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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문화

감칠맛 육수·후루룩 면발… 그많던 메밀국수 어디로 갔을까 [김새봄의 먹킷리스트]

 

 

감칠맛 육수·후루룩 면발… 그많던 메밀국수 어디로 갔을까 [김새봄의 먹킷리스트]

입력 : 2021-11-27 12:00:00 수정 : 2021-11-27 12:27:37

 

서울 미래유산 ‘미진’ 육수 취향따라 제조
일본식 ‘미나미’ 니신·토마토 소바 등 다양
‘도쿠로야’ 야키소바, 생맥 곁들이면 캬∼
‘136길 육미’의 메밀 김밥은 건강한 맛

일본의 메밀 국수인 소바는 더운 여름에 먹는 음식 같지만 사실상 추울 때 먹어야 제대로 맛을 느낄 수 있다. 메밀 수확 시기는 10월인데, 찬바람이 절정에 오르기 시작한 지금이 햇메밀의 맛을 오롯이 느끼기에 최적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김새봄의 스물세 번째 먹킷리스트는 ‘소바 맛집’이다.

미진 메밀

#한국식 판메밀국수의 시초

메밀로 서울 광화문 일대를 평정한 곳이 바로 ‘미진’이다. 미진은 그야말로 우리나라 판메밀국수의 살아 있는 역사다. 서울시에서 2014년 ‘서울 미래 유산’으로 지정했을 만큼 오래된 노포다. 1954년 개업해 벌써 개업 70주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원래 피맛골에서 터를 잡았다. 하지만 재개발로 지금은 인근 종로1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으로 옮겼다.

세월이 보이는 투박한 네모 소바 그릇에 무심히 툭 얹어진 발. 그 위로 1인분에 두 덩이씩 두 칸이나 제공하는 푸짐한 양. 양도 양인데, 직접 면을 만들어 사용하는 정성까지. 건물 지하에서 메밀면과 육수를 직접 지어 바로바로 제공한다.

일본식 정통 소바는 쯔유가 짜지만, 미진의 육수는 염도를 우리 입맛에 맞춰 적당하다. 얼핏 간단해보이는 육수는 10가지 이상의 재료를 사용해 복합적인 감칠맛을 뿜어내는 게 특징이다. 한 주전자 크게 내어주는 육수를 개인 그릇에 덜어 간 무와 대파, 고추냉이, 김가루까지 취향에 따라 빼곡하게 넣으면 기본 육수와 크게 차별화되는 나만의 육수가 탄생한다. 온도뿐 아니라 국물 자체의 시원함이 끝내준다. 먹을 때마다 조합을 다르게 해 여러 가지 육수를 맛보는 재미도 있다. 후루룩 넘어가는 시원한 국수에 반찬으로 내주는 사각한 열무김치를 중간중간 함께 올려먹는다. 국수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그 많던 메밀국수는 어디로 갔을까.

미나미 니신 소바

#처음부터 끝까지 소바였다

일본식 자가제면 소바 전문점으로 이름난 서초동 ‘미나미’. 쓰지 요리학교 출신 남창수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한적한 아파트 단지 사이로 난 골목, 회색 빛깔의 벽돌들이 촘촘히 쌓여있는 단호한 모습. 예사롭지 않은 외관에 근처에 서성이며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여기 뭔가 있어보인다.

이름만 들어도 입맛을 다시게 하는 니신(청어)소바부터 토마토소바, 소바 마키 등 다양한 종류의 소바를 맛볼 수 있다. 면의 종류도 메밀과 밀가루의 비율을 8대 2로 만드는 부드러운 목넘김의 ‘니하치 소바’와 메밀 100%로 만들어 향이 풍성한 ‘쥬와리 소바’ 두 가지로 섬세한 디테일을 보여준다.

미나미의 면은 하늘하늘하고 깃털처럼 가볍다. 툭툭 끊어지는 듯하면서도 특유의 탄력이 있다. 면적이 얇아서 소스에 적셨을 때 깊은 풍미가 진하게 전해진다. 특히 염분이 거의 없는 면은 아주 슴슴하고 은은해 면 특유의 향과 질감이 오롯이 느껴짐과 동시에 달큼한 쯔유 향기에 흠뻑 취하게 한다.

면 자체를 오롯이 느끼기엔 세이로소바(나무판에 올려진 소바)가 딱이다. 식당에서는 면의 4~5㎝ 정도만 쯔유에 적셔 먹기를 권장한다. 이렇게 해야 면 전부를 적셨을 때보다 면의 향은 향대로, 쯔유의 맛은 맛대로 알차게 느낄 수 있다.

대표 메뉴인 니신소바의 경우 청어를 교토에서 직접 공수하는 수고를 들인다. 쫀득한 질감이 돋보이는 청어살에 진하게 우려낸 가다랑어 육수. 그 위로 상큼한 유자향이 바람처럼 스친다. 한 잔의 칵테일을 마시는 듯 여러 가지 반전의 향과 맛이 섞여 하나의 흡족한 국물을 완성한다.

도쿠로야 야키소바

#맥주를 부르는 볶음면

얼핏 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망원동의 작은 선술집.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망리단길’과는 거리상으로 꽤 떨어진 곳으로, 유동인구가 현저히 적은 도로 한쪽 단출한 가게가 자리 잡고 있다. 굵직한 한자와 함께 명료하면서도 위트 있는 해골 그림이 그려진 ‘도쿠로야’. 이를 해석하면 ‘해골 술집’이라는 의미다.

짧은 천막을 헤치고 내부에 들어서면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과 함께 바깥 바람과 현저히 대비되는 따끈함과 복작함에 몸이 스르륵 녹는다. 아는 사람은 꽤 아는, 그래서 은근히 갈 때마다 좌석을 찾기 힘든 구시야키(꼬치구이) 이자카야다. 요즘 쟁쟁한 야키토리(닭꼬치)집들이 꽤 생겨났지만 그 전부터 합정동과 망원동 일대에서 유명했다.

구시야키가 유명하지만 테이블마다 주문하는 인기 일품메뉴 야키소바(볶은 메밀국수)는 꼭 맛봐야 한다. 숙주와 당근, 양배추, 닭고기 등 온갖 재료를 잘 섞어서 불맛 좋게 볶아냈다. 하이라이트로 올린 달걀과 소복히 뿌린 가다랑어포를 뜨거울 때 적절히 섞어 먹으면 볶음면의 장점이 그대로 전해진다. 적당히 짭짤하면서 뜨끈한 볶음면을 후후 불어가며 아삭한 숙주를 적당히 끼워서 면치기를 한다. 입안 가득 채워 오물오물 먹다가 시원한 생맥 한잔을 곁들이면 단전부터 ‘캬~’ 소리가. 그야말로 하루의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맛이다.

#메밀면으로 김밥을, 소바마키

논현동 한 골목 작은 식당에서 출발한 ‘136길 육미(六味)’. 특이한 가게 이름은 말 그대로 ‘언주로 136길’에 위치한 주소명을 따와 ‘여섯 가지 맛을 내는 곳’이란 의미를 덧붙인 것이다. 136길 육미는 일식 베이스의 덮밥 및 식사류를 주로 하다가 사이드 메뉴인 메밀 김밥이 인기가 더 많아져 입소문이 난 경우다.

메밀 김밥은 밥 대신 삶은 메밀면으로 김밥을 말아 밥과 면의 느낌이 동시에 나는 것이 특징이다.

136길 육미의 메밀김밥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건강하고 가벼운 재료들의 향연이 아닐까. 박고지나 표고, 교쿠(일본식 계란말이), 아보카도, 장어 등 이름만 들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재료들 속에서 136길 육미만의 마요 소스를 넉넉히 넣어 재료와 재료 사이를 잇는다. 은은하면서도 자꾸 손이 가는 중독성. 기존 소바마키의 가볍고 건강한 맛에서 대중적으로 한 발 다가간 친근함이 눈에 띈다.


김새봄 푸드칼럼니스트 spring58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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