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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정보

[핫플레이스] 넉넉~한 자연의 품에서 미래농업 가능성 펼치니, 2030세대가 먼저 찾았다

충북 진천 `하우스 비전 코리아`

생활디자인 브랜드 무인양품
`農` 주제로 건축물 한데 모아

현대적 감각의 전원주택부터
유리온실 속 미래형 집까지
젊은이들 몰려 인증샷 성지로

  • 강영운 기자
  • 입력 : 2022.06.10 17:10:59   수정 : 2022.06.10 20:40:38

일본 패션 브랜드 무인양품이 충북 진천에 전원주택 `양의 집`을 선보였다. 집 안 곳곳을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사진 제공 = 무인양품]
 
충북 진천은 '생거진천(生居鎭川)'으로 통하곤 했다. '살아서는 진천에 산다'는 뜻이다. 너른 땅이 내주는 곡식의 풍요가 퍽퍽한 삶에 윤기를 더했다. 옛말로만 여겨지던 생거진천이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는 브랜드 무인양품이 진천에 연 한 전시 덕분이다. 주인공은 '하우스 비전 2022 코리아'. '농(農·농업)'을 주제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사유한 건축물들이 한곳에 모였다.

넉넉한 마당을 품은 전원주택부터 미래형 비닐하우스, 현대적 농막, 친환경 레스토랑까지 망라한다.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이자 무인양품 디자인 총괄인 하라 겐야의 주도 아래 한국의 이름난 건축가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다. 하라는 "흙과 공기와 물을 가까이하며 자연과 대화해온 우리 역사는 아시아인의 미(美) 의식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면서 "수천 년 전 과거로부터 현재를 내다보고, 50년 후 미래를 바라보며 지금을 생각하는 비전이 담긴 전시"라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자연을 한 치도 거스르지 않는 듯한 공간의 넉넉함이 한여름 진천의 풋풋함을 더한다. 지난달 5일 막을 올린 전시회를 최근 매일경제가 직접 찾았다.


`양의 집` 내부 전경. [사진 제공 = 김동규]
이날 전시회장 입구부터 전시를 보려는 젊은 관객들로 가득했다. 평일 낮 시간대임을 감안하면 전시의 뜨거운 인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전시장을 찾은 30대 회사원 백재민 씨는 "평소 무인양품의 소박한 디자인을 좋아했는데 주거 공간까지 마련했다고 해 직접 찾았다"면서 "초여름 날씨와 어울리는 공간 배치를 보니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건축물은 역시 '양의 집'이었다. 양기를 머금은 집이란 뜻처럼 내부가 태양 빛과 신선한 바람으로 가득했다. 한쪽 벽 전면을 '개구부'(채광·환기·출입에 쓰기 위한 창)로 구성한 덕분이다. 창문을 끝까지 열면 집 거실은 마루까지 확장되는 모양이다. 선선한 날씨에는 바퀴가 달린 식탁을 그대로 마당으로 옮겨 친구들과 시원한 맥주 한잔 즐기기에 적절한 공간이었다. 양의 집 내부는 미니멀한(군더더기 없이 간소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소파와 텔레비전, 침대와 주방이 모두 한 공간에 어우러지면서도 북적이거나 난잡하지 않았다. 벽면에 마련된 넉넉한 수납 공간이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이 중 침대가 다기능성으로 눈에 띄었다. 머리맡 상단부 주변에는 'ㄱ' 자 모양의 책상이 독서 욕구를 자극한다. 하라는 "침대는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책을 읽거나 블로그를 쓰거나 요가를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양의 집을 완성하는 건 역시 집만큼이나 넉넉한 데크였다. 집과 자연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촉매가 되기에 충분했다. 데크 한쪽에는 채소와 허브를 기를 수 있는 작은 텃밭이 있었다. 또 다른 쪽에는 밑으로 파인 공간에 화톳불을 피울 수 있었다. 하라를 관통하는 '슈퍼 노멀'(평범함 속의 특별함)이 양의 집에 구현돼 있었다.

양의 집은 이달 18일 전시가 끝난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할 계획이다. 특별한 손님을 위한 숙박 공간으로 활용된다. 무인양품은 양의 집 소개를 시작으로 한국 시장에서도 주택 사업 진출을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양의 집 옆으로는 여러 작은 집이 유기적으로 군집한 공간이 있었다. 건축가 최욱이 스마트팜 스타트업 만나CEA와 협업한 '작은 집'이다. 학고재 갤러리, 두가헌,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등이 최욱의 작품이다. 여러 채의 집으로 구성되는 한옥의 작법을 작은 집 역시 그대로 따랐다. 서양 근대건축의 거장인 르코르뷔지에가 인체 치수에 걸맞게 만든 건축 치수인 '모듈러'를 기반으로 동양 면적 단위인 평을 조합해 새로운 모듈을 만들었다.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공생하는 한옥의 정신에 서양의 비율을 조합한 일종의 '동도서기(東道西器)'인 셈이다. 집 내부 공간은 넓지 않았지만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옥상·테라스가 넉넉했다. 최욱은 "드넓은 대지와 여유로운 풍토의 생활 리듬을 경험해본다면 이런 삶도 꽤 괜찮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리 온실 속에 집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엉뚱한 상상도 진천에선 현실이 된다. 아난티를 설계한 유명 건축가 민성진이 만나CEA와 협업해 구현한 집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팜뷰'(농장 전경이 보이는 공간)의 전형이었다. 거대한 유리 온실 속으로 들어가자 멋스러운 두 채가 서로 악수하듯 마주 보며 관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쪽 집은 둥근 모양의 지붕이었고, 다른 한쪽은 직선 모양의 지붕인데 비대칭 속에서도 묘한 조화를 이룬다. 민성진은 "초가 지붕의 곡선과 기와 지붕의 직선을 구현한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미래 농부의 모습은 멋과 실용이 겸비된 모습일까. 생거진천. 부활의 가능성을 진천에서 봤다.

지구 지키고, 배도 채우고…직접 키운 채소로 즐기는 식단

전시장 내 식음료 공간도 다채

장어 배설물로 키운 유기농버섯
온실서 키운 채소로 만든 '포케'


온실 속 통창 분위기에서 식물을 보면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컬티베이션 하우스`. [사진 제공 = 무인양품]
미래형 농업 건축으로 눈이 즐거우니 슬슬 허기가 진다. '맛의 민족'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식음료를 뺀 공간은 '팥 없는 찐빵'과 진배없다. 하우스 비전 코리아에서도 이를 놓치지 않았다. 맛과 멋을 동시에 잡은 식음료 공간을 선보였다. 레스토랑 '100% 키친'과 카페로 운영되는 '컬티베이션 하우스'다.


우선 텅텅 빈 배를 채우기 위해 '100% 키친'을 찾았다. 만나CEA와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 건축가 나훈영이 구상한 공간이다. 오는 18일까지인 행사 기간에는 점심 메뉴가 포케 3종(항정살·연어·참치)으로만 구성됐다. 포케는 채소와 현미밥 그리고 양질의 단백질인 항정살·연어·참치를 소스와 함께 비벼 먹는 음식이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MZ(밀레니얼+Z)세대가 많이 찾는 메뉴로 정평이 나 있다. 음료까지 포함한 가격이지만 최소 가격이 1만8000원에 달한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특히 식사량이 많은 성인 남성은 포케 외에 군것질로 배를 채워야 한다. 그래도 '한 끼'로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찾는다. 몸뿐만 아니라 '지구'도 한층 깨끗해진다. 레스토랑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여기서 나온 식재료는 모두 '자급자족'이다. 식당 위층에 있는 스마트팜에서는 레스토랑에서 사용할 채소를 기른다. 위층에 자리한 유리 온실에서 자란 작물을 직접 수확해 식탁에 내놓는다. 작은 유리 온실 속 채소만으로 수많은 손님의 허기를 채울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는 괜한 걱정이었다. '아쿠아포닉스(유기농 친환경 수경 재배)' 기술 덕분이다. 단위 면적당 수확량은 기존 농법보다 20배가량 증가했음에도 동시에 사용하는 물의 양은 10분의 1로 줄였다고 한다. 지하에서는 장어가 배설한 유기물로 느타리버섯을 키워 재료의 신선함도 놓치지 않았다. 음식물쓰레기가 많이 배출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간으로 손색이 없었다.

배를 채웠다면, 이젠 음료를 마실 시간. 지방 곳곳 카페 성지를 찾아다니는 '커피 순례객'을 위한 공간이 마련됐다. '컬티베이션 하우스'다. 커다란 온실 속 일부 공간은 데크로 채우거나 돌과 양치식물로 꾸몄다. 전시가 끝난 이후에도 두 공간은 계속 식당과 문화 공간으로 활용된다.

[충북 진천 =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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