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들 이야기

“본관이요? 전 ‘동탄 하씨’입니다” [한국인의 자격, 귀화 시험②]

“본관이요? 전 ‘동탄 하씨’입니다” [한국인의 자격, 귀화 시험②]

입력 : 2021-11-21 06:00/수정 : 2021-11-21 06:00
  •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귀화를 결정한 정레나씨. 정레나 제공

“혹시 어디 오씨세요?” “저는 청양 오씨입니다.”

2020 도쿄올림픽 육상 남자 마라톤 경기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마라토너 오주한씨. 오주한씨는 한국으로 특별귀화했다. 귀화 결심 후 ‘에루페 윌슨 로야네’라는 케냐 이름 대신 ‘오직 한국을 위해 달린다’는 의미의 오주한으로 개명, ‘청양 오씨’의 시조가 됐다. 귀화자가 성을 택할 때 자신의 출신 지역을 본(本)으로 삼을 수 있는데 오주한씨의 거주지가 청양이기 때문이다.

실제 충북에선 해마다 250건 안팎의 새로운 가문이 생겨나고 있다. 법원 통계에 따르면 연간 이뤄지는 창성창본은 230~270건에 달한다. 이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외국인이 늘어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법무부 자료에서도 귀화 신청자가 매년 1만명대 중후반을 기록하고 있다.

어렵게 한국인이 되겠다는 마음을 굳혔더라도 귀화 과정이 쉬운 건 아니다. 귀화시험 문제를 풀어본 한국인들이 우스갯소리로 “이 정도면 한국 국적 박탈당하겠다”고 말할 정도다. 왜 그들은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한국인이 되고자 했을까. 귀화시험을 거쳐 한국인이 된 5명의 귀화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가 귀화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요

귀화 시험 합격 후 받은 귀화 증서. 이제니 제공

이들이 한국인이 되기로 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국 생활의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높았던 이들은 ‘한국인’으로 살기로 결심해 귀화를 신청했다. 반대로 ‘한국에서의 외국인’ 신분이 주는 제약이 크게 느껴져 ‘한국인’이 돼야겠다고 결심한 이들도 있다.

2009년 한국에 들어온 샤흐마토프 페트르씨는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한 지 10년이 되니, 매번 비자를 갱신하는 것보다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게 편할 것 같다”고 생각해 귀화를 신청했다. 페트르씨는 딸에게도 조금 더 자라면 국적에 관한 고민을 깊게 나눈 뒤 귀화 신청을 권유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가족을 꾸린 정레나, 이제니씨도 한국에서의 삶의 만족도가 높았다.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한국 기업에 다니는 최강월씨는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살며 겪게 된 불편한 점을 언급했다. 최씨는 “가족관계증명서 하나라도 편하게 발급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학교에 다니며 한국 기업에 근무하는 등 표면적으로는 한국인의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 신분이다 보니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기도 어렵고, 각종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할 때 외국인으로 분류돼 매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할 때마다 불편함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 어렵다는 필기시험부터 애국가 부른 썰
귀화 시험을 준비하며 공부했던 책들. 이제니 제공

귀화시험을 준비하며 한국어 공부를 난생처음 시작한 정레나씨에게도, 한국에 온 유학생 루징씨에게도 한국어 수준과 상관없이 귀화시험의 관문 하나하나를 통과하기란 쉽지 않았다.

정씨는 사회통합프로그램 0단계부터 6단계까지를 모두 이수하고 필기시험과 면접 심사까지 모든 과정을 거쳤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면서도 귀화 시험 준비를 이어왔던 정씨는 “낮에는 육아, 밤에는 귀화시험 공부가 정말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공부한 내용 덕분에 한국인 남편도 모르는 걸 알 때가 있다”며 “얼마 전 가족과 임진각을 방문했을 때 아이들에게 임진각에 관해 설명해 준 건 (한국에서 태어난 남편이) 아니라 저였다”며 시험을 위해 공부한 내용을 실생활에서 사용할 때 뿌듯하다고 전했다.

정씨는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 한국에서 살아갈 때 또다시 남편이나 주변인에게 의지해야 했을 것”이라며 “한국의 보육 제도나 은행 대출에 대해 공부했던 덕에 한국어 실력이 지금보다 조금 부족했을 때에도 일상적인 일은 처리할 수 있었다”며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통상 귀화 면접 심사의 마지막 단계는 애국가 부르기다. 페트르씨는 “무난히 통과돼 형식적인 절차라 느꼈다”고 전했지만 루징씨는 애국가 시험 당시 당황스러운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루징씨는 “후기를 보니 대다수는 1절이 출제됐지만, 5%는 나머지 2, 3, 4절이 나왔다”며 마음을 졸이고 집에서 열심히 애국가를 연습했다고 했다. 그는 “시험장에서 나름 잘 불렀다고 생각했는데 면접관이 음이 안 맞는다”고 지적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루징’에서 ‘하가연’으로
법무부로부터 받은 국민선서문. 샤흐마토프페트르 제공

당장 내 딸, 아들이나 혹 친구가 국적을 변경한다고 하면 어떨까.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축하해주면서도 왠지 모를 서운함에 사로잡히진 않을까. 실제로 귀화자들 역시 주변 반응이 제각각이었다고 답했다.

루징씨는 귀화 승인과 동시에 법원에서 개명 절차를 밟고 있다. 루징씨의 한국 이름은 하가연. ‘여름에 활짝 피운 웃음’이라는 뜻이다. 성은 여름에 태어난 루징씨의 계절을 따라 ‘여름 하(夏)’로 정했다. 본관도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명을 따 ‘동탄 하씨’가 됐다. 루징씨는 “개명에는 국적까지 변경해가면서 저 자신이 원하는 삶과 환경에서 살아가고 싶은 뜻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가족도 한국에서 하가연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한 루징씨의 결정을 존중해줬다. 중국에서 해군으로 일하는 루징씨의 삼촌은 “국적을 바꿔도 아끼는 조카”라며 처음 한국 유학을 결정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루징씨의 귀화 결정을 존중해준 건 아니다. 루징씨는 “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었다”면서 “나를 매국노라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귀화를 결심한 최강월씨 역시 처음에는 아버지의 반대가 거셌다고 했다. 최씨는 “한국에서 계속 쭉 살아갈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귀화하겠다고 하니 반대하신 것 같다”면서 “그럼에도 결국 귀화를 결심한 건 저 자신이기 때문에 아버지를 설득했다”고 답했다. 나중엔 최씨의 아버지 역시 이해해줬고, 다른 가족은 오히려 귀화했다는 사실을 반겨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어딘가에 있을 예비 한국인들에게
샤흐마토프페트르 제공

이들에게 앞으로 한국인이 되려는, 국적시험에 도전할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냐고 물었다. 이들은 귀화 결정이 좋은 선택이라고 반기면서, 하나같이 꼼꼼하고 성실한 시험 준비를 당부했다.

루징: 한국은 좋은 나라입니다. 인정도 많고 인프라도 잘 돼 있어요. 귀화시험을 준비하시는 분들, 훌륭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또 귀화를 고민하시는 분들도 귀화를 결심하시면 좋겠어요.

이제니: 같이 귀화를 준비했는데 시험에 떨어진 사람들도 있었어요. 국적을 바꾸는 것 자체가 큰 결정인 만큼 공부는 미리미리 하시는 것을 추천드려요.

정레나: 시험공부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한국어로 더 많이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서툰 한국어라도 한 번 더 말해보려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강월: 한국어 자체에 대해서는 배울 기회가 많아요. 지자체 프로그램에도 한국어 교실 등이 자주 열리는 편입니다. 또 학원에 다니거나 교류 활동, 아르바이트 등 직접 한국 사람들과 부딪혀 보면서 한국어 실력을 늘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샤흐마토프페트르: 한국에 와서 살고 귀화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이왕 공부하는 거 열심히 준비하면 좋을 것 같아요.

노혜진 인턴기자
천현정 인턴기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6487275&code=61121111&sid1=s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