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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손수레노점으로시작,평생모은400억!

손수레노점으로시작,평생모은400!

-가난한학생들위해내놓습니다-

서울동대문구청량리동에사는김영석(91)ㆍ양영애(83)씨부부는30여년간서울종로5가에서과일을팔았다.

1960년손수레노점으로시작했다.
교통비를아끼려매일새벽한시간씩걸어도매시장에서과일을떼왔다.
밥은노점근처식당일을도와주고얻어먹는해장국으로해결했다.

두사람은초등학교졸업장도없다.
북한강원도평강출신인김씨는광복후혼자월남해남의집머슴살이를했다.

경북상주출신인아내양씨도6·25로피란다니며떨어진사과를주워다팔았다.

부부는과일장사로번종자돈에대출을보태1976년청량리상가건물을한채샀다.
주변건물을하나씩사들일때도부부는남들이내놓은옷을얻어다입었다.
환갑,칠순,팔순잔치도마다했다.

두사람은이렇게마련한청량리일대땅과건물여덟채를25일고려대에기부하기로했다
고려대는"시가로400억원가치"라고했다.
개인기부자로는고려대역사상최고액수다.

25일오전청량리동집에서만난노부부는"후련하고뿌듯하다"고했다.
아내양씨는"평생돈을쓰고살아본적이없어서어디에다써야할지몰랐다"고했다.

"큰돈이니큰데다써야겠다고생각해대학에다기부하기로했다"는것이다.
고령으로이야기하기힘든남편을대신해아내가설명했다.

부부는지금까지어디에기부를해본적이없다."장사하고땅사고건물사느라빌린빚갚느라현금을쥐고있을새가없었다"고했다.

전재산을대학에주자고이야기한것은두사람모두아픈데가늘면서부터였다고한다.
양씨는"남편정신도흐릿해져가고,나도뇌경색진단을받아더망설여선안될것같다"고했다.

"정신이있을때기부를해야할것같아서몇달전에남편과필담(筆談)으로합의했어요.
저이가귀가잘안들려서..."

고려대에기부하기로한데는아들영향도있다.큰아들김경덕(58)씨는고려대토목공학과79학번이다.

양씨는지난6월고려대법인사무실로전화를걸어기부의사를밝혔다.
양씨전화를받은정인표고려대법인운영팀장은"전화로는별말씀안하셨는데열흘후직접학교에찾아오셔서설명하실때기부규모를듣고깜짝놀랐다"고했다.

미국캘리포니아에사는
두아들도부모결정에동의했다고한다.
아들들은20대에미국으로건너갔다.
양씨는"다들쉰살이넘었고,집도한채씩장만했으니부모도움없이도살만한수준이됐다"고했다.

부부거실에는가족사진이걸려있었다.
TV옆에는큰손자의미국예일대
법대졸업식사진이놓여있었다.
미국뉴욕에서변호사로일하고있다고했다.

"그래도자녀가아쉬워하지않겠느냐"고하자양씨는한참자녀자랑을했다.
"우리큰며느리는이화여대를나왔는데생활력이정말강해요.
마음씨도고와서애들도얼마나잘키웠다고요.
큰손자는키가180가넘는데인물도얼마나좋은지"

부부의아파트에있는
소파와장롱은색이바래있었다.
소파는40년전양씨가언니에게서얻은것이고,장롱은부부가40년전서울종로파고다가구점에서장만한'생애첫옷장'이라고했다.
그전까지는옷을종이상자에넣어보관했다.
두사람은차도없다.

6년째부부의집안일을돕는이옥희(58)씨는"두분모두쓰고난비닐봉지한장도함부로버리지못하게하신다."고했다.

양씨가입은라운드티셔츠는30
바지는20년된것이라고했다.
거실에는옷이든종이상자도있었다.
나중에입으려고다른사람에게서얻어온것이다.

노부부소유건물에는카페와
식당등점포20여개가입주해있다.
임대료를크게올리지않아대부분
20년이상장사를하고있다고한다.

1977년부터노부부의건물에서족발가게를운영해온이준희(76)씨는"40년넘게봐왔지만화려하게옷을입거나화장한모습을단한번도본적이없다"고했다.

이씨는"청량리에서임대료갈등없이상인들이한자리에서이렇게오래장사한건물은여기밖에없다.
존경스러운건물주"라고했다.

고려대는노부부뜻에따라기부받은건물과토지를형편이어려운학생들을위한장학금등으로쓰겠다고밝혔다.

"어렵게모은돈을한번의기부로내놓는게아깝진않으냐"고하자양씨는준비라도한듯망설임없이대답했다.

"평생'노랭이(구두쇠)'소리듣던나같은밑바닥서민도인재를기르는데보탬이될수있구나,이생각에정말기뻐요."

고려대에400억재산을기부하러
가기전,부부는집에서점심을먹었다.

반찬은..
김치와콩나물무침,고추장아찌,세가지였습니다.
조선일보/김승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