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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대출 규제로 집값 잡은 중국, 이번엔 ‘부동산 버블 붕괴’ 공포

대출 규제로 집값 잡은 중국, 이번엔 ‘부동산 버블 붕괴’ 공포

강력한 부동산 대출로 민간 1위 헝다 등 부동산 기업들 부도 위기 속출
인구 정체기 진입, 유령도시 등 공실률 20% 넘어 버블 붕괴 가능성
지방 정부는 부양책 전환, 중국 정부 집값 안정과 경기 부양책 저울질

차학봉 부동산전문기자

입력 2021.11.07 10:58

지난달 22일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청 앞에서 집값 하락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 참가자들은 최근 집값이 20∼30% 떨어졌다며 정부에 대책을 요구했다고 홍콩 명보가 보도했다. 베이징 북쪽에 있는 장자커우시는 최근 부동산업체들이 아파트를 헐값에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당초 분양가의 85% 이하로 팔아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아파트 덤핑 판매에 나서자 이를 금지하는 조치를 속속 발표하고 있다.

한국은 집값 대책이 수도 없이 쏟아져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해 ‘백약이 무효’라는 한탄이 나온다. 중국에서는 ‘대출 규제’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대출규제로 수요가 위축되면서 지방 도시 중심으로 미분양이 급증하고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분양시장 침체와 대출규제로 민간 1위의 부동산 업체 헝다그룹이 부도위기에 빠졌다. 350조원이 넘는 부채를 가진 헝다그룹은 280개 지역에서 1300개가 넘는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출규제로 상반기에만 이미 200여개 부동산업체가 부도를 냈다.

지난 10월 전국 100대 부동산개발업체들의 신축 부동산 판매액이 전년 동기 대비 32.2% 감소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중국 70개 주요 도시의 9월 신규(분양) 주택 가격이 전달보다 0.08% 하락했다. 하락세로 돌아선 것은 6년만이다. 시간이 갈수록 집값 급락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상당수 지방도시에서는 분양가는 물론 기존 주택 가격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대출 규제가 촉발한 부동산 경기침체와 연쇄 부도 위기

중국 장쑤성 쑤저우의 타이창에서 헝다 그룹이 유동성위기로 공사를 중단한 사업장. 중국 정부의 대출규제로 분양시장이 싸늘하게 식으면서 자금난에 처한 부동산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연합뉴스

중국은 지난해 집값이 급등하자 전매 제한 등 한국식 부동산 규제를 강화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결국 중국 금융당국은 1월부터 은행의 주택담보대출과 부동산 기업 융자 총량규제를 도입했다. 은행대출 전체 잔액 중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돈줄을 죄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특히 부동산업체에 대해 △선수금을 제외한 자산부채비율 70% 미만 △순부채비율(부채에서 유동자산을 뺀 후 자본으로 나눈 비율) 100% 미만 △단기부채 대비 현금 비율 100% 미만 등 ‘3대 레드라인’을 설정, 이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대출을 규제한다.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부동산 기업이 치명상을 입었다. 민간 1위 부동산 업체인 헝다그룹이 부도위기에 처했다. 더 큰 문제는 제2, 제3의 헝다가 널려 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부동산회사 상위 30개사의 3분의 2가 ‘3대 레드라인’ 중 최소 1개를 위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동산업체 중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낮은 기업 비중이 27%에 이르는 등 다수 부동산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가 갖고 있는 전체 부채가 5조2000억달러(약 6238조원)에 달한다.

부동산 대출 규제 강화는 시진핑 주석의 리더십과도 직결된다. 시 주석이 2016년 ‘부동산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거주의 수단’이라고 강조하면서 각종 규제책이 나왔고 일부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지난해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기위해 금리 인하 등 부양책을 쓰면서 부동산 시장이 다시 불타올랐다. 작년 주택가격이 8.7% 상승했다. 시 주석은 지난 8월 부의 재분배를 강조하며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시 주석의 공동부유 선언은 집값을 안정시키라는 강력한 지시이다. 이때문에 금융당국이 부동산 기업의 파산은 물론 어느 정도의 경기침체를 각오하고 대출 규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사회에 만연한 부동산 불패론

공산주의 국가 중국은 1990년대말에 주택소유권 거래를 인정했다. 이후 집값이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부동산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자산이라는 ‘부동산 불패신화’가 중국 사회에 깊이 뿌리 내렸다.

불패론의 근거는 이렇다. 첫째, 도시화의 진전으로 도시 주택가격이 절대 떨어질 리 없다는 믿음이다. 중국의 도시화율은 60%전후로 한국(85%), 미국(84.4%)에 비해 낮다. 상당기간 도시의 주택 수요가 늘 수 밖에 없다. 둘째, 선진국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높기 때문에 집값이 오른다는 논리가 퍼져 있다. 2000년대 중국은 연 10%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뤘고 이후에도 6~7%대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해왔다. 장기적으로 보면 경제성장률만큼 집값은 오른다. 셋째, 부동산 관련 산업이 GDP 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0%에 육박한다. 정부가 경제성장을 위해 부동산 경기 침체를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넷째 중산층의 거의 유일한 투자 수단이 부동산이다. 주식 시장이 장기침체하는 가운데 주택을 재테크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부동산이 중산층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70%이다. 부동산 가격 하락은 중산층의 몰락을 의미하며 국가 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 다섯째, 부동산 가격 상승에 기반한 중국식 성장 모델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국유재산인 토지의 사용권을 매각해서 경제 개발의 재원으로 활용한다. 국유토지 사용권 매각 수입이 지방정부 전체 기금수입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부동산이 장기 침체할 경우, 지방 자치단체의 재정 유지가 불가능하다.

 

부동산 중심형 경제 구조 탓에 중국 정부가 주택가격 통제를 위해 다양한 규제를 도입했지만, 아직도 보유세를 전면 도입하지 않고 있다. 조세저항도 걸림돌이지만 보유세를 전면 도입할 경우, 부동산 수요가 근본적으로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식 버블 붕괴 가능성 대두

하지만 중국의 펀더멘털이 변화하면서 더 이상 ‘부동산 불패’가 유지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우선, 주택의 과잉 공급이다. 연간 1500만 가구의 주택이 지어지는 중국은 현재 6500만채가 빈집 상태이다. 공실률(빈집 비율)이 22%나 된다. CNN은 최근 중국의 준공후 미분양이 3000만채, 분양 후에도 사람이 살지 않는 주택이 1억 채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부동산 불패론에 근거한 묻지마 분양으로 전국 중소도시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이른바 ‘유령도시’도 많다. 중국에서는 다주택자들은 집값이 상승하면 시세차익을 남기고 팔기 위해 아예 집을 비워둔다. 보유세가 없고 저금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중국 인민은행의 작년 5월 조사에서 도시지역 주민 세대의 주택 보유율은 96%에 달했다. 도시지역 주민이 1채를 보유하는 비율은 58.4%, 2채를 보유하는 비율은 31%, 3채를 보유하는 비율은 10.5%로, 1세대 평균으로 1.5채를 보유하고 있다.

저출산으로 주택수요가 줄어드는 구조전환기에 이미 접어들고 있다. 중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15년부터 감소세로 전환했다. 중국 정부는 36년간 지속해온 ‘한 자녀 정책’을 폐지하고, 2015년 ‘두 자녀 정책’으로 전환했지만, 저출산 고령화 트렌드는 변함이 없다.

버블 붕괴를 먼저 경험한 일본에서는 중국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재현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 광둥성 선전시 아파트 가격이 주민 평균 연봉의 57배에 달하며, 베이징시 역시 55배에 달하는데, 버블 절정기였던 1990년대 도쿄(평균 연봉의 18배)보다 훨씬 비싸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은 220%로, 일본의 버블기(218%)를 웃돈다. 대출 전체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중국은 현재 약 30%로, 일본 버블기(22%)보다 높다.

중국, 다시 부양책으로 전환하나

2분기 7.9%를 기록했던 중국의 GDP 성장률이 3분기에는 시장 전망치보다 낮은 4.9%에 그치는 등 경기둔화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부동산 대출 규제완화, 금리인하 등 경기 부양책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미 지방 정부들은 부동산 할인판매 제한조치를 취한데 이어 일부 도시는 양도세 감면 등 부동산 경기 부양책까지 내놓고 있다. 주하이, 후이저우 등 광둥성 17개 도시는 주택 거래 시 부과하는 개인소득세 세율을 매도가격의 2%에서 1%로 하향 조정했다. 개인 소득세는 한국의 주택 양도세에 해당한다. 일부 지역 은행들이 주택 구입자들과 부동산 개발업체들에 대한 대출 규제를 완화하기 시작했다. 주택 자금 대출에 걸리는 시간이 기존 6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됐고 모기지 이율도 내렸다. 일부 지역에서는 내집마련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중국 정부도 집값 안정을 위해 무리한 정책을 펴다가는 부동산 버블 붕괴와 장기적인 경기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 버블, 2009년 리먼쇼크와 미국 주택시장 붕괴 과정을 연구해 버블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보도했다. 부동산 버블이 붕괴할 경우, 중국 경제가 위기에 빠지는 것은 물론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중국 정부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중국 금융정책을 관장하는 류허(劉鶴) 부총리는 최근 헝다그룹 문제와 관련, “부동산 시장의 리스크를 전반적으로 통제 가능하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자들이 수차례 회색코뿔소로 부동산 버블을 공개적으로 지목하는 등 경계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회색 코뿔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면서도 실제 위협하는 단계가 되기 전까지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는 위험을 지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