리 레이더를 먼저 철수해야 한다”며 ‘수평적 대중관계’ 주장에 대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는 국제 외교가의 관례를 깨고 중앙일간지 기고로 즉각 정면 반박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곧이어 싱하이밍을 두둔·옹호했다.
2020년 1월말 한국에 부임한 싱하이밍 대사는 주재국 신임장도 제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의 코로나19 일부 입국금지 조치에 불만을 표출한데 이어 “일부 한국 언론과 정치인들이 반중(反中) 정서를 선동하고 있다”는 막말을 했다. 외교관이 우호 증진이란 본분은 팽개치고 한국 정치인·언론인부터 꾸짖은 것이다.
올해 6월 29~30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패거리 만들기 행태에 휘말려 이용당하지 말라”고 했다. 이들은 중국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는 한국 정치인의 발언과 언론 보도는 ‘인정할 수 없다’는 억지를 펴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가 지난해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억압하는) 중국의 잔인함(cruelty)에 맞설 것”이라고 말하자, 중국 외교부는 “홍콩의 사무는 중국의 내정으로, 어떤 나라나 조직도 이러쿵 저러쿵 말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강력하고 광범위한 ‘영향력 공작’
하지만 외부로 드러나는 공개 외교 활동은 중국의 대(對)한국 공작에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더 강력하고 중요한 것은 두 번째 갈래인 ‘영향력 공작(Influence Operation)’이다. 중국공산당내 통일전선공작부와 선전부, 국가안전부 등이 여기에 참여한다.
전문가들은 “한반도는 중국이 설정한 제1도련선(島鏈線·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보르네오섬을 잇는 중국의 해상방어선) 안에 유일하게 들어 있는 만큼, 중국은 ‘영향력 공작’에서 한국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지용 계명대 교수는 월간조선 2022년 3월호 기고에서 중공의 수법을 이렇게 분석했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공산당의 실체(實體)를 철저히 감추고 순수 민간조직, 기업, 교육기관, 지방정부의 위장된 외곽조직을 앞세워 진행한다. 공작의 형태는 주로 ‘친선’ ‘우호교류’ ‘투자교류’ ‘연구교류지원’ 등이다. 상대국과 개인들의 경계심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는 “중국과 관련된 거의 모든 대외 관계는 중국공산당(중공)중앙이 조직적으로 동원한 ‘초한전(超限戰)’ 공작이라고 보면 된다. 초한전의 목적은 중국이 상대국에 대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사회적 분열을 조장해 자멸(自滅)의 길로 유도함으로써 종국적으로는 세계 패권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중공은 환구시보(環球時報), 글로벌타임스(Global Times·환구시보의 영문판) 같은 자매 관영매체까지 동원해 수시로 ‘외곽 때리기’를 한다. 후시진(胡錫進) 전 환구시보 편집인은 저질스런 막말로 상대국을 겁박하는 중공 당국의 선전 전위병(宣傳 前衛兵)이다.
한국내 공작 대상은 광범위하다. 대학교수, 연구원, 언론인, 공무원, 기업인은 물론 은퇴한 고위 정치인·고위 관료와 드라마·영화·게임 등 문화산업 종사자, 중국 관련 협회, 심지어 범죄 조직까지 망라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전문가의 지적이다. “중국측은 적절한 명분과 자리를 제시하며 자연스럽게 접근해 친분을 쌓는다. 대다수 한국인 당사자들은 자신의 위세(威勢)를 인정해주는 중국의 호의(好意)에 고마워할 뿐, 자신이 우리 국익을 훼손한다는 사실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1천만 ‘우마오당’...댓글 등 사이버 공세
세 번째 갈래는 사이버 공간이다. 2015년 미국으로 도피해 중공의 실상을 고발해온 기업인 궈원구이(郭文貴)는 “서방 국가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중공은 온라인 공작인 블루(Blue), 뇌물공작인 골드(Gold), 미인계 공작인 옐로우(Yellow) 등 ‘BGY 전략’을 쓴다”며 이렇게 말했다.
“온라인 공작은 SNS에서 댓글부대를 동원한 여론조작, 사이버 공격으로 개인정보 탈취와 해킹을 포함한다. 가짜 뉴스로 여론을 조작하기도 하는데, 해당 국가 대중을 세뇌(洗腦)시키고자 한다.”
‘우마오당(五毛黨)’이라는 댓글 부대는 아예 중공 당국의 지휘를 받고 있다. 댓글 한 건당 5마오(0.5위안·약100원)에서 지금은 7마오(약 140원)를 받는 우마오당 소속원은 베이징 시내 200만명을 포함해 1000만명이 넘는다. 1990~2000년대 태어난 국수주의(國粹主義)적 청년 조직인 샤오펀훙(小粉紅)도 한 축을 맡고 있다.
이들이 2020년 10월 방탄소년단(BTS)의 미국 밴플리트상 수상 소감을 트집 잡으며 비난 댓글을 퍼부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한국인 80% “중국 싫다”...‘내정 간섭’ 1위
사안에 따라 80만명의 한국내 조선족과 주한 중국인 유학생 일부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2월 본인을 조선족이라고 밝힌 한 사용자는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 “중국공산당이 조선족과 중국인 유학생 등을 포섭해 한국의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며 ‘차이나 게이트’를 폭로했다.
올 3월에는 청와대의 용산 이전 반대 여론을 중국이 조작·확산한다는 의심이 퍼지기도 했다. 거대 인력을 동원한 중공의 여론 조작이 이뤄지면, 한국인들의 정치적 판단과 선택이 오도(誤導)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주목되는 것은 중국의 한국 정치 개입을 인지하고 반감(反感)을 표출하는 한국인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2022년 6월 29일 공개한 대(對)중국 인식 조사를 보면, 한국인의 54%는 “한국 국내 정치에 대한 중국의 간여가 매우 심각(very serious)하다”고 답했다.
이는 조사 대상 19개국 중 이 항목에서 가장 높은 비율인 동시에 한국 정치에 개입·간여하며 때로는 속국(屬國) 다루듯 하는 중국의 오만방자한 행태에 점점 더 많은 한국인들이 진절머리 낸다는 방증이다.
◇“中에 저항할 한국의 힘 약화가 목표”
그 결과 우리나라 국민들의 2022년도 중국 비호감도(非好感度·unfavorable view)는 80%를 기록해 역사상 가장 높았다. 2015년(37%)과 견줘보면 비호감 비율은 7년 만에 배 넘게 상승했다.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19개국 중 유일하게 청년층의 중국 비호감도가 장년층을 앞질렀다.
문제는 중국의 대한(對韓) 영향력 공작이 중단되거나 감소할 가능성이 전무(全無)하다는 점이다. 클라이브 해밀턴 교수는 저서 <중국의 조용한 침공>에서 이렇게 밝혔다.
“인도·태평양에서 중공이 노리는 주요 국가는 호주와 일본, 한국이다. 중공은 한국의 학계와 정계, 언론계, 문화계 전반에 베이징 옹호론자와 유화론자들을 확보했다. 중공의 목표는 한국 기관들의 독립성을 훼손해 베이징에 저항할 한국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다.”(7~9쪽)
향후 중국의 공세가 한층 집요해지고, 한국인의 반중(反中) 감정도 더 악화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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