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2.07.12 06:00
업데이트 2022.07.12 10:54
2021년 11월 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군사 및 방위산업 대표자 회의에서 “우리 군은 2000대가 넘는 드론으로 무장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을 포함한 첨단 기술의 적용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개시 불과 4개월 전, 세계 최고 수준의 항공기술을 보유한 나라의 대통령 발언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 드론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었다.
러시아 병사가 정찰용 드론인 자라를 날리려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난 러시아의 드론 운용은 기대 이하였다. 오히려 ‘찬양 노래’까지 등장한 우크라이나 중형(中形) 무장드론 TB-2(Bayraktar, 2020년 튀르키예에서 도입)가 주목을 받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드론 운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스터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드론이라는 무기체계가 러시아에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살펴보아야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세계적 발전 추세를 뒤늦게 자각
러시아가 드론 무기체계에서 뒤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계기는 2008년의 조지아 전쟁이었다. 전쟁은 개전 5일 만에 러시아의 일방적인 승리로 종결됐다. 하지만, 조지아가 운용하던 이스라엘 산(産) 중형(中形) 정찰드론 헤르메스(Hermes) 450의 높은 성능은 러시아에 충격을 주었다.
엘레론-3. 크기 0.83x0.56m, 작전반경 25㎞, 비행시간 1시간 30분. enics
당시 러시아군은 엘레론(Eleron)과 같은 소형 정찰드론만 극소수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발전 추세로 보면, 당시 러시아의 드론은 미국에 비해 20년 이상 격차가 발생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중형(中形) 다목적 드론의 대명사가 된 미국의 프레데터(Predator)가 임무를 개시한 시점이 1995년이었다. 대형(大形) 장기 체공 정찰드론 글로벌 호크(Global Hawk)도 1998년부터 운용됐다.
러시아가 드론 개발이 이렇게 뒤쳐진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경제적인 문제이다. 1980년~2000년대 초는 드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였다. 공교롭게도 러시아 경제가 가장 어려웠던 기간과 정확하게 겹친다. 국방 연구개발 인프라가 상당 부분 와해됐고, 기존 무기체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둘째, 무기체계의 질적 우위 보다 양적 우위를 중요시하는 군사적 전통이다. 서방 국가들은 질적 우위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첨단 기술을 활용한 자동화ㆍ무인화에 적극적이다. 반면, 공산권 국가들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첨단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무기체계의 단가를 낮춰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했다. 따라서 자동화ㆍ무인화에도 소극적이었다. 이러한 경향이 드론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연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서둘렀으나, 서방 국가들의 제재로 지연
2010년대 초부터, 러시아도 뒤늦게 드론 발전에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스라엘 중형(中形) 정찰드론 서처(Searcher) MK Ⅱ 등 3종을 도입하여 긴급하게 필요한 전투력을 보강하면서, 자국의 드론 개발에 참고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오를란-10. 크기 2.0x3.1m, 작전반경 140㎞, 비행지속 16시간. 위키피디아
그리고 중ㆍ대형 드론 및 스텔스 드론까지 모든 유형의 드론을 동시 병행적으로 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드론 개발이 3~4년 사이에 성과로 이어지기는 어려웠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분쟁이 시작되었을 때 러시아군이 투입할 수 있었던 드론은 이스라엘에서 도입한 서처(Searcher) MK Ⅱ와 자체 개발한 소형정찰드론 오를란(Orlan)-10 등이 전부였다.
2018년이 돼서야, 러시아군은 처음으로 드론에 무장을 장착하여 시험 발사를 할 수 있었다. 이 때 활용된 플랫폼이 포르포스트(Forpost)-R 중형(中形) 정찰드론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서처(Searcher)를 면허 생산한 것이었기 때문에 진정한 러시아 국산 드론이라고 볼 수 없다. 미국이 프레데터(Predator)에 무장을 장착한 시점이 2001년이었음을 고려하면 러시아의 무장드론 개발은 17년이나 늦었다.
2014년 크름 반도 병합을 계기로 서방 국가들이 부과한 경제 제재가 러시아 드론 발전의 장애요인으로 추가됐다. 드론 개발과 생산에 필요한 엔진, 주요부품 등을 원활하게 수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철저하게 국산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강요된 국산화는 중ㆍ장기적으로 러시아의 드론 발전에 강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개발은 마무리 단계라지만, 신뢰성과 수량 확보 지연
현재 러시아는 중ㆍ대형 드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최초의 국산 중형(中形) 드론 오리온(Orion)이 대표적이다. 일명, ‘러시아형 프레데터(Predator)’라고 볼 수 있다. 2022년 3월 4일, 러시아 국방부에 의해 우크라이나 지상표적을 타격하는 오리온의 영상이 공개됐다. 우크라이나가 전쟁 초기부터 운용했던 TB-2, 미군이 6월부터 지원한다고 발표한 그레이 이글’(Gray Eagle, 프레데터의 지상군 버전)과 비교될 수 있다. 미군이 프레데터를 개량하여 리퍼(Reaper)를 만든 것처럼 러시아도 오리온(Orion)의 지속적인 개량을 추진하고 있다.
알티우스. 크기 11.6x28.5m, 작전반경 1만㎞, 비행지속 48시간. 러시아 국방부
대형(大形) 드론으로 알티우스(Altius)가 개발되고 있다. 일명, ‘러시아형 글로벌 호크(Global Hawk)’라고 볼 수 있다. 장기 체공 정찰드론이 주 임무이지만, 무장 탑재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2021년 2월, 러시아군은 ‘2023년까지 생산하여 배치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에 운용되고 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을 고려하면, 생산과 배치가 연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군도 스텔스 드론을 개발하고 있다. 오호트니크(Okhotnik)가 대표적이다. 미군의 스텔스 드론이 소형 전투기(XQ-58A Valkyrie, 이륙 중량 약 2.7t)를 지향하고 있다면, 러시아는 폭격기(이륙 중량 약 20t)를 지향하고 있다. 2019년, 러시아는 오호트니크와 자국산 스텔스 전투기인 Su-57이 같이 비행하는 모습을 공개한 바 있다. 하지만, 2020년대 중반까지 시험비행이 계획되어 있는 것을 고려하면, 개발완료까지는 상당 기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평가된다.
러시아도 미군의 스위치 블레이드(Switchblade, 4월부터 우크라이나에 지원)와 비슷한 유형의 자폭드론을 개발하고 있다. 2019년, 모형이 공개된 랜셋(Lancet)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생산ㆍ배치되거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운용되고 있다는 기록이 없다. 미군의 자폭드론 배치가 2011년에 시작됐음을 고려하면, 러시아가 이 분야에서도 약 5~10년 정도 늦은 것으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시점까지 신뢰도가 검증된 충분한 수량의 드론을 확보할 수 없었다. 특히, 중형(中形) 무장드론의 개발 착수가 늦었고, 개발 과정의 지연이 가장 아쉬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 드론 발전의 ‘잃어버린 20년’이다.
게임체인저가 아니라 보편적인 무기체계
이제 드론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아니라, ‘보편적인 무기체계’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과거 미국ㆍ이스라엘 등 일부 군사 선진국들이 드론을 독점하면서 운용 효과가 극대화되던 시대는 끝났다. 중ㆍ소규모의 국가뿐만 아니라, 심지어 테러리스트 조직도 드론을 운용하고 있다.
오호트니크. 크기 19x14m, 최대 이륙중량 20t .UAC
이제 드론이 없거나 관련 능력이 부족한 군대는 현대전을 수행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작전수행 과정에서 일정 비율의 드론 손실도 감내해야 한다. 결국 전체적인 작전수행 개념 속에서 다른 무기체계와 얼마나 상승효과(Synergy Effect)를 발휘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활용범위도 지속 확대되고 있다. 군용 드론은 정찰용과 공격용으로 구분된다. 공격용은 비행체에 폭탄이나 미사일을 장착하는 무장형과 비행체가 목표지역 상공을 선회하다가 표적으로 돌진하는 자폭형이 있다. 드론은 정찰용(1970년대 말~)으로 시작하여, 무장형 공격드론(2000년대~)을 거쳐, 자폭형 공격드론(2010년대~)으로 진화해 왔다. 최근에는 통신 중계, 전자전 등으로 용도가 더욱 확산되었으며, 하나의 플랫폼으로 다양한 임무를 병행하는 다목적 드론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군의 드론 발전 과정도 아쉬운 점이 있다. 이스라엘 산(産) 서처(Searcher)를 도입한 시기가 1999년, 국내 기술로 개발한 송골매를 배치한 시점이 2002년이었다. 당시 그와 같은 수준의 드론을 개발ㆍ운용했던 국가는 이스라엘, 미국 등 10개국 미만이었다. 하지만, 후속 신형 드론을 개발하는데 그로부터 20년 이상이 걸렸고, 아직까지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엔진, 주요 부품, 특수 소재 등 드론 분야의 핵심 기술을 적기에 축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술은 국방혁신의 촉매제다. 따라서 미래에 어떤 기술이 필요한 지를 판단하고, 결정하여, 적기에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미래에 대한 통찰을 기초로 첨단 기술 확보의 적시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인재육성, 제도개선, 조직편성 등의 분야에서 혁신이 필요하다.
‘국방혁신 4.0’의 핵심 분야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유ㆍ무인 복합 전투체계다. 드론은 무인체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군의 드론 발전과정이 한국군의 혁신에 유용한 교훈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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