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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천자 칼럼] 우크라이나의 비밀병기

[천자 칼럼] 우크라이나의 비밀병기

입력 2022.03.01 17:34 수정 2022.03.02 00:06 지면 A31
우크라이나의 저항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 침공을 받았을 땐 곳곳에서 국경선이 뚫렸지만 사흘 뒤부터는 분위기가 반전됐다. 수도 키예프 인근까지 진격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결사적인 항전에 막혀 큰 손실을 입었다. 전차 146대, 장갑차 706대가 파괴되고 전투기 14대, 헬기 8대가 격추됐다. 사흘 만에 전투부대의 30%를 잃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우크라이나의 ‘비밀병기’ 덕분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미국산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이다. 길이 1.2m에 무게 22.3㎏인 재블린을 어깨에 메고 발사하면 미사일이 유도장치를 따라 탱크를 찾아 타격한다. 압축공기로 쏘기 때문에 후폭풍이 거의 없어 적에게 노출될 위험도 작다.
이 조그마한 무기로 600㎜ 두께의 철갑까지 뚫는다니,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팔맷돌과 비슷하다. 사정거리가 길고 고공에서 활강하며 탱크 상부를 때리기 때문에 미처 피할 사이가 없다. 탱크에서 가장 취약한 부위가 뚜껑이다. 가격이 개당 8만달러(약 9600만원)나 되지만, 이것으로 엄청나게 비싼 탱크를 잡을 수 있어 ‘가성비’가 뛰어나다.

또 다른 비밀병기는 우크라이나 국민이다. 4000만 명이 들고 일어나 화염병을 만들며 국가 수호를 외치고 있다. 남자들은 징집령이 발령되기도 전에 자발적으로 민병대에 입대했다. 해외에서 들어온 자원입대자만 13만 명에 이른다. 대통령이 전투복을 입고 거리에서 항전을 독려하고, 미인대회 수상자까지 총을 들고 일어섰다.
여기에 국제 지원이 쇄도하면서 ‘반(反)러시아 벨트’가 형성됐다. 세계적인 반전 시위가 푸틴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재블린을 포함해 64억달러(약 7조7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다. 독일은 대전차 미사일 1000기와 지대공 스팅어 미사일 500기를 제공했다. 영국과 유럽연합도 무기를 줄지어 보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군사비는 러시아의 10%에 불과하다. 그래서 푸틴은 속전속결로 항복을 받으려 했다. 닷새 만에 손을 든 2008년 조지아처럼 여겼다. 그러나 작전은 실패했고, 격렬한 저항만 불러왔다. 유사시에 대비한 첨단무기와 국민의 결사항전 의지, 위기에 빛나는 지도자 리더십, 글로벌 연대라는 뜻밖의 병기가 이토록 강한 힘을 발휘할 줄 미처 몰랐을 것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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