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연봉 낮다니" 자존심 상한 日 "그래도 우리가 낫다"는 이유
- 신윤재
- 입력 : 2021.12.18 06:01
※ '한중일 톺아보기'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관련된 크고 작은 이슈를 살펴보는 연재코너입니다.
▲ [사진=연합뉴스]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에서 근로자 임금이 규모와 위상에 걸맞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회원국 평균 임금 조사 결과 여파로 보입니다. 이미 수차례 보도됐듯 일본 근로자의 연평균 임금은 지난해 35개국 중 22위에 머물렀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보다 100만엔 이상 평균 연봉이 앞서 있던 일본이 어느새 40만엔 가까이 뒤처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죠. 특히 이 대목이 일본 내에서 꽤 주목받는 분위기 입니다.
한국에 역전된 시점이 아주 최근도 아닌 2015년 전후로 나타났는데, 일본 미디어들은 이와 관련해 한일 양국을 비교하는 기사를 잊을 만하면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대장성(현 재무성 전신) 관료 출신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는 일본의 정체된 임금과 국내총생산(GDP) 문제 등을 줄기차게 제기해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고 있죠.
▲ [그래픽=유제민]
지난 13일에는 고용·임금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자칭 '인사(人事) 전문 저널리스트' 미조우에 노리후미(溝上憲文) 씨가 경제 격주간지 '프레지던트'에 기고한 글이 일본 최대 포털 '야후 재팬'을 달궜습니다. 800개 가까이 되는 댓글이 달린 기고문에서 미조우에씨는 양국에서 동등한 직위에 있는 직군의 급여를 일일이 비교했습니다.
직급 올라갈수록 한국 기업 연봉 우세 뚜렷
▲ [그래픽=조보라]
미조우에씨는 한국과 일본의 동등한 직종·직위 근로자 연봉을 비교했을 때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면서도 "부장급 이상을 비교했을 땐 분명 일본이 한국에 열세"라고 분석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부장급에서는 연봉 하한선까지 포함해 확실히 한국 기업이 우세했습니다. 특히 정보기술(IT) 서비스 직군의 경우 한국 근로자 연봉은 970만~1746만엔, 일본 근로자는 800만~1200만엔으로 차이가 뚜렸했죠. 그는 "비관리직 담당자 수준에서는 일본 기업 연봉이 다소 높을지 모르지만, 관리자급이 되면 업계·직종을 불문하고 대부분 한국 기업 쪽이 우세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물론 모든 직종과 직군에서 일본 기업 연봉이 열세인 건 아니었습니다. 경영관리 부문에서는 일본이 한국보다 약 20%나 높게 나타났습니다. 일본의 경영관리 부문 세무 담당 근로자 연봉은 700만~1100만엔에 달한 데 반해 한국의 같은 직군·직급 근로자 연봉은 485만~679만엔에 그쳤습니다.
▲ [그래픽=조보라]
근 30년 정체된 임금...기시다 총리 "법인세 깎아줄께 임금 올려라"
▲ 국회 소신표명연설에서 임금 인상 기업에 세혜택을 늘리겠다고 밝힌 기시다 총리.[사진=연합뉴스]
사실 20년이 넘게 임금이 오르지 않아도 물가도 그대로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임금 문제는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변화 조짐이 나타난 시점이 '아베노믹스' 등장 이후입니다. 장기 침체가 계속되던 기간엔 눈에 띄지 않다가 아베노믹스로 경기가 호전되면서 노동에 대한 초과 수요가 있는데도 임금이 오르지 않는 기현상이 나타나며 주목 받기 시작한 겁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최근 OECD 실질임금 순위, 특히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쏟아지면서 관심도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이 때문인지 지난 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국회 소신표명 연설에서 임금을 올리는 기업들에 세제 혜택을 늘려주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만약 대기업이 급여 총액을 4%이상 올린다면 법인세 공제율을 20%에서 30%로, 중소기업은 40%까지 끌어올리겠다는게 골자입니다. 여기에 대기업의 연구개발(R&D) 등에 적용하던 법인세 감세 혜택은 임금 인상 여부를 반영해 기준을 엄격화하기로 했습니다. 세 혜택을 위해선 국내 설비투자액 요건을 갖추거나 '2022년도 총급여 0.5% 이상 인상' '2023년도 총급여 1% 이상 인상'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일본 기업 중 약 60%가 적자로 인해 이미 법인세를 지불하지 않고 있어 해당 방침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日네티즌 "연봉 적을지 몰라도 최악 취업난 한국보단 낫다"
▲ 현재 한국의 청년실업률과 저출산 문제는 심각하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한 일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연봉이 그리 높다면 굳이 한국인들이 일본까지 취업하러 오는 이유는 뭘까" "한국은 일자리 자체가 없다. 그런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단순 비교는 의미가 없다" 등등. 대체적으로 장기 임금 정체로 평균 임금에서 한국에 뒤처지는 것이 사실일진 몰라도 최악의 취업난으로 일자리 자체가 없는 한국보다는 낫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문재인 정권의 실정과 헬조선화로 일본으로 이주하는 한국인이 늘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일본에 해롭기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는 댓글도 공감을 많이 받았습니다. 엄중하고 불편한 현실에 대한 내부 비판을 받아들이기 보다 애써 외면하며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모습이 정부의 실정을 맹목적으로 두둔하는 일부 한국 네티즌들과도 묘하게 겹치는 대목 입니다.
한국은 아직까진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 징후가 뚜렷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지적처럼 최악의 청년 실업률 등 성장동력을 옥죄는 악재가 산적해 있습니다. 특히 하루가 멀다하고 최저치를 경신하는 출산율은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 교수가 예언한 '2300년 인구 소멸국 1호 한국'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겨줍니다. 일본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고소히 여기는 대신 타산지석으로 삼고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한 개혁 조치가 시급히 요구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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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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