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입력 2022-07-15 03:00업데이트 2022-07-15 03:18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코카서스 산자락 아르메니아공화국의 알센 박사가 우리 연구실에 왔다. 매년 방학이면 연구실을 방문해서 함께 연구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온 것이다. 희끗희끗 흰머리에, 둥글게 나온 배까지, 더 교수다워져서 나타났다.알센 박사는 아르메니아공화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서울에서 나와 함께 본격적으로 마이크로파 연구를 시작했다. 2004년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와 학교 후문 쪽 가파른 산동네의 작은 연립주택에서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7년간의 서울 유학 생활 끝에 교수가 되어 본국으로 돌아갔다. 초등학생이었던 알센 박사의 큰딸은 지금은 대학원생이 되어 알센 박사 밑에서 마이크로파를 공부하는 중이다.
알센 박사를 보면 일본에서 연구했던 나의 30대 시절이 떠오른다. 나 역시 1992년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일본의 한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연구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지도교수의 배려로 7년 동안 오롯이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이바라키현 쓰쿠바시 논밭 옆의 관사에서 두 딸을 키웠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두 딸은 국제적 감각을 가진 아이로 성장했다. 나에게 있어 이 시기는 색다른 토양에서 새로운 학문의 길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학문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발휘할 수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국가와 국경을 떠나 과학이라는 또 다른 세계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연구소를 거쳐 간 젊은 과학자들은 양자역학이라는 최신 이론을 자국으로 이식하는 역할을 했다. 미국을 비롯해 구소련에서도 많은 젊은 학자들이 연구소를 다녀갔다. 일본에서도 몇 사람이 닐스 보어 연구소를 찾았는데, 그중 한 사람이었던 니시나 요시오는 고국으로 돌아가 일본의 지도적인 물리학자가 되었다.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닐스 보어 연구소를 거쳐 갔고, 그중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도 많다. 만남의 화학작용은 때때로 이렇듯 눈부신 성과로 이어진다.
얼마 전 한국계 최초로 미국 프린스턴대의 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수상했다. 물리학에서 출발해 수학자로 발전한 그의 삶의 여정이 흥미로웠다. 대학 4학년 때까지 수학에 관심이 없다가, 서울대 초빙석좌교수로 왔던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대수기하학 강의를 통해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한다. 직관과 경험철학을 기본으로 하는 물리학자와 엄밀한 수학자의 만남. 그의 삶의 방향을 바꾼 히로나카 박사와의 운명적 만남. 삶을 이끌어주는 스승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자유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격 후 5시간 31분… 아베 사망을 맞이한 일본인들의 자세 (0) | 2022.07.17 |
---|---|
행안부 '경찰국' 8월 2일 출범… 치안감 국장에 3과 16명 (0) | 2022.07.15 |
美의회 인권위 의장 “강제 북송 사진에 경악… 北과 文정권의 공모” (0) | 2022.07.13 |
"다정한 사람이었다"…아베 마지막 길 지킨 아키에 여사 (0) | 2022.07.13 |
지지율 추락에 尹 "해야죠" 현실화? 여당 '文정부 5년' 겨눴다 (0) | 2022.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