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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문화

[김준의 맛과 섬] [79] 삼척 섭국

[김준의 맛과 섬] [79] 삼척 섭국

입력 2021.11.24 03:00
 
삼척 섭국.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

설악산에서 시작된 붉은 단풍이 동해안으로 내려올 무렵 동해 바다 맛은 더욱 진해진다. 찬 바람이 독해질 때 겨울 바다가 내준 깊은 맛이다. 그중 하나가 홍합이다. 얼큰하고 텁텁한 ‘섭국’이나 ‘섭장칼국수’<사진>에 ‘섭비빔밥’을 더하면 금상첨화다.

강릉에서는 홍합을 섭이라 한다. 홍합은 담치, 합자라고도 하며, 삶아 말린 것은 ‘담채’라 한다. ‘본초강목’에는 ‘동해부인’이라 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홍합, 지중해담치, 굵은줄격판담치 등은 모두 홍합과에 속하는 담치류들이다. 화물선의 평형수를 타고 우리나라에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는 지중해담치는 성장 속도가 빠르고 맛도 좋아 양식 품목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섭은 참홍합이라고도 불리는 자연산 홍합으로 우리나라 모든 해역에 서식한다. 서해에서는 물이 많이 빠지면서 드러난 갯바위에서 채취를 하지만 동해에서는 파도가 높지 않은 날 해녀들이 물질로 얻는다. 홍합 요리를 할 때 껍데기에 붙은 따개비나 부착물을 떼어내야 하고, 수염이라 부르는 족사를 제거해야 한다. 족사는 부착력이 매우 강해 개체들이 모여 생활할 때 서로 붙잡는 역할도 한다. 족사는 발의 일종으로 끝에 둥근 부착판이 있다.

 

홍합은 갯바위에 붙어 생활하며 플랑크톤을 먹고 자란다. ‘자산어보’에도 ‘바위 표면에 붙어 수백 수천이 무리를 이룬다’고 했다. 홍합 살은 ‘붉은 것과 흰 것이 있으며, 맛이 달고 국이나 젓갈에 좋다. 말린 것이 사람에게 가장 좋다’고 했다. ‘정조지’에도 ‘피로 해소에 좋고, 사람을 보하는 효능이 있다. 특히 부인들의 산후에 나타나는 여러 증상에 좋다’고 했다. 강원도 속초, 강릉, 삼척에서 보양식으로 얼큰한 섭국을 많이 끓여 먹었다. 또 칼국수를 끓일 때도 섭을 넣고 얼큰하게 끓였다. 밥을 지을 때 섭을 넣기도 했다.

남쪽에서는 맑은 홍합탕을 즐겨 먹는 데 비해 강원도에서는 고추장을 넣어 얼큰하고 텁텁하게 끓이는 것이 특징이다. 섭국이든 섭칼국수든 국물을 만들 때 껍데기째 넣어야 감칠맛과 깊은 맛이 제대로 우러난다. 홍합 세 개면 국물을 내는 데 충분하다 할 만큼 감칠맛이 뛰어나다. 옛날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서민 조개였지만 지금은 비싸고 귀한 귀족 조개로 신분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