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까다로워진 한국인 소고기 입맛
홈파티 늘며 고급육 선호 뚜렷… 최상급 부위 토마호크도 인기
등심가격 1년새 7% 이상 올라… 인터넷서 전문 요리법 배워
부위별로 취향에 맞게 조리… 고급 오마카세 식당 예약 전쟁도
직장인 최모 씨(30)는 최근 스테이크용 ‘1++등급’ 한우 토마호크 20만 원어치를 온라인으로 샀다. 배송받은 직후엔 바로 먹지 않고 나흘을 참았다. 김치냉장고에 넣어놓고 숙성을 시켜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토마호크는 돌도끼라는 뜻으로 등심 새우살 갈비살 등 3가지 부위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데다 고기 양이 많아서 최상급 소고기로 꼽힌다. 기존에 미국산 소고기로 많이 즐겼는데 수요가 많아지자 한우로도 나오고 있다.
소고기에 대한 그의 진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흘 뒤 소고기를 굽기 직전에는 유튜브에서 ‘레스토랑처럼 스테이크 굽는 법’ 영상을 거듭 보면서 복습까지 했다. 상당한 시간과 돈을 투자한 터여서 아무렇게나 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 씨는 “예전엔 소고기를 특별한 날에만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집에서도 먹다 보니 일상이 됐다”며 “이왕 먹는 거 입맛에 딱 맞게 즐기고 싶어서 다양한 조리법을 공부한 뒤 요리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소비자들의 ‘소고기 입맛’이 더 고급스럽고 더 까다로워졌다. 최근 2년 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홈파티 문화가 정착됐고 과거 재난지원금 지급 영향으로 한우 소비가 늘면서 한우 취향도 고급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소비자들은 온라인에서 소고기를 ‘더 맛있게’ 먹는 게시물 등을 통해 소고기를 탐닉하고 있다. 우선 집에서도 유명 소고기 맛집처럼 조리할 수 있는 각종 레시피가 인기다. 끓지 않는 물로 오랫동안 데우는 ‘수비드 기법’을 활용한 스테이크 요리부터 에어프라이어로 ‘리버스시어링’(고기 내부를 먼저 익힌 후 겉면을 익히는 방식)을 하는 법까지 다양하다. 과거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맛볼 수 있었던 요리법을 집에서도 즐기는 것이다.
한우 오마카세(요리사 맡김 요리) 맛집 후기도 쏟아져 나온다. 1인당 5만∼20만 원대에 이르는 고가지만 젊은층의 발길이 쏠리며 식당 예약은 ‘인기 강좌 수강신청급’이 됐다. 예약 접수 시작과 동시에 마감되기로 이름난 서울 용산구의 한우 오마카세 식당은 이미 다음 달 말까지 예약이 마감된 상태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이은영 씨(27·여)는 “최고로 요리한 소고기를 맛보고 싶어 타이머까지 켜놓고 예약에 도전했다”며 “1인당 10만 원을 지불하고서도 아깝지 않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소고기에 대한 높아진 안목은 한우 ‘프리미엄’ 제품 수요가 늘어난 데서도 알 수 있다. 국내 대형마트 2개사 한우 매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설 명절 한우 선물세트 매출 중 냉장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3년 새 꾸준히 증가세다. 소비자들이 비싼 금액을 감수하고서도 맛을 우선시한 데 따른 것이다. 이마트에 따르면 2020년 설만 해도 냉장 소고기 비중은 45%였지만 올해 52%까지로 늘며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롯데마트도 기존에 70%대에 머무르던 냉장 소고기 비중이 이번 설에는 80%까지로 올라섰다. 소고기 전문점인 창고43은 구이, 육포, 양념갈비 등으로 구성한 설 선물세트를 지난 설보다 1.5배 많이 준비했지만 3일 만에 모두 팔려 나갔다. 이곳을 운영하는 bhc 측은 “최상급 한우에 대한 수요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부쩍 높아졌다”고 했다.
특히 일부 고객들은 이번 명절을 앞두고 80만∼250만 원대 고가 제품에도 거침없이 선물로 사들이는 추세다. 신세계백화점이 이번 설을 맞아 선보인 1++등급 최고급 한우 선물세트 2종은 각 250만 원, 200만 원 등 초고가에도 불구하고 품절을 앞두고 있다. 이마트가 역대 최고가(80만 원)로 선보인 한우 1++등급 선물세트는 17일까지 실시한 사전예약 기간에 준비 물량 50개가 이미 매진됐다. 롯데마트가 전국 점포에서 최고가인 69만 원에 한정 수량 판매하는 한우 1++등급 선물세트도 지난해 설보다 매출이 10%가량 증가했다.
이처럼 최근 국내 소비자들의 소고기 입맛이 까다로워진 배경엔 최근 2년간 소고기 소비가 잦아진 영향이 크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홈파티 수요가 늘어난 데다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중산층에겐 ‘여윳돈’이 생기며 고가 육류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것.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재난지원금으로 평소 먹기 힘들던 한우를 사 먹기 시작하며 점차 ‘더 맛있는’ 소고기를 찾게 됐다”며 “비싼 제품을 구매할 뿐 아니라 부위와 조리법에 따라 달라지는 향과 육질까지 학습하며 취향이 세분화됐다”고 말했다.
전반적인 수요가 늘며 소고기 소비자 가격도 3년째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27일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우 등심 소매가는 100g당 1만3084원으로 2019년 동월(9981원)보다 31% 올랐다. 전년에 비해서도 7.2% 상승한 수준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코로나19로 한우를 집에서 먹는 수요가 크게 늘며 2020년 초부터 한우 가격 오름폭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위별로 살펴봐도 고급 부위에 대한 수요는 늘어난 반면 가격대가 낮은 부위는 감소하는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육류 본연의 맛과 향을 즐기기 좋은 ‘구이용’ 등심이 인기다. 지난해 이마트 한우 총 13개 부위 중 등심 매출이 26%로 최대 비중을 차지했다. 2019년에 비해 4%포인트 증가했다. 채끝 역시 7.9%에서 9.1%까지 늘었다. 반면 찜·조림에 주로 사용되는 설도(13.7%→12.4%), 우둔(9.2%→7.2%), 사태(3.1%→1.4%)는 같은 기간 감소세를 보였다. 롯데마트의 경우 지난해 안창살, 토시살, 꽃갈비살 등 고급 특수부위 매출이 전년보다 14.5% 늘며 3년간 지속적으로 증가세다.
더 부드럽고 풍미 좋은 한우를 찾으며 숙성 한우 제품도 인기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저온에서 약 15일간 냉장 숙성하는 ‘웨트에이징 한우’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15% 증가했다. 이마트에서도 2016년 10억 원 수준이었던 웨트에이징 한우 매출이 지난해 100억 원대로 10배 이상 폭증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장기화하며 집에서도 전문점과 같은 수준을 즐기려는 수요가 늘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인에게 각별한 음식인 소고기가 코로나19가 기폭제가 되어 집중 소비의 대상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한국인에게 한우는 가장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상징적인 음식”이라며 “사회적 거리 두기로 모임이 줄고 해외 여행길도 막힌 상황에서 소고기를 ‘제대로 먹자’는 식문화가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홈파티 늘며 고급육 선호 뚜렷… 최상급 부위 토마호크도 인기
등심가격 1년새 7% 이상 올라… 인터넷서 전문 요리법 배워
부위별로 취향에 맞게 조리… 고급 오마카세 식당 예약 전쟁도
토마호크는 돌도끼라는 뜻으로 등심 새우살 갈비살 등 3가지 부위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데다 고기 양이 많아서 최상급 소고기로 꼽힌다. 기존에 미국산 소고기로 많이 즐겼는데 수요가 많아지자 한우로도 나오고 있다.
소고기에 대한 그의 진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흘 뒤 소고기를 굽기 직전에는 유튜브에서 ‘레스토랑처럼 스테이크 굽는 법’ 영상을 거듭 보면서 복습까지 했다. 상당한 시간과 돈을 투자한 터여서 아무렇게나 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 씨는 “예전엔 소고기를 특별한 날에만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집에서도 먹다 보니 일상이 됐다”며 “이왕 먹는 거 입맛에 딱 맞게 즐기고 싶어서 다양한 조리법을 공부한 뒤 요리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온라인에서 소고기를 ‘더 맛있게’ 먹는 게시물 등을 통해 소고기를 탐닉하고 있다. 우선 집에서도 유명 소고기 맛집처럼 조리할 수 있는 각종 레시피가 인기다. 끓지 않는 물로 오랫동안 데우는 ‘수비드 기법’을 활용한 스테이크 요리부터 에어프라이어로 ‘리버스시어링’(고기 내부를 먼저 익힌 후 겉면을 익히는 방식)을 하는 법까지 다양하다. 과거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맛볼 수 있었던 요리법을 집에서도 즐기는 것이다.
한우 오마카세(요리사 맡김 요리) 맛집 후기도 쏟아져 나온다. 1인당 5만∼20만 원대에 이르는 고가지만 젊은층의 발길이 쏠리며 식당 예약은 ‘인기 강좌 수강신청급’이 됐다. 예약 접수 시작과 동시에 마감되기로 이름난 서울 용산구의 한우 오마카세 식당은 이미 다음 달 말까지 예약이 마감된 상태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이은영 씨(27·여)는 “최고로 요리한 소고기를 맛보고 싶어 타이머까지 켜놓고 예약에 도전했다”며 “1인당 10만 원을 지불하고서도 아깝지 않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부 고객들은 이번 명절을 앞두고 80만∼250만 원대 고가 제품에도 거침없이 선물로 사들이는 추세다. 신세계백화점이 이번 설을 맞아 선보인 1++등급 최고급 한우 선물세트 2종은 각 250만 원, 200만 원 등 초고가에도 불구하고 품절을 앞두고 있다. 이마트가 역대 최고가(80만 원)로 선보인 한우 1++등급 선물세트는 17일까지 실시한 사전예약 기간에 준비 물량 50개가 이미 매진됐다. 롯데마트가 전국 점포에서 최고가인 69만 원에 한정 수량 판매하는 한우 1++등급 선물세트도 지난해 설보다 매출이 10%가량 증가했다.
이처럼 최근 국내 소비자들의 소고기 입맛이 까다로워진 배경엔 최근 2년간 소고기 소비가 잦아진 영향이 크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홈파티 수요가 늘어난 데다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중산층에겐 ‘여윳돈’이 생기며 고가 육류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것.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재난지원금으로 평소 먹기 힘들던 한우를 사 먹기 시작하며 점차 ‘더 맛있는’ 소고기를 찾게 됐다”며 “비싼 제품을 구매할 뿐 아니라 부위와 조리법에 따라 달라지는 향과 육질까지 학습하며 취향이 세분화됐다”고 말했다.
부위별로 살펴봐도 고급 부위에 대한 수요는 늘어난 반면 가격대가 낮은 부위는 감소하는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육류 본연의 맛과 향을 즐기기 좋은 ‘구이용’ 등심이 인기다. 지난해 이마트 한우 총 13개 부위 중 등심 매출이 26%로 최대 비중을 차지했다. 2019년에 비해 4%포인트 증가했다. 채끝 역시 7.9%에서 9.1%까지 늘었다. 반면 찜·조림에 주로 사용되는 설도(13.7%→12.4%), 우둔(9.2%→7.2%), 사태(3.1%→1.4%)는 같은 기간 감소세를 보였다. 롯데마트의 경우 지난해 안창살, 토시살, 꽃갈비살 등 고급 특수부위 매출이 전년보다 14.5% 늘며 3년간 지속적으로 증가세다.
더 부드럽고 풍미 좋은 한우를 찾으며 숙성 한우 제품도 인기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저온에서 약 15일간 냉장 숙성하는 ‘웨트에이징 한우’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15% 증가했다. 이마트에서도 2016년 10억 원 수준이었던 웨트에이징 한우 매출이 지난해 100억 원대로 10배 이상 폭증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장기화하며 집에서도 전문점과 같은 수준을 즐기려는 수요가 늘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인에게 각별한 음식인 소고기가 코로나19가 기폭제가 되어 집중 소비의 대상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한국인에게 한우는 가장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상징적인 음식”이라며 “사회적 거리 두기로 모임이 줄고 해외 여행길도 막힌 상황에서 소고기를 ‘제대로 먹자’는 식문화가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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