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 노동자 숙소로 사용되고 있는 비닐 하우스. ⓒ 이희훈
"외국인 근로자 2만 6000여 명 8월까지 들어온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4일 게시한 보도자료 하나. 부처 보도자료 제목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느낌표(!)가 붙어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직후 크게 줄었던 외국인 노동자 입국인 수를 대폭 늘려 농어촌과 제조업 작업장의 인력난을 해소하겠다는 내용의 홍보자료였다.
사장님 농장을 지키는 썸낭, 체류지가 이상했다
▲ 지난해 6월 입국했지만, 고용노동부가 내린 고시 지침과 달리 비닐하우스 내부에 있는 조립식패널 기숙사에 살고 있는 외국인노동자 썸낭(가명)씨. ⓒ 이희훈
▲ 캄보디아 출신 외국인노동자 썸낭씨(가명)는 일 터 바로 옆 비닐하우 내부에 지어진 조립식 패널집에서 살고 있다. 썸낭씨는 고용계약을 맺을 당시 거주지를 고용주의 집주소로 한 뒤 취업한 후에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지낸다. ⓒ 이희훈
"계약서? 없어요. 사장님 괜찮아요. 좋은 사람. 비닐하우스 7동. 새벽 6시부터 오후 3시. 월급 180만 원. 괜찮아요. 딸이랑 아내 있어요. 프놈펜 가서 맥주집 하고 싶어요."
"괜찮아요" 하는 말끝에 군용 헬기 소음이 머리 머리 위로 '우다다다' 굉음을 내며 흩어졌다. 지난 21일 경기도 포천의 한 채소 농장에서 만난 캄보디아 국적의 썸낭(가명, 34)씨는 지난해 6월 입국한 이주노동자다. 경기도 포천시는 지난해 2월 경기도 외국인정책과 내부자료 기준 이천시에 이어 두 번째로 불법 기숙사가 많은 곳으로 집계된 지역이다.
썸낭씨는 농장주가 운영하는 자신의 일터 농장 바로 옆, 비닐하우스에 산다. 검은 차양 그물로 둘러친 하우스 안, 조립식 컨테이너로 만든 거처다. 함께 현장을 방문한 김달성 목사(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에 따르면 전형적인 이주노동자 기숙사보다 사정이 '약간' 괜찮은 편이다.
하우스 4면에 창문이 없었다. 환기를 위한 숨통은 출구뿐. 집 밖에 간이화장실이 있었고, 집안에는 LPG 가스통과 공구가 널브러져 있었다.
'체류지 : 경기도 포천시 ▲▲면 ▲▲로 ▲동 ▲▲▲호'
그의 ID 카드에 적힌 '체류지'는 지금 사는 곳과 전혀 다른 곳이었다. 김달성 목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해당 주소는 농장주가 살고 있는 주택이었다. 2018년 기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5만 원 하는 연립 빌라. 그곳에 썸낭은 살지 않는다. 노동부 지침 위반이다.
노동부는 지난해 1월부터 '외국인 근로자 주거 환경 개정지침'을 고시하며 해당 시점부터 입국한 이주노동자의 경우 비닐하우스 등 가설 건축물에 거주하게 할 경우 고용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지침을 내렸었다. 지난 2020년 12월, 캄보디아 국적의 이주노동자 고 속헹씨(31)가 난방 장치가 꺼진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이후 마련된 정책이다.
그러나 썸낭의 사례처럼, 고시 이후에도 편법으로 기본권에 못 미치는 주거를 이주노동자에게 제공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김 목사는 최근에도 지난 3월 입국해 비닐하우스를 주거 시설로 배정 받은 두 네팔 여성 노동자를 만났다고 한다. 두 노동자는 'ID카드와 근로계약서를 모두 농장주가 수거해갔다'고 전했다고 한다.
원룸이나 아파트를 제공하는 경우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괜찮은 숙소라 해도, 기숙사비를 많이 뗀다. 숙식비는 최대 (통상임금의) 20%까지 뗄 수 있다. 현 최저시급을 따지면 28만8000원이 상한이다. 그런데 한 공간에 6명 정도 살게 하면서 그 이상의 숙소비를 받는 거다. 각 30만 원씩만 해도 대략 180여만 원이다."
이주민 인권단체인 지구인의정류장 소속 최종만 활동가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과도한 숙소비' 상황을 전하며 "농촌의 경우엔 토지 대장에도 없는 무허가 폐가를 이용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고도 했다. 그는 "열악한 정도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가스도 안 들어오고 전기 판넬로 난방을 대신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20만원이면 사는" 간이화장실도 없다... 6명이서 쓰는 대야 화장실
▲ 비닐하우스 내부에는 조립식 패널로 외국인 노동자 숙소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하우스 내부는 청결 상태가 불량하고 임시건물을 제외한 장소는 주변환경 온도에 영향을 받는다. ⓒ 이희훈
▲ 비닐하우스 내부에는 조립식 패널로 만든 외국인 노동자 숙소가 있다. 하우스 내부는 청결 상태가 불량하고 임시 건물을 제외한 장소는 주변 온도에 영향을 받는다. ⓒ 이희훈
▲ 외국인 노동자 숙소로 사용되고 있는 비닐 하우스. ⓒ 이희훈
▲ 불법으로 세워진 외국인 노동자 비닐하우스 숙소 바로 옆에는 농사에 사용되는 퇴비가 쌓여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 ⓒ 이희훈
'가슴 속까지 시원한 후루룩 냉면'
때가 잔뜩 낀 조립식 패널 벽에 냉면 가게 스티커가 열에 녹아 말린 채 붙어 있었다. 태국과 캄보디아 등 이주노동자 남녀 각각 3명씩, 총 6명이 거주하고 있는 두 동의 비닐하우스.
21일 오후 3시, 낮 최고기온 32℃의 푹푹 찌는 날씨 속 비닐하우스는 들어가자마자 온몸이 끈적였다. 햇볕 쨍한 날씨였지만, 실내는 어둑어둑했다. 천장엔 비닐하우스를 뒤덮은 검정 차양막이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불투명한 빛이 한줄기씩 새어 들어왔다.
집 안에서는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악취가 났다. '무슨 냄새냐'고 물으니 김달성 목사는 집 바로 옆 2m남짓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봉분 하나 크기의 퇴비 무덤이었다. 돼지와 닭 분뇨로 쌓은 거름들. 냄새가 집 안으로 새어 들어왔다. 패널 외벽에 걸어놓은 빨래 줄엔 노동자들의 옷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침실로 쓰는 방 바로 옆에는 이주노동자들의 공동 세면장과 부엌이 딸려 있었다. 시멘트 바닥과 패널 벽을 잇는 모서리 여기저기 곰팡이가 펴 있었고, 화구 두 개짜리 가스레인지 뒷벽엔 기름때가 잔뜩 붙어있었다. 김 목사가 "돈 20만 원이면 산다"고 했던 간이화장실은 없었다. 빨간 대야에 널빤지를 덮어 놓은 화장실을 남녀 6명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노동자들이 직접 인분을 퍼낸다고 했다.
▲ 비닐하우스 내부에는 조립식 패널로 만든 외국인 노동자 숙소가 있다. 하우스 내부는 청결 상태가 불량하고 임시 건물을 제외한 장소는 주변 온도에 영향을 받는다. ⓒ 이희훈
▲ . ⓒ 이희훈
▲ 비닐하우스 내부에는 조립식 패널로 만든 외국인 노동자 숙소가 있다. 하우스 내부는 청결 상태가 불량하고 임시 건물을 제외한 장소는 주변 온도에 영향을 받는다. ⓒ 이희훈
김 목사는 "이런 곳이 한 달에 25만 원이다. 농지법, 건축법, 근로기준법 위반의 현장이다"라고 말했다. 도랑과 집을 잇는 다리는 발만 디뎌도 흔들흔들한 폭 40cm남짓 철판. 다리를 건너온 김 목사는 비닐하우스 기숙사 인근 다른 비닐하우스를 가리키며 죽음을 이야기했다. "20대 캄보디아 노동자가 작년 6월에 죽었다. 돌연사라고 했는데 죽고 나선 그 숙소를 없앴다"고 했다.
이곳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은 지난해 노동부 고시 이전에 입국한 이들로, '고용 허가 불가' 규정에 포함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다. 기존 노동자가 원한다면 사업장 변경을 허용한다는 예외 규정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이동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목사는 "'어딜 가든 똑같다'는 거다. 굳이 옮겨 봤자라는 말"이라면서 "고시 이후 변화가 있긴 하지만, 지자체에선 감시 인력이 없다는 핑계로 (이런 열악한 상황을) 묵인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입국한 네팔 노동자들의 불법 비닐하우스 기숙사를 방문하는 길, 오이 재배 비닐하우스에서 농약을 치고 있던 태국 노동자 쏨차이(가명, 40)를 만났다. 분무기처럼 농약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마스크 대신 면수건 하나만 두른 모습이었다. 다른 대화를 이어가다가도 기숙사 이야기를 물으면 "몰라요, 사장님하고 이야기"라며 물러섰다.
농장주 "지원은 무슨... 뚜껑 열릴 지경"
▲ 비닐하우스 내부에는 조립식 패널로 만든 외국인 노동자 숙소가 있다. 하우스 내부는 청결 상태가 불량하고 임시 건물을 제외한 장소는 주변 온도에 영향을 받는다. ⓒ 이희훈
▲ 비닐하우스 내부에는 조립식 패널로 만든 외국인 노동자 숙소가 있다. 하우스 내부는 청결 상태가 불량하고 임시 건물을 제외한 장소는 주변 온도에 영향을 받는다. ⓒ 이희훈
이주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장님'을 현장에서 만났다.
"뚜껑 열릴 지경이다."
기숙사 문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죽을 지경"이라고 답했다. 농장주만 탓할 게 아니라 국가 지원을 통한 현장 개선이 필요하다는 호소였다. 그는 담배를 물며 "나라에서 지원을 해주면 몰라, 지원도 해줘봤자 찔끔이다. 너무 어렵다"고 한탄했다.
귀농해 과일을 재배하고 있다는 한 농장주는 기자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숙소 상태를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모든 부대비용은 대부분 사용자 부담이라, 일정 수준의 기숙사비 징수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주거권을 위해 활동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정부 지원과 책임을 강조한다. 김 목사는 "대부분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이들은 영세한 사업주들이다"라면서 "(기숙사 지침을) 강력 집행하되, 정부 차원의 (사업주에 대한) 재정적·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공공기숙사 모델'도 함께 언급했다.
최종만 활동가는 "노인정이나 읍면 사무소 등 농촌에 방치된 건물들이 있는데, 이를 (리모델링해) 이주노동자들의 커뮤니티 공간이나 거주 시설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면서 "지자체뿐 아니라 전국 단위에서 공공 건축물 협의를 해서 이주노동자들이 꾸준히 사람답게 살 환경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경기도의 한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농약을 살포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 이희훈
지자체가 대안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7월 경기도 출연 연구기관 경기연구원의 '농어촌 외국인노동자 주거모델 개발을 위한 정책연구' 보고서를 보면, 최소 주거기준에 따른 도 차원의 공공 이주노동자 주거 시설을 이미 제언했다.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의 경우, 방치돼 있던 빈 건물을 리모델링해 이주노동자 24명을 위한 공공 기숙사로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인구 소멸로 생기를 잃은 마을에 '국경 없는 마을'이라는 간판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숙소 문제와 마을 재생을 함께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다수 사례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10배 이상 입국할 이주노동자들, 이들의 거처는?
▲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가 평소에 알고 지내던 한 외국인 노동자의 숙소를 방문했지만 만나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고 있다. ⓒ 이희훈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내놓은 농어촌 공약의 주요 내용은 단기 고용 확대나 비자 제도 개선 등 사용자 중심의 외국인 '인력 수급'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전문가들이 새 정부의 '이주노동자 대책은 전무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최종만 활동가는 "사실 관련 정책이라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기숙사 문제는 거의 파악이 안 돼 있다. 이건 새 정부 뿐 아니라 기존 정부 노동부도 마찬가지였다"라고 토로했다.
"정말 짐승우리 같지 않나요. 이제 노동자들이 더 많이 들어오면, 여기도 사람 사는 기숙사로 제공할 가능성이 있어요."
김달성 목사가 사람 기척이 없는 빈 비닐하우스 기숙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이주노동자들의 입국이 가로막히면서, 농촌 곳곳에는 비닐과 차양막이 찢겨나간 하우스 기숙사가 방치돼 있는 상황이었다. 김 목사는 대거 입국이 예고된 이주노동자들이 편법을 틈타 다시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일 가능성을 우려했다.
▲ 외국인 노동자 숙소로 사용되고 있는 비닐 하우스. ⓒ 이희훈
노동부는 14일 '느낌표' 보도자료에서 올해만 7만 3000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입국시키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코로나19 직후 빗장을 걸어 잠근 2020년(6000여 명)과 비교하면 10배 이상의 인력 수급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은 "장애 요인을 해소해 신속히 입국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입국자들의 행선지는 "인력난이 심각한 중소기업과 농어촌"으로만 제시돼 있었다.
이들은 이제 어디에서 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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