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군표 구속시킬때 알아봤다, 尹이 믿는 '중앙지검장 0순위' [尹의 사람들]
한동훈 검사장(49·사법연수원 27기)은 윤석열 대통령 시대 검찰의 향배를 가늠할 인물로 손꼽힌다. 문재인 정부 출범의 신호탄이 된 국정농단 수사로 정권의 신임을 얻고 기수를 파괴하면서까지 파격 발탁됐다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정권을 겨냥한 수사 탓에 눈엣가시로 전락한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 중앙포토
“사건 수사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윤 당선인이 특수통 ‘칼잡이’ 후배인 한 검사장의 수사력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잘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 15년 전에 있었다.
한 검사장이 지난 2007년 가을 부산지검 특수부 수석 검사로서 전군표 국세청장 뇌물 사건을 수사할 때였다. 부산 한 건설업자의 재개발 비리에서 시작된 수사는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과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구속과 함께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눈덩이처럼 커졌다. 직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연구관 출신인 한 검사가 수사에 착수한 이후 세무조사 로비 의혹으로 불통이 튄 것이다.
한 검사는 당시 검찰총장과 직접 만난 자리에서 직(職)을 걸고 세정 최고 책임자인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의 구속영장 청구라는 승부수를 던졌다고 한다. 7000만원과 미화 1만 달러의 뇌물 상납 혐의로 현직 국세청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자체가 초유의 일이던 때였다. 17대 대선을 앞둔 시기 검찰 총수인 정상명 당시 검찰총장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사시 17회 동기 8인회 멤버로 인연이 깊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020년 '윤석열 사단 대학살' 이후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때 대검에서 그를 유일하게 지지해준 인물이 윤석열 당시 대검 연구관이었다고 한다. 대검 지휘부가 윤 당선인에게 “부산에 내려가 (한동훈) 수사를 도우라”고 지시하자, 윤 당시 연구관은 “사건 수사가 잘 되고 있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대구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윤 당선인의 첫 부장검사이자 50세가 넘어 늦깎이 결혼을 한 윤 당선인의 결혼식 주례까지 맡은 정 전 총장에 대해 ‘한동훈의 방패막이’가 돼 준 셈이다.
이처럼 좌고우면 없이 돌진하는 한 검사의 수사 성향을 두고 윤 당선인이 “넌 늘 수사를 유도리(융통성) 없이 독립운동 하듯이 한다”라고 우스갯소리처럼 지적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의 첫 인연은 18년 전 대선자금 수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4년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다. 당시 막내 연구관으로 부임한 한 검사는 2003년 서울지검 형사9부에서 SK 분식회계 사건으로 최태원 회장을 수사했고 이는 중수부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의 단초가 됐다. 윤 당선인은 이때부터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두 사람은 2006년 현대차 비리 사건, 외환은행 론스타 부실 매각 사건, 2016~17년 국정농단 사건 등 굵직굵직한 특수 수사를 함께 했다. 윤 당선인은 단순히 보고서의 결론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조서와 기록을 꼼꼼히 다 살피는 한 검사의 수사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한 검사장 역시 윤 당선인의 검사로서 진정성과 우직한 풍모에 국정원 댓글 수사 이후 지방으로 좌천됐을 때도 직접 사택을 찾아가 식사를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尹·韓 “검찰 역할은 살아있는 권력 비리 수사하는 것”
이들은 검찰에 대한 철학도 공통분모가 많다. 두 사람은 검찰의 역할을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는 ‘센 놈’(권력‧재벌 등)을 겨누는 것으로 정의한다. 중대한 비리가 발견된다면 그 때부터는 정치적 우려나 외부 파장 등을 고려하며 한눈팔지 않고 수사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검사장은 후배 검사들에게 검찰 수사는 “세 줄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름을 가리고 봐도, 기름기를 빼고 봐도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여러 번 밝혔다고 한다. 전자는 세 줄로 간단하게 요약될 만큼 일반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상식적 정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진영 논리나 시대적 요구와 관계없이 절대적으로 소구되는 ‘상식적 정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실제로 윤 당선인 역시 본지 인터뷰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권력형 비리를 엄단할 수 있어야 하며, 일반인이나 사회 약자를 훨씬 더 배려하는 법 집행을 하는 것 두 가지가 검찰 개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수사 철학은 지난 2017년 전병헌 당시 정무수석 뇌물수수 혐의 사건 때도 여실히 드러난다. 당시 3선 의원 출신의 전 수석 사건은 1년 넘도록 노란 별표에 딱지까지 붙인 채 서울중앙지검 캐비넷에 잠자고 있었다. 전 전 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자였던 시절 선대위 전략본부장이었을 정도로 실세였던 탓에 검찰 내에서도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7년 12월 서울중앙지검은 전 전 수석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다. 검찰 인사로 ‘신봉수 첨단범죄수사1부장→한동훈 3차장→윤석열 지검장’으로 보고라인이 바뀌면서다.
새 지휘부는 첨단범죄수사1부장의 보고에 아무런 이견도 없이 곧장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4년 뒤인 지난 2021년 전 전 수석은 징역형 집행유예를 확정받았다. 그러나 한 당시 차장과 윤 지검장은 국정농단 특검의 공로로 정권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으며 전임자에 비해 5기수 낮은 기수로 발탁됐다가 돌연 미운털이 박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윤 당선인은 2019년 7월 총장이 되자 한 검사장을 권력 수사를 지휘하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에 기용했다. 이때 이두봉(58·25기) 인천지검장, 박찬호(56·26기) 광주지검장, 조상준(52·26기) 변호사, 이원석(53·27기) 제주지검장 등 다른 특수통 후배도 각각 대검 과학수사부장, 공안부장, 형사부장, 기획조정부장에 임명해 검찰 안팎에서 ‘윤석열 사단’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촉발시켰다.
尹당선인의 중앙지검장 0순위 후보…與 “정치 보복 신호탄”
이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일가 수사를 벌이면서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검찰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이 때도 한 검사장은 윤 총장을 보좌해 수사를 지휘했다.
그러나 조국 수사를 놓고 대검에서 윤 총장과 한 검사장 사이에 이견이 있었던 건 알려지지 않은 비화다. 한 검사장은 당시 “사건이 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한다”는 신중론에 가까웠다고 한다. 결정은 윤석열 총장이 했다. 증거인멸 우려가 큰 데다 측근 부패는 정권에도 도움이 안된다는 쪽으로 총장과 대검 참모들의 뜻이 모였다는 것이다.
이 일로 조 전 장관은 취임 한 달 만인 2019년 10월 14일 사퇴했다. 그러나 여권은 이를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검찰의 도전으로 규정했다. 2020년 1월 ‘윤석열 대학살’ 인사에서 한 검사장을 포함해 대검의 윤 사단은 전원 좌천됐다. 한 검사장은 이때부터 부산고검 차장에 이어 법무연수원 용인 분원→법무연수원 진천 본원→사법연수원 부원장까지 네 번의 인사를 당한다. 이 같은 인사 보복은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에서 전격 사퇴하고 정계에 입문한 이유 중 하나로도 손꼽힌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윤석열 검찰총장. 중앙포토
이 수사로 재판에 넘겨진 조 전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에 대해서는 지난 1월 1·2심과 마찬가지로 자녀 입시비리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검찰 내에선 한 검사장이 ‘최측근’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실제로 윤 당선인에게 ‘맹종’(盲從)하는 관계는 아니라고 평가한다. 함께 근무해본 경험이 있는 복수의 검사들은 한 검사장에 대해 “윤 당선인과 몹시 가까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몇 안 되는 ‘할 말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 이후부터는 윤 당선인의 총장 퇴임 때까지 사석에서 단 한 차례도 만난 적이 없다고도 한다. 윤 당선인 역시 2020년 1월 ‘대학살’ 인사 직후 대검 간부들과 고별 만찬에서 “모두 해야 할 일을 했다. 나도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테니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해달라”고만 짧게 격려했다고 한다.
문제는 ‘서로 눈빛만 봐도 아는’ 두 사람간 깊은 신뢰가 권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재 여권은 물론 검찰 내부에서도 나온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는 윤석열 당선인의 첫 번째 검찰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장 0순위 후보’로 한 검사장이 꼽히는 것을 두고 “정치 보복 수사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지난달 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사실상 한 검사장을 언급하며 “이 정권에서 피해를 많이 봤기에 서울중앙지검장을 하면 안 되는 건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한 검사장이 중용될 경우 여전히 권력을 향해 서슬 퍼런 칼날을 겨눌지, 안팎의 견제로 칼날이 휘거나 꺾일지는 법조계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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