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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文 정권 공직 기강, 인체로 치면 뼈와 장기 다 망가진 수준”

[단독인터뷰] ‘월성 원전 감사’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2-07-19 10:00:01
 
  • ●27년 공직 생활, 文 정권에서만 두 번 좌천
    ●“이렇게 너저분한, 오만가지 감사 방해는 처음”
    ●“잘못했으면 벌 받아야지, 무슨 보복 감사야”
    ●尹 정권에도 성역 없이 같은 잣대 들이댈 것
    ●정치할 생각 전혀 없어

7월 7일 ‘신동아’와 만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전 정권은 권력에 맞서면 좌천시키더라”고 털어놨다. 유 사무총장은 25년 감사원 재직 기간 중 두 번 좌천당했다. 모두 전 정권 때 일이다. [지호영 기자]

“허허, 지금이 최대한으로 애쓴 건데. 웃는 표정 짓기 어렵네, 이거.”

7월 7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서 만난 유병호(55) 감사원 사무총장은 사진 촬영이 낯선 듯 멋쩍게 포즈를 취했다. 외양부터 강골(强骨)이다. 언뜻 외골수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격투가 느낌도 난다. 희끗한 앞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짧은 헤어스타일, 짙은 꺼풀에 싸인 눈, 두툼한 코, 꼬리가 아래로 향한 앙다문 입이 인상에 완고함을 더한다. 대개 사진 찍을 때 미소를 짓건만, 이 사람에겐 어려운 일일 법도 하다 싶다.

키는 171㎝로 크진 않지만 운동으로 다진 체격이 다부지다. 대학(서울대 정치학과) 시절 검도(劍道)를 시작해 지금까지 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까진 7년간 개인 코치를 구해 종합격투기를 배웠다. 스쿠버다이빙 자격증도 땄다. 하강 조류에 휩쓸려 죽을 뻔 했단다. 하는 운동마저 ‘전투적’이다. “가만히 있는 운동을 못 한다”며 호방하게 말한다.

“등산, 헬스 좋아한다. 스쾃을 300㎏ 친다. 감사원에서 300㎏ 넘기는 사람이 딱 3명인데, 그중 1명이다. 몸무게가 85㎏이니까 3.5배 정도 하는 거지. 아직 코로나19에 안 걸렸다, 코로나19도 날 싫어하나 보다. 피하고 싶은 체질인지.”

1994년 제3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1995년 공직에 입문한 이후 첫 2년을 제외하곤 줄곧 감사원에서만 근무했다. 국방감사단장, 공공기관감사국장, 심의실장, 감사연구원장 등을 거쳤다. 외양으로 보든, 성격으로 보든, 감사(監査) 업무가 몸에 맞는 옷인 듯하다.



“1997년 7월 정보통신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있다가 감사원으로 넘어왔다. 이렇게 잘 맞을 줄 몰랐다. 내 스타일과 특성에 딱 맞고 재미있더라.”

25년의 감사원 재직 기간 중 유 사무총장은 두 번 좌천당했다. 모두 전 정부(문재인 정부) 때 일이다. 2019년 지방행정감사 1국장 시절 ‘서울교통공사 고용 세습 비리’를 밝혀 서울교통공사 사장 해임 요구와 함께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에게 주의 처분을 내렸다. 해당 사안은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정규직 전환에 대한 사전 정보를 이용해 친인척을 위탁업체에 부당 취업시킨 사건이다. 같은 해 12월 비감사 부서인 심의실장으로 보내졌다.

2020년 4월 20일 최재형 당시 감사원장에 의해 공공기관감사국장에 임명돼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이하 월성 원전) 감사를 맡았다. 사건은 두 차례 법정 기한을 넘기면서도 감사위원회의에서 ‘보류’ 처분을 받는 등 난항을 겪는 상황이었다. 전임 국장에 대해 ‘사건을 뭉갠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10월 15일 국정감사에서 최재형 감사원장은 “(원장) 재임 동안 이렇게 감사 저항이 심한 감사는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업무를 이어받은 유 사무총장은 전면 재감사를 단행해 같은 해 10월 20일 “정부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저평가했다”는 감사 결과를 내놨다. 감사 과정에서 산업부 공무원들이 444개의 자료를 삭제하는 등 증거인멸 정황이 드러났다. 유 사무총장은 산업부 담당 국장 등에 대해 중징계 처분을 요구하고, 포렌식으로 산업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자료를 복구해 검찰로도 이첩했다. 올해 1월 다시 비감사 부서인 감사연구원장으로 인사 조치됐다. 정권의 ‘탈원전’ 정책 기조에 반(反)한 것에 대한 인사 보복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당시 감사원은 “본인이 원해서 보내진 것”이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3월 정권이 바뀐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 전문위원에 임명됐다가 6월 15일 감사원 2인자 사무총장으로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감사원은 “월성1호기 감사 때 원칙주의자로서 강직한 면모를 보여줬다”고 발표했다.

유 사무총장은 “자리는 중요하지 않다. 열심히 일하면 된다”면서도 “전 정권에선 여권을 건드리면 좌천되더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인터뷰하는 동안 ‘원리·원칙’을 수없이 강조했다. ‘보복 감사’ 우려에 대해선 “정치적 이해관계가 반영된 시각에 불과하다. 잘못을 밝히는 게 감사원 본연의 임무”라고 선을 그었다. “현 정권에도 성역을 두지 않겠다”며 눈을 번뜩였다.

예전엔 사람들이 양심은 있었는데…

2020년 10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다. 이날 최 원장은 월성 원전 감사에 대해 “이렇게 감사 저항이 심한 감사는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유병호 사무총장은 당시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 해당 감사를 지휘했다. [동아 DB]

월성 원전 감사를 지휘했다. 감사 방해가 심했나.

“감사원 재직 이래 이토록 너저분한, 오만가지 감사 방해는 처음이었다. 감사원 내외로 엄청난 압력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해당 사건 관련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감사 방해엔 패턴이 있다. 먼저 사소한 절차를 문제 삼는다. 다음엔 감사 내용으로 시비를 건다. 이것도 안 되면 여러 가지 정무적 사유를 들어 막는다. 마지막엔 감사팀 자체를 공격한다. 언론이나 특정 세력을 이용하기도 한다.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실무진을 괴롭히는 일이 유난히 많았다. 그나마 외압은 최재형 당시 원장께서 막아주셔서 덜 힘들었다.”

감사 당시 자료를 인멸한 산업부 공무원이 “감사 정보를 미리 들은 적 없다. 신내림을 받은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을 거다.”

‘진짜 몸통’이 있을 거라는 뜻인가. 누구라고 보나.

“생각이야 있지만 말할 순 없지.”

전임 국장이 사건을 뭉갰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정말 뭉갰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음에 들어가 볼 수도 없고. 조사 기본기가 부족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다시는 없어야 할 부실 감사 맞다. 내가 한 감사(2차 감사)는 ‘타이거(TIGER)’들을 데리고 진짜 제대로 했다.”

TIGER는 유 사무총장의 조사 훈련 기법이자 이를 섭렵한 감사관을 의미한다. T(Training·훈련), I(Intuition·직관), G(loGic·논리), E(Evidence·증거), R(Reasoning·추리)을 의미한다. 유 사무총장은 “이 5가지 능력을 익히면 어떤 사건이든 조사·지휘할 수 있는 ‘호랑이’가 된다”고 설명했다. “월성 원전 감사엔 나와 오랜 기간 함께한 6명의 실무진 역할이 컸다”며 “감사에 착수한 당시 그들에게 이번 감사엔 엄청난 감사 저항이 닥쳐올 테니 모두가 목을 내놓고 임무에 임하자고 말했다. 그처럼 뛰어난 TIGER들조차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고 회상했다.

결국 좌천당했다.

“지금까지 숱한 비리를 조사하며 수없이 권력과 맞섰다. 곤욕이 없었겠나. 날 방해하려고 듦은 물론이고 징계하려는 시도도 많았다. 정말 좌천시킨 건 처음이다. 예전엔 그래도 사람들이 낭만과 양심이 있었다. 감사 못 하게 찍어 누르면서도 얼굴 마주치면 미안해했다. ‘나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할 수 없이 이러는 거야’라는 마음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참….”

감사연구원장으로 임명됐을 때 감사원은 ‘본인이 희망했다’면서 좌천을 부인했는데.

“먼저 박원순 전 서울시장 건드려서 심의실장으로 보내진 건 확실히 좌천 맞다. 감사연구원장은 ‘희망을 당했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하다. 결과적으론 둘 다 좌천이지 뭐.”

그간 언론과 해당 사안에 대해 인터뷰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나.

“별다른 이유는 없다. 직무상 보안 유지가 필요한지라 자연스럽게 그리 됐다. 앞으로도 많이 하지 않으려 한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일하고 싶다. 지금 인터뷰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때가 됐다고 생각해서다. 감사원 동료와 가족, 국민께서도 아셔야 할 때.”

혹시 정권이 바뀌어서….

“아니다. 대선 전부터 준비했다. 정권이 안 바뀌었다면 사직서 내려고 했으니까. 아마 7월 말쯤 내지 않았을까 싶다. 또 좌천하거나 해서 나를 정리하려고 들었을 테니 물러나는 게 당연하다. 대신 나가면서 브리핑으로 그간의 실상을 알릴 생각이었지. 기자회견 준비까지 다 해뒀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거야”

유 사무총장에겐 ‘원리·원칙주의자’라거나 ‘강직하다’는 평가가 따른다. 한 감사원 동료는 “유 사무총장은 철저한 원칙주의자다. 주변의 압력이나 정세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부터 유 사무총장과 알고 지낸 한 동문은 “병호는 예전부터 강단이 있고 소신이 뚜렷했다. 자기 직분에 충실할 사람이다”라고 밝혔다.

원칙주의자라거나 강직하다는 말이 많더라.

“그냥 ‘룰’대로 사는 거다. 참 희한하다. 법, 원칙, 상식, 증거가 표준이 돼야 하는 거 아닌가. 좋게 봐주니 나야 감사하지만 이 말을 거꾸로 뒤집으면 정상적으로 공직 생활을 하는 사람이 그만큼 적다는 뜻인데. 이 점에서 공직자로서 ‘강직하다’는 말이 자랑스럽진 않다. 나보다 더 강직하고, 원칙 잘 지키는 사람 많다.”

원래 성격이 그런가.

“글쎄. 농부의 아들이라 그런가. 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났다. 위로 누나가 셋 있고 밑에 남동생 둘 있다. 장남이지. 아버지는 산 밑에서 농사를 지으셨는데, 무슨 재산이 있었겠나. 누나 셋이 중학교만 졸업하고 공장 가서 번 돈으로 아들 셋이 공부했다. 가난했지만 그래도 농사짓는 아버지를 보며 한 가지는 배웠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 그래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몸에 밴 걸 수도 있다.”

유 사무총장의 ‘영전’에 야당의 시선은 곱지 않다. 6월 14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월성 원전 감사를 치하하는 인사”라며 “감사원 운영을 관장하는 자리에 정치적 감사를 주도한 편파적 인물을 앉히는 것이 감사원의 독립성을 위한 판단인가”라고 지적했다.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것에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있는데.

“생각이 다르지만 존중한다. 생각을 바꾸라고 할 수도 없지 않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게 공동체다. 야당의 말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원리·원칙에 따라 주어진 임무를 철저히 하면 논란은 불식되리라 본다.”

주어진 임무를 철저히 한다?

“할 일이 산더미다. 근 20일간 하루 3시간만 자면서 버텼다. 청사진이 다 완성 돼 간다. 그간 부서지고, 무너지고, 해체된 공직 질서를 재건하기 위함이다. 감사원 내외부부터 정비해야지.”

그간이라 하면….

“전 정권 5년을 말하는 거다.”

전 정권 동안 공직사회 청렴·기강 등 가치가 무너졌다고 보나.

“무너진 수준이 아니다. 인체로 치면 주요 뼈대하고 장기가 죄다 망가진 수준이다. 이것부터 재건해야 일을 할 수 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새로운 토대를 쌓으려 한다.”

헌법이 부여한 임무에 충실할 뿐

7월 13일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윤석열정권법치농단저지대책단’ 단장 및 소속 의원들이 서울 종로구 감사원을 항의 방문했다. 이들은 감사원의 전 정권 감사에 대해 ‘표적 감사’라는 입장을 밝혔다. [뉴스1]

유 사무총장 부임 뒤 감사원은 전 정부에 대한 전방위 조사에 나서고 있다. 6월 17일 1년 9개월 만에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입장을 번복한 해양경찰청과 국방부에 대한 감사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구니 투표’로 논란을 빚은 선거관리위원회, 한상혁 위원장이 내년 8월까지 임기를 채우겠다고 한 방송통신위원회도 감사 대상이다. 4대강 보 해체 및 상시 개방, 주택 통계 왜곡 논란 등 전 정부 관련 사업·의혹에 대한 감사도 진행되고 있거나 예정됐다.

민주당은 “정치 보복”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7월 13일 민주당 ‘윤석열정권법치농단저지대책단’은 서울 종로구 감사원을 방문해 “유병호 사무총장 취임 이후 전방위적 ‘표적 감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항의했다. 박범계 단장은 감사원 기조실장과 면담하면서 “유 사무총장이 복귀한 뒤 ‘사화’ 수준의 무차별적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 관련 감사를 ‘보복 수사’라고 비판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걸 고칠 수야 있나. 해야 하는 일을 할 뿐이다. 예컨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감사는 내가 전격 지시했는데, 그런 거 감사 안 하면 대체 뭐 하라는 건가.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일이다. 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존재 이유가 걸려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왜 그랬는지 사실관계를 엄밀히 밝혀야 하지 않나. 감사원은 원리·원칙에 따라 헌법이 부여한 기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보복은 아니다?

“잘못한 게 있으면 벌주는 게 왜 보복인가. 경찰이 도둑을 잡는 것과 같다. 안 하는 게 직무 유기다. 마땅히 할 일을 보복으로 생각한다면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의 중요 이슈에 대해 감사원은 해야 할 일, 잘하는 일을 하는 거다. 이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정치는 아무나 하나

6월 15일 취임식에서 유 사무총장은 “새 정부의 잘못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로 엄정하게 대처할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현 정권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겠다고 했다.

“당연하다. 감사원의 존재 이유 아닌가. 늘 하던 대로, 어떠한 성역도 없을 것이다. 특히 태만한 공직자와 부작위 및 소극 행정 유발 공직자에 대해서는 엄벌할 생각이다. 해임, 파면까지 하겠다.”

혹시 정치할 생각이 있나.

“3월에 인수위 가서 일하며 정치인을 많이 봤다.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듯싶더라. 아주 역동적이고, 고된 일처럼 보였다. 개중에는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이 엿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업무 노하우나 지혜를 많이 배웠는데, 난 그걸 다 실천할 자신이 없다.”

상관이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정계에 입문했다.

“그분이야 그분의 삶이 있는 거고. 그분의 선택이나 삶을 존중한다. 나는 내 삶이 있다. 나대로 내 삶을 꾸려야지 않을까. 퇴직 후엔 가족과 함께 설악산, 동해 등 놀러 다니고 싶다. 여러 레포츠를 즐기고도 싶고. 뭔가 가꾸거나 키우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사실 꿈이 ‘자연과 함께하는 한국 최고의 한량’이다.”



신동아 2022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