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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론

[박정훈 칼럼] 성공하면 노벨상 확실, 이재명의 ‘국가주도 성장’

[박정훈 칼럼] 성공하면 노벨상 확실, 이재명의 ‘국가주도 성장’

李후보 경제 공약은
정부가 총대 메고
돈 뿌린다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나라가 일자리 만들고
국민 지갑 채워준다는
‘소주성’의 속편 같다

입력 2022.02.18 00:00
 
 
이재명 후보가 지난 14일 대한상의 초청 정책대화에서 국가 주도로 경제를 부흥시킨다는 '5·5·5'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농담을 보탠다면 한국인으로서 노벨 경제학상에 가장 근접했던 이가 문재인 대통령일 것이다. 5년 전 문 정부가 들고 나온 ‘소득 주도 성장론’(소주성)은 경제학의 기존 이론을 초토화시킬 획기적 가설이었다. 경제가 성장해야 국민 소득이 늘어난다는 인과(因果)의 법칙을 거꾸로 뒤집어 “소득을 늘려 성장을 이루겠다”고 했다. 애덤 스미스 이후 주류 경제학의 250년 역사를 허물어트릴 발상의 대전환이었으나 끝내 기적은 없었다. 경제 성장 대신 고용 참사, 소득 격차 확대, 자영업 영업난 같은 부작용만 남긴 채 참담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이번엔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노벨상에 도전하고 나선 모양새가 됐다. 이 후보는 ‘소주성’을 능가하는 대담한 가설을 경제 공약으로 내걸었다. ‘전환적 공정 성장’이란 복잡한 이름을 붙였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국가가 주체로 나서는 성장론이다. 이 후보는 “국가 주도의 강력한 경제 부흥책”이라고 했다. 정부가 선두에 서서 계획을 짜고 자원을 배분해 가며 성장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소득 5만달러, 주가 5000, 세계 5대 강국의 ‘5·5·5시대’를 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말만 들어도 가슴 벅찬 비전이었다.

이 후보의 ‘5·5·5공약’ 역시 성공한다면 노벨상은 따 놓은 당상이다. 현대 경제학이 축적한 경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선진 각국을 실증 분석한 경제학자들은 국가가 진두 지휘하는 하향식 성장은 지속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긴 말 필요 없이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몰락이 이를 입증한다. 예외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의 개발독재, 싱가포르의 도시국가 모델처럼 저개발국 혹은 소국(小國)이 탁월한 리더십과 만나 고도 성장을 이룬 사례도 있다. 그러나 발전 단계가 일정 수준을 넘은 선진 경제에서 국가 주도 성장이 성공한 예는 없다. 이런 경제학의 확립된 이론에 이 후보가 도전하고 나선 셈이었다.

이 후보는 미국 루스벨트 정부의 뉴딜 정책을 롤 모델로 제시했다. 1930년대 루스벨트가 공공투자로 대공황을 돌파한 것처럼 자신도 대규모 국책 투자 사업을 벌여 성장을 견인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공황기 미국과 오늘날 한국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이 후보는 간과했다. 지금 우리 경제의 위축은 시중에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혁신 능력과 기업가 정신의 퇴조, 경쟁력 약화로 성장 동력이 고갈된 탓인데 이 후보는 돈만 풀면 된다며 엉뚱한 다리를 긁고 있다. 무조건 돈 풀기의 비극적 결말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증명했다. 구조개혁 없는 경기 부양에 올인한 결과 나랏빚만 불리는 ‘유동성 함정’에 빠져 20년을 헤맨 것이다.

 

이 후보는 정부 지출이 경제 수요를 창출한다는 ‘승수(乘數) 효과’를 내세운다. 그러나 한국의 승수 효과가 1에 못 미친다는 것이 재난지원금 효과 분석에서 재삼 입증됐다. 100원을 써도 70~80원의 효과 밖에 안 난다는 뜻이다. 우리 같은 성숙 단계 경제에선 도리어 정부 지출이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구축(crowding out) 효과’가 크다는 게 경제학 정설로 돼있다. 지출 확대를 위해 나랏빚을 늘리면 금리가 상승하고 이것이 소비·투자를 위축시켜 성장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국채 발행에 따른 금리 상승이 가계와 소상공인 부담을 키우는 역설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 후보가 ‘구축 효과’까지 극복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경제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

이 후보는 정부가 앞장서 디지털 전환 같은 전략 분야를 키우겠다고 한다.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자는 그의 문제 의식에 동의한다. 그러나 ‘국가 주도’란 명분 아래 개입과 간섭을 일상화한다면 그나마 있는 성장 동력마저 사라질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선수’ 아닌 ‘심판’이다. 혁신을 막는 제도적 장애를 제거하고 민간 활력이 살아날 환경을 정비해주는 것이다. 성장을 말하면서도 이 후보는 성장의 발목을 잡는 규제개혁, 노동개혁에 침묵하고 있다. 기업인을 공포에 몰아넣는 중대재해처벌법, 연구·개발자들을 사무실에서 내쫓는 주 52시간제도 수정·보완하지 않겠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노동 환경, 가장 폐쇄적인 기업 규제를 놓아두고 5대 경제강국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기적에 다름 아니다.

이 후보는 유능함을 선거 포인트로 내세운다. 그런데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는 그의 공약집은 정부가 총대 메고 돈 찍어 뿌린다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세금으로 일자리 만들고 국민 지갑도 채워준다는 ‘소주성’의 확장판과도 같다. 이 후보는 차별화를 외치지만 경제에 관한 한 ‘문 정부 시즌 2′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