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원들에게 일을 시킬 때 시킨 대로 처리됐으면 그걸로 그만이었어요. 어떤 방식으로 처리됐는지, 도중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따지지 않는 분이죠.”
원하는 결과만 나오면 과정은 묻지 않는 푸틴의 성격은 대통령이 된 후에도 이어졌다. 2002년 10월 모스크바 극장 테러사건이 났을 때다. 푸틴이 체첸을 침공해 초토화시키자 체첸 테러범 41명이 뮤지컬 관람객 912명을 인질로 잡고 철군을 요구했다. 푸틴의 지시로 착수된 그날 진압 작전에는 마취가스가 동원됐다. 건물 환기구를 통해 가스가 살포됐다. 인질범과 인질들 모두 의식이 혼미한 상태가 되자 특수부대가 진입해 테러범을 전원 사살했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지도자의 이런 기질적 결함은 정치적 심판을 면할 수 없다. 하지만 푸틴은 전쟁을 벌일 때마다 제국에 대한 향수와 열패감에 젖은 러시아 국민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도 러시아 내에 반전 시위가 열리긴 하지만 국민의 60%는 여전히 푸틴을 지지하고 있다.

요즘 푸틴의 정신상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그는 앞선 성공에서 배운 것으로 다음의 성공을 만들려는 나름의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2000년 체첸을 항복시키면서 터득한 ‘끝장내기식 공격’ 노하우를 토대로 2008년 그루지야를 침공해 5일 만에 승리했다.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순식간에 영토를 점령하는 이때의 수법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합병 때 그대로 적용됐다. 당시 무력했던 우크라이나군과 물렁했던 서방의 제재는 지난달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는 데 자신감을 불어넣어줬을 것이다. 지금 푸틴은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자 핵 공격 위협을 하고 있다. 이게 먹히면 다음 침공 땐 초기부터 핵 카드를 쓰려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푸틴은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을까. 그는 서방 제재에는 단단히 대비했지만 우크라이나에서 복병을 만났다. 가족을 폴란드 국경에 내려주고 다시 돌아와 총을 잡는 아버지들, 빈병에 스티로폼 가루를 밀어 넣으며 화염병을 만드는 여성들, 망치라도 들고 싸우겠다는 노인들, 생포된 러시아 병사들에게 따뜻한 수프를 먹이며 그들의 가족과 영상통화를 연결해주는 사람들 말이다. 푸틴이 침공 직전 연설에서 “국가로서 정체성을 가진 적이 없다”며 얕잡아봤던 나라의 국민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똘똘 뭉쳐 있다.

물론 푸틴은 대량살상무기를 쏟아부어 기어코 군사적 승리를 달성하려 할 테지만 그렇게 이겨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4000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인들 가슴에 뿌려진 원한은 끝없는 저항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서방에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경제·군사적으로 일치단결하는 명분을 줬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장악이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인 전면 침공을 택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질 국제질서 파괴, 주권 침해, 민간인 살상은 늘 그래왔듯 개의치 않았다. 그 결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과정’의 반격에 직면해 있다. 푸틴이 더 큰 만행으로 이를 돌파하려 한다면 기름을 끼얹어 불을 끄려는 꼴이 될 것이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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