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하며 자퇴한다는 아이, 사춘기 반항? 정신병일 수 있어요
입력 2022.03.31 06:00
아들(만 15세)과 딸(만 14세) 두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둘째 수빈(가명)이에 대한 고민으로 상담을 신청하게 됐어요. 수빈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지난해 10월엔 전학을 하기도 했어요. 지인 소개로 기숙 생활을 하는 중학교를 소개받았는데, 아이가 마음에 들어 했거든요. 그런데 학교를 옮기고 나니, 이젠 자퇴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검정고시를 보겠다면서요.
학교 다니는 걸 힘들어 해 전 학교에서 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어요. 이 무렵 자해를 하기도 했거든요. 고위험군 판정을 받아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정신과를 다녔습니다. 병원에선 우울증과 불안 정도가 심하다고 했어요.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했지만 별 차도가 없었습니다. 전학과 동시에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외출이 자유롭지 않아 치료는 중단한 상태고요.
전 결혼한지 10년차에 남편과 이혼했습니다. 전 남편은 분노 조절을 못하고 화를 내는 일이 잦았어요. 대인관계도 기피해 외톨이처럼 지냈죠. 저와는 성격과 기질 모든 게 정반대라 자주 싸웠습니다. 제부와 시작한 사업이 실패하면서 전 남편의 짜증은 극에 달했습니다. 최대한 부딪히지 않으려고 집안에서도 피해 다녔어요. 너무 숨이 막혔고 ‘이러다 죽겠다’ 싶어 헤어지기로 마음 먹었죠.
이혼은 했지만 아이들에게 혹여 그늘이 생기진 않을까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전 수빈이가 여전히 밝게, 문제 없이 생활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진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저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건 제 착각이었나 봅니다. 딸 아이는 성향상 본인의 속마음은 말하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힘들어도 혼자 속으로 삭이고 있었던 거예요.
부모가 잘 살지 못해 아이가 방황하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그렇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선 기본 교육 과정은 제대로 마쳐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학교에 마음 붙이게 할 방법이 없을까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힘든 상황을 이겨내 보려고 할까요? 저 좀 도와주세요.
“어머니는 수빈이가 아픈 게 본인 탓, 환경 탓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더 이상 자책하지 마세요. 제가 보기에 수빈이는 선천적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정신병리는 대개 청소년기에 발현되는데, 치료가 정말 까다로워요. 저 역시 체질적으로 뇌에 문제가 있는 아이를 키우면서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있구나’를 뼈저리게 느낀 사람입니다.”
고세연(가명)씨의 사연을 듣던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틱 장애를 심하게 앓은 자신의 첫째 아들을 떠올리며 고세연씨를 위로한 건데요.
신 교수는 아이가 아플 때 현실을 직시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맹목적인 노력보단 데이터에 근거한 분석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는 “체질적으로 뇌에 이상이 있는 아이를 키울 땐 양육자의 노력뿐 아니라 전문적 치료가 필수”라며 “부모가 잘 버티면 아이는 결국 나아진다”고 했습니다.
고세연씨(이하 고)와 신의진 교수(이하 신)의 상담은 지난 2월 7일 줌을 통해 30분간 진행됐습니다.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는 고세연씨의 동의를 얻어 상담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혹시 아이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문제 행동을 해 속앓이를 하고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단순한 사춘기 반항이 아닌 기질적 정신병리은 아닐지 체크해보세요.
학교 생활 적응 못하고 자해까지 한 아이
신)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해 고민이라고요.
고) 아이가 중학교 올라가면서 사람 많은 곳 자체를 두려워해요. 피하려 하고요. 학교 생활을 힘들어 해서, 전학까지 시켜줬어요. 아이가 원하는 학교로요. 그런데 기숙사 생활이 힘들다면서 이젠 아예 자퇴를 하고 싶다고 하네요.
신) 기숙사 생활 어떤 부분이 힘들다고 말하던가요?
고) 학교 시간표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걸 가장 힘들어합니다. 자고 일어나고 씻고 먹는 시간이 짜여져 있거든요. 예를 들면 저녁을 오후 5시에 먹는데, 그 이후부턴 배고파도 먹을 수 없는 거죠. 씻는 것도 정해진 시간 내에 해야 하고요. 원치 않는 친구와 같은 방을 써야 하는 것도 불편해 합니다.
신) 아이가 잠은 잘 자나요?
고) 아니오. 아이가 자기 싫으니까 늦게까지 있다가 혼자 새벽에 잠들더라고요. 기상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피곤해 합니다.
신) 밥은 잘 먹나요?
고) 식사에 대한 불만은 딱히 들어보지 못했어요. 기숙사에선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주거든요. 집에 있을 때보단 잘 챙겨먹는 거 같아서 그거 하나는 좋은 것 같아요.
신) 아이가 정신과를 다녔다고 했는데, 아동·청소년 전문의였나요?
고) 제가 사는 지역에는 아동·청소년 전문의가 하는 정신과는 없어요. 학교에서 몇 군데 추천해주신 곳 중 그나마 큰 병원을 갔는데요,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하고 아이가 심층 면담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의사 선생님과는 5분 정도 상담한 뒤 약 처방 받는 게 끝이더라고요. 미술 심리 상담이나 놀이치료를 받는 게 1시간쯤 됐고요.
신) 이 병원에서 우울·불안증 진단이 나왔다 하신 거죠?
고) 네, 그렇습니다.
신)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나요?
고)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병원은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다녔고, 그 이후로는 다니지 않고 있어요. 당시엔 학교에서 70만원을 지원받기도 했거든요. 상태가 심각한 아이들은 병원에서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일정 금액을 지원해주더라고요. 이후 기숙학교로 옮기면서 평일엔 상담 받기 어려워 치료를 중단했습니다. 방학이 돼 학교를 안 가면 아이 상태가 괜찮아지는 것 같기도 했고요.
신) 의사 선생님이 이제 그만 와도 된다고 한 건 아니죠?
고) 그건 아닙니다.
사춘기 반항? 선천적 정신병일 수도
신) 자체적으로 수빈이 치료를 중단하신 부분이 정말 안타까워요. 방학 때 집중적으로 치료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제가 봤을 때 수빈이는 지금 심각한 상태거든요. 사춘기 때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해 버럭할 순 있어요. 그런데 자해까지 했다면 저 같으면 입원 치료를 권했을 겁니다.
고) 아이 상태가 그렇게 심각한가요?
신) 특정 증상이 심하면 정신병으로 보거든요. 정신병 수준이라고 판단됩니다. 이렇게 기분 조절이 안 되고 불안한데, 기숙사까지 가서 버틴 게 용하다 싶을 정도예요.
고) 예상치도 못한 얘기를 들으니 얼떨떨합니다.
신) 충분히 그러실 수 있어요. 그런데 시각을 좀 바꿔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수빈이는 일반적이지 않다, 정신이 아픈 아이다’라고 바라보시는 거예요. 제가 담당의였다면 전학을 결사코 말렸을 겁니다. 아이가 학교를 마음에 안 들어 해서 바꾼 것이지만,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그만큼 스트레스가 심하잖아요. 수빈이처럼 우울과 불안이 높은 아이라면 매우 고통스러웠을 거예요.
고) 아이 상태가 많이 안 좋다고 보시나요?
신) 어머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한 정신병리 같아요. 뇌 기능을 정상화해야 학교 적응도 가능한 겁니다. 억지로 학교에 적응하라고 하면 큰일납니다. 실제 자해를 하는 등 위험할 뻔한 적도 있잖아요.
고) 전 우울증에 사춘기가 겹치면서 갈피를 못 잡는 게 아닌가 생각했거든요. 초등학교 땐 별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신) 청소년기에 발현되는 정신병리가 있습니다. 사춘기 일탈 행동과 혼동할 수 있죠. 전학까지 할 정도로 힘들다면 조울증이나 우울증 같은 정신병리가 시작되는 건 아닌지 전문가에게 진료 받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면·섭식 장애, 정신병리 대표 증상
고) 단순한 일탈이 아닌 정신병리라고 의심할 만한 증상이 뭘까요?
신) 아까 수빈이가 잠을 잘 못 잔다고 하셨죠? 대표적 병리 증상이 수면·섭식 장애입니다. 밤에 영화 많이 보느라 안 잔다, 이런 것과는 달라요. 일반적인 경우엔 안 자려고 해도 졸려서 버틸 수 없거든요. 하지만 병리가 있으면 신체 리듬이 다 깨져서 밤낮이 바뀌는 거죠.
고) 아이가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신) 제가 아이를 직접 본 건 아니라 원인은 단정 지을 순 없어요. 다만 수빈이는 아버지의 생물학적 취약점을 닮은 게 아닌가 싶어요. 아버지랑 수빈이의 성격은 각각 어떤가요?
고) 수빈이가 기분 조절을 못하는 모습을 보면 전 남편이 떠올라 깜짝 놀랄 때가 많았습니다.
신) 수빈이가 조울증을 앓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데요. 조울증은 체질적으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천적으로 기분 조절이 잘 되지 않는 뇌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뇌의 문제인데 상담만 한다고 증상이 완화될까요? 아니죠. 약물도 병행하면서 꾸준히 치료해야 합니다.
고) 부모가 자식한테 별걸 다 물려주네요.
신) 아버지가 나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아버지도 어찌 보면 기질적으로 기분 조절이 안 될 가능성이 높아요. 좋은 의사 만나 치료를 잘 받으셨더라면 가족과 헤어지는 일도 막을 수 있었을 수도 있어요.
고) 결혼 초기에 남편에게 상담 받아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한 적이 있어요. 근데 ‘내가 무슨 정신병자야?’라며 불같이 화를 내더라고요. 나도 당신도 각각 상담 받고 앞으로 행복하게 살자고 했는데 설득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하고 그냥 살았습니다. 최대한 안 부딪히는 방향으로요.
노력해도 안 되는 아이 있단 사실 받아들여야
신) 어머니 말씀을 듣다 보니 그 동안 참 힘들었겠다 싶네요. 본인 때문에 아이가 잘못 된 게 아닌가 자책하지 마세요. 오히려 어려운 상황을 버티느라 고생하셨어요. 제가 안아주면서 위로해드리고 싶을 정도예요.
고) 제 마음을 알아주시니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신) 부모가 아무리 노력해도 선천적으로 취약한 아이들이 있어요. 제 큰 아이도 그랬거든요. 틱 장애가 심해 일상 생활이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약이 안 들을 땐 학교도 못 보냈어요. 최선을 다해 아이를 보호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 투성이였죠. 큰 아이를 낳기 전까진 제대로 마음 먹으면 안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아이를 기르면서 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세상엔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를 처음 깨달은 거예요.
고) 완벽해 보이는 교수님도 그런 시련을 겪으셨군요. 상상도 못했어요.
신) 부모가 잘 버텨주면 아이가 결국엔 보답하더라고요. 아픈 아이를 보면서 마음만 아파하기 보단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아이 치료만 생각할 수 있거든요. 저희 아이는 약물 치료만으론 부족했어요. 그래서 전 제 아이에게 필요한 치료를 해줄 수 있는 심리 전문가를 찾으려고 부단히 애썼습니다. 아이가 다닐 수 있을 만한 학교도 일일이 알아봤죠.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어요. 그랬던 아이가 대학도 가고 군대도 다녀왔습니다. 대학교 졸업할 때쯤 되니 상태도 많이 좋아졌어요.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 아이라도 성장하면서 통찰력 같은 게 생깁니다.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방식으로 자라는 거죠. 이제는 저한테 잘 키워줘서 고맙다고 합니다.
고) 제게도 그런 날이 오겠죠?
신) 그럼요, 우선 전문가와 함께 아이 뇌에 대해 분석해보세요. ‘우리 아이 뇌 이 부분이 안 좋아서 기분 조절이 잘 안 되는구나’ 공부하는 거예요. 그럼 아이의 행동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습니다. 엄마는 위대하니까,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겁니다.
② 단순한 사춘기 일탈과 정신병리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냐고요? 아이가 잘 먹고, 잘 자는지 살펴보세요. 정신병리일 경우엔 신체 리듬이 완전히 깨져 수면·섭식 장애를 겪습니다.
③ 세상엔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뇌에 이상이 있는 아이도 마찬가지죠. 양육자는 내 탓이 아닐까 자책하지 마세요. 현실을 받아들이고 아이 치료에 힘을 쏟는 게 현명합니다.
☞아이는 소중합니다. 그런데 삶은 불확실하죠. 때문에 아이를 키운다는 건 누구에게나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일 겁니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위협이 얹어졌습니다.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가 hello! Parents와 함께 [괜찮아,부모상담소] 시즌 2를 연 이유입니다. 신의진 교수는 지난 1월부터 아이에 대한 고민을 가진 양육자를 비대면으로 직접 만나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말 못할 육아 고민, 여러분도 갖고 계시진 않은가요? 신의진 교수의 [괜찮아,부모상담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사연 신청은 hello! Parents 홈페이지를 구독한 뒤 게시판에 올려주세요. 메일(helloparents@joongang.co.kr)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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