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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 및 식물 재배

[김민철의 꽃이야기] “이런 꽃도 있구나” 도깨비방망이 든 앉은부채

[김민철의 꽃이야기] “이런 꽃도 있구나” 도깨비방망이 든 앉은부채

<130회>

입력 2022.02.08 00:00

찬바람이 여전한 6일 오후 서울 홍릉숲(국립산림과학원). 땅바닥에서 길이 10㎝ 안팎의 새싹 두개가 나란히 솟아났다. 하나는 연두색이고 다른 하나는 붉은 갈색이다. 한번 눈에 띄자 주변에 몇 개가 더 보인다. 꽃이 피기 직전인 앉은부채다. 곧 붉은 갈색 싹이 벌어지면서 꽃이 보이고 이어 연두색 싹이 벌어지면서 잎이 펴질 것이다.

지난 6일 피기 직전인 앉은부채. 홍릉숲.

앉은부채는 새해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 중 하나다. 야생화동호회 모임인 ‘인디카’에서 펴낸 책 ‘오늘 무슨 꽃 보러 갈까?’를 보면 2월 중순 피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눈이 쌓여 있어도 발열작용을 통해 주변의 눈을 녹이며 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설중’ 앉은부채 사진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피는 복수초와 비슷한 점이다.

앉은부채는 여러가지로 재미있는 꽃이다. 우선 생김새부터 그렇다. 며칠 있으면 저 자갈색 싹이 주먹만한 크기로 펼쳐질 것이다. 이 얼룩덜룩한 망토 같은 것은 포엽(苞葉)의 일종인데, 부처님 후광처럼 보인다고 해서 불염포(佛焰苞)라고 부른다. 천남성과 식물은 대개 불염포를 갖고 있지만 앉은부채 불염포가 가장 이름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앉은부채 꽃과 잎. 남양주 천마산.

그리고 조심스럽게 불염포 안을 들여다보면 도깨비방망이 또는 철퇴 모양의 꽃 방망이가 있다. 동그랗게 달린 하나하나가 작은 꽃들이다. “이런 꽃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꽃이다. 어떻게 보면 두터운 목도리를 두른 것 같기도 하고 아기를 감싼 포대기 같다는 분들도 있다. 드물게 불염포 색깔이 연노랑색인 노랑앉은부채도 있다.

꽃이 핀 다음에는 바로 옆에서 풍성한 잎이 펼쳐지는데, 운이 좋으면 꽃과 잎이 같이 싱싱한 개체를 담을 수 있다. 잎은 여러 개가 나는데 넓은 심장형이며 배춧잎처럼 점점 크게 자란다. 4월쯤이면 아무리 뒤져도 앉은부채 꽃은 보이지 않고 이런 배춧잎 모양만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잎이 무성한 앉은부채. 아래쪽에 꽃(불염포)도 보인다.

앉은부채라는 독특한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우선 잎이 부채처럼 생긴 것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 크기 30~40㎝로 펼친 잎을 보면 손잡이 모양 부분까지 있어서 부채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부채와는 관련이 없고, 불염포 안에 꽃방망이가 있는 모양이 앉아 있는 부처님 형상 같다고 붙인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다. ‘앉은부처’에서 ‘앉은부채’로 변했다는 것이다. ‘앉은’이라는 수식어가 있으니 두번째 주장이 더 설득력있는 것 같다. 꽃을 공부하려면 이름 유래를 꼭 알아보는 것이 좋다. 이름에 그 꽃의 특성이 담긴 경우가 많고 이름을 기억하는데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앉은부채는 재미있는 꽃이지만 냄새가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천남성과 식물답게 독성까지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전체에서 암모니아 냄새가 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이 식물을 ‘스컹크 캐비지(Skunk Cabbage)’라고 부른다.

앉은부채는 아직 불염포가 벌어지기 전이었지만 홍릉숲 양지바른 곳에서는 복수초가 막 피기 시작했다. 마침 주변에 눈이 남아 있어서 복수초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6일 홍릉숲에서 막 피기 시작한 복수초.

앉은부채와 복수초 같은 식물이 언 땅을 녹이면서 꽃을 피우는 것은 이른 봄 햇살을 독차지하려는 것이다. 나뭇잎이 본격적으로 생겨 그늘이 지기 전에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려는 전략을 가진 것이다. 미물에 불과한 앉은부채·복수초가 그런 생존 전략을 어떻게 생각해내고 실천에까지 옮겼는지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