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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700㎞ 비행 ‘누리호’ 노태우 유산, 문재인은 국가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고도 700㎞ 비행 ‘누리호’ 노태우 유산, 문재인은 국가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 입력 2021-10-30 11:37수정 2021-10-30 11:56

 

[이종훈의 政說] K-열풍 배경에는 인기 영합 않고 정책 펼친 대통령들 있어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청와대 세종실에 걸린 역대 대통령 초상화. [동아DB]

 

노태우 전 대통령이 10월 26일 별세했다. 그는 어떤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까. 공과(功過) 중 어느 것이 클까.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2015년 7월 28∼30일, 8월 4∼6일 전국 성인 2003명을 대상으로 ‘해방 이후 우리나라를 가장 잘 이끈 대통령’을 조사한 결과 노 전 대통령은 0.1%로 최하위였다. 국민여론이 중요한 시대지만, 다분히 인기투표 성격이 강한 여론조사 결과를 객관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전환기 리더십 펼친 노 전 대통령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과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6월 8일부터 7월 20일까지 2022년 대선특별기획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 7인의 대통령’ 행사를 공동 개최했다. 7월 13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발표에서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전환기 리더십’으로 평가했다. 대표적 공으로는 6·29 민주화 선언과 북방정책, 여야 협치를 꼽았다. 이외에도 인천국제공항, 경부고속철도, 서해안고속도로, 새만금 종합개발, 분당·일산 신도시 건설 등도 성과로 거론된다.

11년 7개월에 걸쳐 독자 기술로 개발한 누리호가 10월 21일 오후 5시 우주를 향해 솟아올랐다. 위성 모사체를 궤도에 올리지는 못했지만 고도 700㎞에 도달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한 발 다가섰다는 것이 국제사회 평가다. 한 달여 전인 9월 15일에는 독자 개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최종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이 둘 모두 세계 7번째로 거둔 성과다.

 

독자 기술로 개발했다고 자랑하지만 한국 우주발사체와 SLBM 원천기술은 옛 소련으로부터 왔다. 소련과 군사무기 기술협력은 노 전 대통령 임기 중 시작됐다. 1991년 소련에 제공한 14억7000만 달러(약 1조7240억 원) 경협차관이 디딤돌이었다. 당초 30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했는데, 소련이 해체되면서 차관 잔여분 제공이 중단됐다. 이후 러시아 정부가 1993년까지 만기가 도래한 4억5000만 달러를 현물로 상환하기로 하면서 성사된 것이 ‘불곰사업’이다.

 

한러 정부는 2007년 말 불곰사업을 ‘한러 군사기술협력사업’으로 전환했고 러시아로부터 공기부양정, 전차, 장갑차용 열상조준경 등과 첨단무기 기술을 이전받았다. 누리호의 형님 격인 나로호 개발 당시 가장 난도가 높은 1단 로켓 설계에도 러시아 기술이 담겼다.

누리호 발사와 SLBM 시험발사 모두 문재인 대통령 집권 하에서 이뤄졌지만 초석을 놓은 것은 노 전 대통령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K-방역의 핵심인 국민건강보험 적용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한 조치도 노 전 대통령이 공약사업으로 추진했다.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및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비핵화 선언 역시 노태우 정부의 성과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25일 임기 중 마지막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K-방역을 본인 성과로 포장해 발표했다. K-팝, K-푸드, K-뷰티, K-반도체, K-배터리, K-바이오, K-수소, K-조선의 성과가 문재인 정권 기간에 꽃을 피웠으나 앞선 정권들에서 뿌려놓은 씨앗의 결과다.

문 대통령은 사실 내세울 만한 국정 성과가 별로 없다. ‘쿠키뉴스’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데이터리서치가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가 가장 잘한 일’이라는 물음에 ‘없다’로 응답한 사람이 37.4%로 가장 많았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 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2위는 코로나19 대응(22.5%)이었다. 대표 공약사업인 소득주도성장론은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자산 불평등 심화로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집권 직후 집무실에 현황판까지 내걸며 강조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역시 고령층 단기 일자리 증가로 귀결됐을 뿐이다. 국가부채만 턱없이 늘려놓은 것도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2001년 11월 17일 ‘제17회 인촌(仁村) 기념강좌’ 강연을 위해 방한한 미하일 고르바 초프 전 소련 대통령(오른쪽)이 한소 정상회담 파트너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제주 신라호텔 월라룸에서 재회했다. [동아DB]



전임 대통령들 성과에 숟가락 얹는 文


문 대통령이 최근 가장 열중하는 일은 K-마케팅이다.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도 이를 틈틈이 언급했다. 청와대가 여론조사 지지율 관리에 관심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덕분에 임기 말인데도 문 대통령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40% 전후를 기록 중이다. 한국갤럽이 10월 19일부터 사흘간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긍정 평가가 38%였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

앞서 한국갤럽이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0.1% 선택을 받으며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언급했다. 일반 국민 인식과 전문가 평가에 간격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여론조사 결과만으로 정권을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 더 종합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당장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상당한 반발과 비판, 또는 외면과 냉담에도 초석을 놓은 사업 역시 주목해야 한다.

가령 문 대통령이 최근 홍보에 적극 활용하는 K-컬처만 하더라도 문화를 수출상품으로 인식해 집중 육성하기 시작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공이 돌아가야 마땅하다. 김 전 대통령은 극렬한 반대 여론에도 일본 문화 개방을 단행하기도 했다. 정보고속도로 사업을 시작한 것도, 벤처 창업 붐을 일으킨 것도 모두 김 전 대통령이다. K-조선과 한국형 잠수함 개발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중공업 진흥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전임 대통령들의 비전과 결단이 하나 둘 성과로 나타나는 요즘 문 대통령은 어떤 비전과 결단으로 국정에 임했으며, 그것은 어떤 미래 성과로 귀결될 것인가.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이 정말로 신경 써야 할 점은 바로 이것이다. 전임 대통령의 성과에 숟가락을 얹는 일 말고 새롭게 씨앗을 뿌린 것이 대체 무엇이냐는 뜻이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12호에 실렸습니다》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