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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도 대통령·부통령만 준다…'후진국형 공관' 이젠 없애자 [공관 대수술]

美도 대통령·부통령만 준다…'후진국형 공관' 이젠 없애자 [공관 대수술]

중앙일보

입력 2022.04.07 05:00

업데이트 2022.04.07 12:46

 

74년 역사의 청와대 시대가 막을 내린다. 6일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의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데 쓰일 360억원 규모의 예비비 지출안이 통과했다. 대통령 관저는 용산의 현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이전한다. 이를 위해 육군참모총장 공관은 리모델링을 한다.
육군총장 공관은 대지 9091㎡(2750평)에 건물 면적은 799㎡(241평)에 달한다. 이보다 대지가 넓은 공관만 6곳이다. 중앙일보 취재 결과 현재 4부 요인, 감사원장, 국방ㆍ외교부 장관, 군 수뇌부가 공관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관저와 함께 공관은 국유재산으로 관리된다.

하지만 이런 공관 운영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명확한 규정, 투명성을 원칙으로 하는 선진국 공관 운영과는 거리가 멀다. 나아가 대통령을 제외한 고위직 공무원의 공관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6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 청사의 모습. 뉴스1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외교부 장관 공관은 대지면적 1만4710㎡, 건물면적 1434㎡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은 재임 기간(2017년 6월~2021년 2월) 공관 시설 보수 등에 9억5000만원을 사용했는데, 그의 후임인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6개월 동안 인테리어 공사 등에 약 3억2000여만원을 또 썼다. 세부 항목은 공개되지 않았다.

사적 이용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아들 부부가 공관에 무상으로 살면서 강남 아파트 분양 대금을 마련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2018년 초 공관에 김 대법원장 며느리가 소속된 대기업 법무팀이 초청돼 만찬을 가진 일도 문제가 됐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해 11월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대학 동기 등과 식사를 하면서 방역 수칙을 어긴 사실이 드러났다. 김 총리까지 11명이 모였는데 당시 10명까지였던 사적 모임 인원을 넘겨 과태료 처분까지 받았다. 사적 모임으로 국무총리로서의 공적인 업무는 아니었다는 의미다.

국내 관저 및 주요 공관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공관 운영에 대한 근거 법령은 국유재산법 시행령 제4조다. 그러나 국유재산에 포함되는 공무원 주거용 시설의 범위만 정해놨을 뿐이다. 시행령에는 이를 ▶대통령 관저▶국무총리와 독립기관, 중앙행정기관장의 공관▶국방ㆍ군사시설 중 주거용 시설▶원격지 및 비상근무자에게 제공되는 주거용 시설 등으로 구분해 놓았다.

대부분의 공관ㆍ관사는 기관장 재량에 따라 손쉽게 바꿀 수 있는 훈령ㆍ지침 같은 행정 규칙으로 운영되고 있다. 예산 감시 역할을 해야 할 국회 역시 손 놓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공관은 각 기관마다 운영하는 형태가 다 다르고, 관리ㆍ임차ㆍ인건비 등 예산 구분 역시 제각각”이라며 “게다가 각 운영 주체에서 관련 예산 공개 여부를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일괄해서 공개ㆍ비교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저를 포함한 공관 운영은 베일에 싸여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으로 일부 사적 비용을 급여에서 공제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통령 관저에 투입되는 예산이 얼마인지에 대해선 청와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들어 공개하지 않는다. 4부 요인이나 중앙행정기관장 역시 관련 내용 대부분을 비공개하고 있다.

공관을 최소한으로 하고 운영 규정도 법에 따라 엄격히 적용하는 선진국과 차이가 크다. 미국은 대통령과 부통령 정도만 관저가 제공된다. 권력 승계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워싱턴DC 주택가인 조지타운에 위치한 부부 소유 아파트에 거주한다.

일본은 국가공무원숙사(宿舍)법에 따라 설치부터 운영까지 재무성(한국의 기획재정부 격)이 총괄하고 있다. 총리ㆍ장관 등 최고위급 공무원에게 제공되는 ‘공저’와 무료 숙소, 유료 숙소로 구분된다. 공저에 들어갈 수 있는 대상도 법에 규정돼 있다. 무료로 대여하고 집기도 제공하지만 사적 이용에는 제한을 둔다. 영국 총리ㆍ장관의 공관은 ‘장관 행동 강령’(Ministrial code)’에 따라 관리된다. 영국의 총리 공관은 다우닝가 10번지에 들어서 있다. 장관 행동 강령에 따르면 공관을 이용하는 장관은 개인적 세금을 포함해 공관에서 살면서 발생하는 생활 비용을 국가에 청구할 수 없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국가에서 제공하는 주치의도 없고, 총리 가족 식사 비용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반면 1994년 1월 완공된 서울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의 경우 이만섭 당시 국회의장이 “새 공관이 너무 넓고 호화롭고,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주를 거부해 한동안 건물이 비어 있던 일도 있었다. 당시 165억원을 들여 7698.3㎡(2329평) 부지에 연면적 2183.6㎡(660평) 규모의 3층 건물을 지었는데 1층엔 연회실과 응접실, 비서실을 갖추고 2ㆍ3층엔 5개의 침실과 거실, 식당 등을 배치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관사도 논란이 되긴 마찬가지다. 거주 공간 445㎡(135평, 16억원 투입)를 포함해 34억원을 들여 전체 연면적 1095㎡(331평) 규모의 전통 한옥 풍의 전남지사 관사도 2005년 건립됐지만 “들인 돈에 비해 쓰임새가 적다”는 ‘호화판’ 비판에 시달렸다. 그러다 2018년 7월 김영록 전남 지사가 입주하지 않는 일도 있었다.

개선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0년 행정안전부는 지자체 관사 폐지를 권고하는 ‘자치단체장 관사 운영 개선 방안’을 내놨고, 2013년 기재부는 직무 관련성이 없는 관사는 사용료를 부과하는 등 내용으로 국유재산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하지만 행안부 안은 권고 사항에 그쳤고, 기재부 안 역시 예외 조항이 많아 실효성이 떨어졌다. 기재부는 2013년 관사 관련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공무원 주거용 재산 관리 기준’도 제정했지만 사용료 부과 기준, 사용 기간 같이 개략적 내용이 주를 이룬다. 국유재산 관리 성격이 더 크다. 전국에 있는 공관과 관사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공식 집계도 없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관이나 관사는 기본적으로 각 부처·기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국가 소유도 있고 임차하는 경우도 있는 데다 형태가 다양해 이를 통합해서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과거 공관이 필요했던 이유는 타지에서 일하는 공직자가 국민에게 봉사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주거 편의를 봐주고, 외부 행사를 개최할 공간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지금은 두 역할 모두 필요성이 적어졌는데 관행적으로 공관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불필요한 공관은 없애 수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권자의 눈총을 의식해 일부 지자체에서는 단체장 관사를 폐지하는 추세다.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이후 기존 시장 관사를 없앴다. 부산시는 활용 방안을 찾기 위한 용역을 진행 중이다. 대전시는 지난해 9월 시장 관사 부지에 어린이집을 건립했고, 울산시는 사회초년생ㆍ신혼부부를 위한 15층짜리 행복주택을 짓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면적 제도 개편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관의 사적 사용을 제한하고, 공관 유지에 필요한 예산ㆍ시설ㆍ인력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제한 규정을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국 공관 운영 실태에 대한 조사와 관련 정보 공개도 선결 과제다.

엄태석 서원대 복지행정학 교수는 “외빈 행사나 밤샘 회의 같은 공적인 기능 때문에 일률적으로 없앨 수는 없겠지만, 공관이나 관사 면적이나 사용 범위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며 “관리비 같은 사용료는 본인이 부담하도록 해 관사의 사적 활용을 제한해야 하며, 자녀가 결혼할 경우 함께 살 수 없도록 하는 등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윤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자가에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에서도 공관 대신 일반 주택에서 살 때는 주거비를 일부 보조해주고, 필요하다면 보안, 정보 보호 조치 등을 제공한다면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넓고 화려하게 지은 공관에서 정치적이고 사적인 모임을 하는 직권남용적 행태는 제한하고, 공관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종=조현숙ㆍ임성빈기자newea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