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칼럼] 겁먹은 권력자의 말기적 반응
문 대통령의 5년은 숙청과 역병의 시대였다
수많은 원한을 만들고 나의 안락만 구하겠는가
화내며 도망치지 말라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후보의 권력 수사 발언에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몰았다”며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 사자와 같은 존재는 이럴 때 “얼마든지 해보라”고 한다. 나약할수록 큰소리로 화낸다. 그는 겁을 먹은 것이다.
훗날 역사가 규정할 문 대통령의 시대는 명확하다. 숙청과 역병의 시대다. 조선 최대 숙청 사건인 갑자사화 때 239명이 유배형 이상의 화를 당했다.(김범 ‘연산군, 그 인간과 시대의 내면’) 문 대통령 적폐 수사로 구속 또는 기소 이상의 화를 당한 사람이 그 정도라고 한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적폐 몰이로 직장에서 내쫓겨 삶의 기반을 잃었다. 인격 살인을 당했다. 형벌의 경중은 크게 다르지만 사회에 미친 충격은 비슷할 것이다. 갑자사화를 일으킨 폭군은 자신의 주변에 고인 원한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공허에 미쳐 돌아가다가 폭정의 임계점을 넘어버렸다. 형벌이 과하면 폭군도 불안을 느낀다. 이 시대의 대통령은 오죽할까. 경직된 얼굴 뒤에 숨은 내면의 불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나락으로 내몰고 어떻게 자신의 안락만을 추구할 수 있겠는가.
구시대 청산이 필요한 시대가 있다. 문 대통령의 5년이 그런 시대였다고 본다. 보복과 처벌을 절제하고 용서를 앞세웠다면 역사의 전환점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직전 대통령 2명이 처벌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사법부 창립 기념식에 참석해 “지난 정권의 사법 농단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했다. 이것을 “촛불 정신”이라고 했다. 이 말에 전직 대법원장을 비롯한 고위 법관 14명이 기소됐고 현직 판사 66명이 비위 행위자로 찍혀 대법원에 통보됐다.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지나온 삶과 명예를 잃었다. 문 대통령은 이들의 처지를 돌아본 일이 없다. 10년 전 사건까지 끄집어내 “검경이 명운을 걸고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라”고 했다. 공소시효를 무시하라고 했다. 문 정부는 불법 수사도 저질렀다. 폭군의 집착과 무엇이 다른가. 그의 정치에선 지도자의 기본 덕목인 인(仁)을 발견할 수 없다. 측은과 자비가 없다. 수사를 위한 수사, 숙청을 위한 숙청만 존재했을 뿐이다.
“촛불 정신”을 말할 때 문 대통령은 기세등등했다. 그런 대통령이 2020년 5월 어느 날 입술이 부르튼 얼굴로 공식 석상에 나왔다. 그 즈음 청와대 주변에선 대통령이 밤마다 ‘혼술’을 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동서고금 모든 권력자의 심리를 관통한다. 왕좌에 오른 맥베스가 두려움에 헛것을 보기 시작한 때는 자신의 왕좌를 가져갈 운명인 뱅쿼의 아들을 죽이지 못했을 때였다. 암살에 실패한 삼류 자객을 붙들고 “이제 의심과 공포에 갇혀 살게 됐다”고 절규한다. 맥베스를 의심과 공포에 가둔 것은 자신이 원치 않는 미래 권력의 탄생이었다. 내가 키운 장수가 나의 측근과 비리를 향해 칼을 겨누기 시작했을 때, 그런데 그런 그를 많은 국민이 미래 권력으로 받들기 시작했을 때 문 대통령은 무엇을 느꼈을까. 맥베스처럼 삼류 자객 추미애를 붙들고 “내 발작이 도지게 됐다”고 책망했을까.
두려움을 느낀 맥베스는 바로 몰락한다. 아내 레이디 맥베스가 죄책감에 자결했을 때 파탄의 절정을 맞는다. 맥베스를 대표하는 대사가 이때 나온다. “꺼져라, 꺼져라, 덧없는 촛불이여! 인생은 한낱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 제 시간이 되면 무대 위에서 뽐내며 시끄럽게 떠들지만 어느덧 사라져 더 이상 들리지 않는구나. 그것은 바보가 지껄이는 이야기.”(한우리 번역, 더클래식) 맥베스는 전쟁터로 나가 최후를 맞는다. “불어라, 바람아! 오너라, 파멸아!” 셰익스피어는 “피는 피를 부른다”고 했다.
문 대통령 시대의 종막(終幕)은 길고 난삽하다.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하고 생존을 위해 매달렸다.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고 수사팀을 해체시켰다. 정권에 충성하는 측근을 요직에 앉혔다. 권력 수사 자체를 봉쇄했다. 청와대 울산 선거 개입 수사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수사, 친인척이 관련된 이상직 스캔들 등 정권의 비리 의혹을 상식대로 수사했다면 지지율 40%의 모래성은 오래전에 무너졌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미래를 이월시켰다. 그러면서 자신만을 위한 면죄부를 약속받으려고 한다.
문 대통령의 서사는 극적이지만 미학이 없다. 비겁하기 때문이다. 권력에 집착했으면서 초연한 척하고, 피를 탐했으면서 착한 척한다. 안락을 갈구하면서 당당한 척하고, 실패했으면서 성공한 척한다. 문 대통령의 5년은 숙청의 시대다. 셰익스피어의 표현을 빌리면 “아라비아의 향수도 그의 손을 향기롭게 할 수 없다.” 화내며 도망치지 말라.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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